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할 일은 각자의 내일을 잘 살아가는 거”

 필자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의 장애가 누군가를 좋아함에 있어서 ‘장애’가 될 수 있음을 깨닫기 전까지 말이다.

 나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운 적도, 내 장애로 인해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도 없다. 마음 하나만큼은 건강한 아이로 자랐었다. 장애로 인해 학교에서 외톨이처럼 지냈던 사춘기 시절에도, 다름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는 친구들이 아직 철이 없어서라 생각했다. 내가 좋다던 남자들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일 줄 알았다. 나를 지극히 평범한 여자로 여길 거라 생각했다.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이 나를 스쳐갔을 때마다 나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깨달았다.

 그런 순간들이 올 때마다 나는 평범함을 간절히 원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범한 데이트를 즐기고, 보통의 결혼식을 올리고, 소탈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평범함이 내게는 어느덧 욕심이 돼버린 것이다.

 그와의 만남도 별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를 좋아한다는 그의 고백은 한낱 호기심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었다.

 “과거에 너의 헤어짐의 이유는 네 장애 때문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의 편견 때문이었던 거야. 물론 그 당시에 남겨졌을 슬픔을 너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었겠지.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꿈 꿔. 사랑하는 사람과 주말에 데이트하는 꿈, 사랑받는 여자가 되는 꿈, 현명한 엄마가 되는 꿈. 그 꿈들 나랑 같이 꿔 보자.”

 처음 듣는 말이었고 처음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동안 나 스스로가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살아왔을지도, 겉으로만 내 장애를 다 이해하고 받아들인 척을 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벚꽃엔딩이 흘러나오는 무렵 사랑이 시작되었다.

 이 후에 우리의 연애는 보통의 연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특별함이 익숙함으로 녹아들었고 익숙함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래된 연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자연스럽게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동안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던 그깟 나이 차이도, 나의 장애도, 우리의 육체적 거리도 이 모든 것이 이별 사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별하였다.

 이제는 매일 일정한 시각에 전화벨이 울릴 일이 사라졌다. 더 이상 하루 끝에 “응, 그래가지고?”의 다정한 위로도 없다.

 몇십 번의 새벽을 보내고 다시 보통의 날로 돌아왔다.

 그냥 한 시절이 가고 한 시절을 맞이했다.

새벽

‘새벽’님은 무뚝뚝하지만 언제나 가족들의 기념일을 먼저 기록하고 챙기는 세심한 딸이자, 가끔 손편지로 고맙다는 말을 대신 전하는 잔정 많은 친구이고, 꽃, 풍선, 촛불이 없는 프러포즈를 받고 싶은 낭만주의 아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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