‘죽어서도 거름이 되겠다’는 울림에             
‘빛깔 없는 구슬’을 내려놓다

▲ 죽어서도 거름이 되겠다는 맴생이형님과 빛깔 없는 구슬이나마 꿰어보려던 O의원이 선명하게 대비되어 빈한했던 내 젊은 날의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와 삶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보게 한다.
 스물하고도 서너 살쯤의 가을날, 아직은 문학소녀의 꿈을 간직하고 있었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조금은 막연했다. 그렇다고 사회를 향한 현실적인 진로를 정한 것도 아닌 불투명한 나날이 계속되던 젊은 날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책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하릴 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일찌감치 인생 설계를 마치고 농촌으로 시집간 친구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친구는 자기가 사는 지역의 한 의원이 자서전을 내고 싶어 하는데 말로는 청산유수 막힘이 없으나 글은 도무지 되지 않아, 글을 맡아 써 줄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내가 맞춤하다 싶었는지 그 의원과 약속을 잡은 것이었다. 기다랗고 다소 야윈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O의원은 지역에서 재선을 한 50대 초반의 지방의회 의원이었다. 나이에 비하면 젊은 모습이었으나 새파랗게 젊었던 나에게는 늙수구레하게 보였다.

 그는 이 지역에서는 두 번이나 의원을 역임했고 비록 지방이지만 노른자위에 주유소와 대형마트를 소유할 만큼 경제적으로도 성공했기 때문에 자부심과 자신감이 대단했다. 또 그 무렵에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 등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등을 내놓으며 세간에 화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O의원도 그들처럼, 길지 않은 인생이나마 정리해 그릇에 담고 싶었을까? 자서전 내는 것만이라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려고 했을까? 자기 인생항로를 책에 담아 남기고 싶은 것이 차고 넘치는 지 정성스럽게 구술한 녹음테잎을 두 장이나 가져왔다. O의원은 나름대로 재력가여서 제법 큰 금액의 사례금도 약속했다. 대학을 졸업해놓고도 마땅한 일이 없어 빈둥대던 백조인 나에게는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이었다. 또 일이 잘 풀리면 자기 사무실에서 홍보관련 업무를 해보자는 미끼도 던졌다.

 

 감흥없는 인생, 자서전을 쓰려하니…

 

 O의원은 일단 자신의 유년기와 성장기를 들어 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그리며 이야기를 하는 O의원의 입술에는 침이 하얗게 고였다. 입술에 고인 침을 뚫고 두서없는 말이 튀어나오느라 입가에는 하얀 거품이 일었다. 그만큼 진지하고 열성적이었다. 그렇지만 정작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맥아리없이 그저 듣고만 있었던 것이다. 자서전은 어렵고 힘든 시절을 헤쳐 나온 주인공의 인생 역정, 그중에서도 시대의 아픔에도 동참하려는 삶의 진정성, 이것들이 잘 어우러져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어야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O의원과 한 시간 동안에 걸쳐 면담을 했으나 나는 끝내 주인공에게 그러한 인간적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인생역정 속에서 삶의 진정성을 찾아내어 적당히 윤색할 수 있을 만큼의 대단한 글재주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백조였던 나에게 결코 적지 않은 액수의 사례금! 그리고 안정적인 직업! 모두 내게는 절실한 것이었다. 방물장수가 머리에 이고 가져온 욕심나는 물건을 가득 담은 보따리를 풀고는 “자! 어서 가져가”하는데 나는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한 보름정도의 기간 동안 대강 자서전의 얼개를 짠 다음 만나기로 하고 두 장의 테잎을 손에 들고 O의원의 사무실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테잎을 듣다가 원고지를 끄적거리다가 했지만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고민의 끈을 풀지 못하고 멍~해진 상태로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며 일주일을 보내버렸다. 그다지 좋지도 그다지 싫지도 않지만 조금은 역겨운 냄새를 남기면서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장롱속의 좀약처럼 시간이 닳아지고 있었다. 나는 그 좀약의 냄새를 떨쳐내 버리기 위해 무작정 ○○군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올라탔다.

 시내를 벗어나자 가을 햇빛이 시골버스에 쨍하고 내리쳐서 눈을 뜰 수가 없을 만치 눈부셨고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청량하기만 했다.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벼로 가득찬 들판은 황금가루를 뿌린 듯 하였고 황금가루에 반사된 햇빛은 따가움은 떼어내고 따사로움만 온 몸으로 전해준다. 친구는 물론 친구신랑도 불시에 찾아든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잘 아는 분의 포도밭 농막에 나를 데려갔다. 농막은 포도밭너머 저만큼에 있는 저수지가 잘 보이는 곳에 지어져 있어 그런대로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오 장엄하여라! 검정 고무신

 

 `맴생이형님’으로 불리는 포도밭의 주인은 50대 초반쯤의 농부였는데, 마침 감홍시빛 노을이 번진 서녘 들판을 등지고 까만 새끼염소 대여섯 마리를 앞세우고 농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기염소들은 정신없이 달려오고 있고, 아저씨가 데리고 오는지, 염소가 끌고 오는지, 줄에 매달린 염소 네 마리와 줄을 잡은 아저씨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뛰다가, 버티다가,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땀에 밴 노란색 일옷, 무릎까지 말아 올린 바지. 그리고 맨발에 검정고무신, 아저씨는 용을 쓰는 염소들을 진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저 멀리 저수지 둑에서 벌어지는 그 모습이 여기서는 실루엣처럼 보인다.

 나는 단 한 번도 검은색을 예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노란 윗옷과 빨간 노을에 어울어진 염소와 고무신의 블랙은 너무도 장엄했다. 햇빛을 받은 염소들의 털은 은색실처럼 윤이 났고 아저씨의 검은 고무신은 군화처럼 투박했지만 석양빛은 그 곳에 부딪히며 튀어올랐다. 단거리를 전력으로 달려온 주자처럼 호흡을 고르며 아저씨는 시원하게 웃으셨다.

 아저씨는 평생 동안 그 마을에서 대를 이어 밭농사, 논농사를 일군 사람이었다. 한 여름엔 포도농사까지 한다. 또 겨울에는 도라지를 심어 수확하면 잘 다듬어 광주에 있는 재래시장에다 내다 팔았다. 일년 사시사철 괭이, 호미를 내려놓을 새가 없이 일을 하였다. 곱슬곱슬한 고수머리에다가 미처 다듬지 못한 턱에는 하얀 털 몇 오라기가 섞인 수염이 더부룩했다. 하지만 너털웃음을 곧 터뜨릴 것 같아 보이는 좋은 인상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였다.

 아이는 셋이나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름이 독특했다. 큰딸 이름은 `차례’ 큰아들은 `원칙이’ 그리고 막내이름은 `해결’이라는 것이다.

 `차례대로 원칙에 맞게 해결하란 뜻인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지키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인데….’

 “내가 인생을 많이 살아보진 않았어도 가만이 생각해 본께 그전에 했던 실수만 줄여도, 그리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 때, 우왕 좌왕 헤매지만 않아도 잘 사는 것 같드랑게요. 글고 모든 일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는디 그걸 제대로만 지키고, 맺고 끊는 거만 잘 하믄 인생은 꼬일 일이 없겄습디다. 그래서 평생 명심 흘라고 아예 얘들 이름 셋에다 새겨 부렀소. 글고 자식은 셋은 있어야 되지라….”

 `…맺고 끊는 거만 잘 하믄 인생은 꼬일 일이 없겄습디다…!’

 

 차례·원칙·해결 `3남매’

 

 아저씨의 말을 듣는 바로 그 순간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가는 내안의 울림을 들었다. `삶의 진정성’ `건강한 노동의 아름다움’ 이런 것들이 내가 쓰고 싶어 했던 글의 고갱이였는데, O의원의 이야기는 알맹이가 빠져있어 내가 도저히 담아 낼 수 없었고, 꿰어도 쓸모 없는 `빛깔 없는 구슬’ 이었다. 그날 나는 그동안 나를 억눌렀던 무거운 체증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예전의 밝은 표정을 되찾았다. 그날 저녁 O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원님, 지방대학 나온 제 역량으로는 도저히 책을 못쓰겠어요. 의원님 정도의 명성이라면… 서울쪽엔 작가들이 즐비하니 그쪽에서 책을 펴내는 게 여러모로 좋겠어요.”

 그렇게, 나는 나를 유혹했던 방물장수의 보따리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아쉬움 속에 수화기를 내려놓고 농막에서 이어지던 맴생이형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는 죽으면 묘도 안쓸라네. 이미 죽어뿐 몸뚱아리! 뭣헌다고 멀쩡한 땅 배린당가. 내이름으로는 땅 한 평도 안 배릴 것이여. 진작부터 차례, 원칙이, 해결이한테 이야기했네. 포도나무 밑을 콱! 콱! 파제껴서 그대로 묻어 부러라고. 그라믄 내 몸뚱이가 거름이 돼서 포도송이도 쪼락쪼락 열리겄제!”

 허걱!!! 나는 경악했다. 농반 진반으로 하는 소리였지만 장난으로만 하는 소리가 아닌 결기가 느껴졌다.

 “형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허요”하며 옆에 있던 친구신랑도 혀를 끌끌 찼다.

 요즘에는 화장한 유골을 나무에 뿌리거나 매장하는 수목장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맴생이형님이 생각하는 매장방법은 무엇이라 해야 할까? 화장하지 않은 채 관도 없이 땅에 묻으니 생매장이기는 하지만 어감이 너무 섬뜩하다. 나무 밑에 묻는 것만 따지면 `수목장’이지만, 또한 포도나무의 거름이 되겠다는 `거름장’이니 둘을 합쳐서 `수목거름장’ 이라고 해야 할까?

 황금빛 가득한 가을 들판을 지나거나 포도밭을 지날 때면, 죽어서도 거름이 되겠다는 맴생이형님과 빛깔 없는 구슬이나마 꿰어보려던 O의원이 선명하게 대비되어 빈한했던 내 젊은 날의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와 삶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보게 한다.

홍은숙 <웃음꽃도서관 소피움 연구원>

일러스트=이영섭 <호남대 의상디자인학과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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