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펀 그 슬픔의 도시에 들다

 진과스를 나오면서 물욕에 관한 생각을 더듬어 본다. 인류의 성장이 가져온 것이 무엇일까. 유발 하라리가 저술한 “사피언스”에서 영장류로서 인간은 크게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을 통해 지상 최고의 폭군이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류의 성장을 위해 다른 종을 말살하거나 길들이는 것이 농업혁명이라면, 인지혁명은 존재하는 것 밖의 존재감을 세우는데 종사했음을 말하고 있다. 동물이나 식물의 세계는 꿈꾸지 못할 세계를 인간은 사상누각처럼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런 인간을 가장 맹목적으로 길들이고 갈구하게 하는 것이 황금(돈)이다. 인류가 하나라는 것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것이 돈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는 문자의 쓰임보다 숫자가 먼저 쓰였다는 사실은 그것을 증명한다.

 황금은 쓸쓸하게도 세계인의 마음이 하나임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주는 역할이었다. 그 황금을 캐내기 위한 일제의 광산채굴과 무자비한 노동의 대가는 고스란히 대동아 공영을 외치며, 전쟁 물자를 구매하는데 쓰였을 것이고 일제자본가의 호화스러운 삶을 위해 쓰였을 것이다. 일제는 대만에서 수탈과 착취를 이어갔다. 대만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은 1945년 8월 15일 우리와 같지만 그들에게 식민지의 혹독함을 겪었던 것은 51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었다.
 
1890년 황금 찾아 진과스로
 
 진과스에서 황금이 발견된 것이 1890년의 일이니 그때부터 이 일대는 골드러시를 이뤘을 것이다. 그 배후에 이제 찾아가는 지우펀이 있다. 탄광으로부터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본디 9가구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곳인데 황금이 채굴되면서 4,000여 가구가 사는 큼직한 마을로 성장했다. 대부분이 소비를 위한 음식과 주류,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와 배후 주거시설로 되어 있는 곳이다. 대인시장의 국밥집 거리를 연상시키는 길이 장장 500여 미터 정도 되는 성 싶은데 가게와 가게가 마주보고 있으며, 그 사이의 골목으로도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약간의 경사를 지닌 이곳에 이렇듯 가게들이 성황을 이루는 것이 신기하게 보인다.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증을 여기며 기웃거려 본다. 일단은 저렴한 가격과 고만고만한 상품들이 군집을 이루기 때문인 듯하다. 거기에 비좁은 골목이 세계의 관광객이 서로 어깨를 마주칠 수 있도록 만들어낸 효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누군가의 옷깃을 스치지 않으면 그 길을 통과해 전진하기 쉽지 않은 장치는 별장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던 것이다.

 또 하나는 가게 주인들의 진지함이었다. 형형색색의 가발이나 옷, 치장을 하면서 마치 연기자인 것처럼 꾸미고 관광객을 웃음으로 맞이하는 모습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영화의 세트장처럼 보여주기 충분했다. 또 하나가 있다. 바로 홍등이었다. 붉은 색은 재복을 상징한다고 해서 걸어 놓는다고 하는데 어둠이 오면 불이 들어오는 홍등은 등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연신 카메라의 초점이 맞춰지는 피사체가 되었다. 기막힌 연출 장치는 그렇게 사람과 공간 사이에서 각각의 기능이 분할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몸처럼 섞여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가게를 두리번거리며, 전통시장의 기능이 소멸되어 버린 내 조국을 다시 생각해 본다. 국가에서 쏟아 부은 돈이 얼만데 싶지만 대부분은 사람이 찾지 않는 시장의 본원적 기능을 살리는데 쓰는 것 보다는 아케이드나 주차장 확보 같은 하드웨어에 집중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과 프로그램은 빠질 수밖에 없고, 이미 이 보다 세련되고 청결하고 소분화된 마트에 길들여진 세대는 시장을 배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거형태와 소비형태가 순식간에 바뀌었음에도 소비시장의 트렌드를 감안하지 않고 그저 외형적 변화만 추구하는 정책이 이제 출발한 정부에서도 재현되는 것이 두렵다. 전통시장 살리기를 넘어 도시재생 뉴딜이라는 정책이 진짜 정주인의 마음속에 틈입하지 않으면 망할 길이 뻔 하다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길을 걷다 약간의 낯익은 곳이 보인다. 그랬다. 대만에서 만든 영화를 처음 본 것이 “비정성시”였다. 대만 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끈 “후 샤오시엔” 감독의 역작이었다. 비애의 도시 혹은 슬픔의 도시라고 말해야 할 그 영화는 참으로 담담하게 나를 대만 역사의 현장으로 이끌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 대작의 촬영지가 바로 이곳 지우펀이었다는 것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다.

 비정성시를 처음 봤을 때 받았던 감동은 이후에도 이어져 세 번을 더 그 영화 속에 빠져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디서나 핍박받는 민초들 삶
 
 영화의 스토리는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가운데 임문웅의 아이가 탄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임문웅에게는 3명의 동생이 있는데 둘째는 의사로 독립운동을 하다 행방불명이 되었고, 셋째 또한 미쳐서 돌아온다. 넷째는 사고로 귀가 먼 상황에서 사진관을 운영한다. 이들 형제들이 주인공이 되어 대만의 해방과 뒤이어 들어온 대륙인들의 전횡 사이에서 겪어가는 역사의 파란은 1947년 2.28 사건을 기점으로 정점에 이른다. 이른바 담배의 전매를 내세우는 정부였지만 정부 몰래 담배를 파는 한 노파를 강제하면서 치솟기 시작한 대륙인들, 장개석 총통에 대한 저항은 대만 내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도화선이 된다. 바로 다음해에 한국땅 제주도에서 일어난 4·3 항쟁과 그 출발과 과정이 비슷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핍박받는 민초들의 삶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영화의 장면은 많은 부분에서 롱테이크 기법으로 채워져 있었다. 즉 시각의 일방성을 주창하는 영화가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에서 담백하게 현장을 응시하는 태도를 취한 것이었다. 앵글이 그러하니 상영 중에 다소 답답한 감이 없진 않지만 그야말로 신산한 시대 민초들의 미시사가 어떻게 거시사와 마주하며 역사를 장강을 이루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거기에 넷째동생 관영이 수화와 필기를 사용하다 보니 자막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또한 영화의 핵심을 더욱 또렷이 하는 힘을 가졌다.

 하여튼 동시대 동변상련의 아픔을 지닌 양국의 처지가 너무나 가엽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다. 일제의 통치, 군부독재, 양안 대치의 냉전체제 등. 여기서 촉발된 2·28사건은 그야말로 제주의 4·3과 이후 광주의 5·18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에서 두렵고 떨리기까지 했던 기억이었다.

 그런 대사건의 시대를 그려낸 감독 후 샤오시엔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역사와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다”라는 말로 대답한다. 제주가 그랬고 광주가 그랬듯 감히 들여보지 못했던 2·28을 한 가족의 파란만장 속에서 담아낸 역작은 내게 영화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다시 알게 했던 충격이었다.
 
바다는 그대로인데 역사는 흘러흘러
 
 영화 속 장면들은 이제 거의 다 사라졌지만 그래도 잔존하는 배경에서 화려함의 이면에 숨겨진 역사의 아픔을 담아가며 지우펀을 걷는다. 각국의 언어와 몸짓과 의상과 다면적인 표정에서 이런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다시금 상기해 본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런 세계인이 마주할 수 있는 사람내음 나는 시장이 있는가도 생각해 본다. 서울의 광장시장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될 것 같다. 우선 시장은 현지민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지역민들 스스로가 시장을 삶의 터전이자 공동체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활용할 때 시장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시장 상품의 공신력이다. 제품의 신선도와 품질이 입증되어야 한다.

 왜 사람들이 마트를 찾는지 이유를 보면 다양하겠지만 가장 첫 번째는 상품의 품질관리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임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 세 번째는 편리함이다. 논스톱 서비스를 고령화된 시장에서 주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친절함과 신뢰성, 내 얼굴이 명함이라는 자긍심이 시장 안에는 존재한다. 이것이 브랜드가 되어야 하는데 브랜딩이 되기 전에 각종 매체의 광고와 유력인사의 소비패턴을 유도하는 몸짓에 소비자들이 확 끌려 가 버렸다. 대인시장의 손수레 과일가게 하문순 여사가 시장의 스타여야 하고, 나주식당이나 영광식당으로 대표되는 국밥집의 아주머니가 시장의 얼굴이어야 하는데 우리 삶의 주변에서 스타를 만드는데 너무 인색하다. TV의 연예인에게는 열광을 하면서 정작 내 삶의 주체의식을 혼돈하는 아비규환의 시대에 우리는 어느새 편승되어 있다는 절망감도 든다.

 하여튼 지우펀의 활기찬 모습은 역사적 배경이 황금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 그 황금을 광산에서 캐지 않고 각 가게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캐나가며 대만을 찾는 관광객이 제일 먼저 가야할 야간관광의 중심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해발고도가 족히 500미터 정도는 되어 보이는 지우펀에서 발아래 바다를 바라본다. 비정성시에서 말없이 줌인을 했던 바다. 바다는 그대로인데 역사는 도도히 흘러가고 있고, 나 자신도 우리 일행도 이 시간이 지나면 또 잊혀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한순간을 살더라도 의미 있고 소중한 삶을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관광목적지로 지우펀은 기억에 생생하다.
전고필 <여행전문가·대인예술시장 감독,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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