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더 실감나는 이야기

 오늘은 이 책의 작가님부터 소개해볼까 한다. 강무홍 작가님을 검색해보면 이런 짤막한 소개가 나온다.

 ‘생년월일 1962~, 출생지 경주, 출간도서 34종, 판매수 68,388권’

 출간도서가 34종이나 되다니 도대체 어떤 책들일까 궁금해진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를 공부했고 현재 어린이책 전문기획실 ‘햇살과 나무꾼’에서 주간으로 일하며 동화를 쓰고 있다.

 강무홍은 동화작가이며 동시에 뛰어난 번역가이다. (이름만 보고 남자일거라 추측한 사람이 많겠지만 작가님은 여자이다.) 그녀가 주축이 되어 만든 ‘햇살과 나무꾼’이라는 ‘어린이 책 기획·번역·집필 집단’은 어린이 책에서 그 신뢰도를 인정받고 있다. 강무홍 작가님은 80년대 운동권 출신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당시의 출판사들이 등한시했던 어린이 책에 뛰어들었고 오늘까지 어린이 책 시장의 급성장에 함께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같은 책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햇살과 나무꾼’은 어린이 책을 기획하는데 원칙이 있다고 한다. 이미 10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지만, 초기에는 주로 좋은 어린이책을 발굴하여 기획하였고, 무분별한 외서 도입은 경계하고 있다. 또한 번역자의 개성은 숨기고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번역을 고집함으로써 ‘햇살과 나무꾼’ 옮김이 전해주는 독자들의 신뢰감을 강화하고 있다.

 추운 겨울날 나무꾼한테 햇살이 위로가 되듯 책이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다는 이름 ‘햇살과 나무꾼’, 그 이름 그대로 강무홍은 좋은 책으로 어린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어가고 있다.
 
▲민담 특유의 입담 온전히 살려

 주요 책으로는 ‘좀더 깨끗이’ ‘선생님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깡딱지’ ‘까만 나라 노란 추장’ ‘나도 이제 1학년’ ‘할아버지와 모자’ ‘우당탕 꾸러기 삼남매’ ‘아빠하고 나하고’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다’ ‘새벽’ ‘괴물들이 사는 나라’ ‘어린이책의 역사’ 등이 있다.

 물론 오늘 소개할 책이 햇살과 나무꾼에서 나온 책은 아니고 보림 출판사에서 만든 책이지만, 강무홍 작가님에 대한 믿음이 이 책을 더 친근하게 만든 건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림이다. 이 책에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김달성 씨는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작품으로 그림책 ‘모두 모여 냠냠냠’ ‘장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이 있다. ‘호랑이 잡은 피리’는 어린이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운 정도로 옛 생활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볼거리가 상당히 많다. 섬세하게 재구성해 낸 살림살이, 장터 풍경, 잔칫집 모습 그리고 인물 하나 하나의 해학적인 표정 등등 구석구석 빈틈없이 담겨있다. 한 폭에 담긴 그림 하나만으로도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만큼 화면에 꽉 찬 그림은 고구려 고분벽화처럼 이야기가 가득하다. 마치 생활사 박물관같은 그림책이다.

 또한 이 책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온 우리 옛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었는데 민담 특유의 입말을 온전히 살려 우리 정서를 잘 담아냈다.

 가난한 아버지가 세 아들에게 남겨준 유산이라고는 지게도 없는 지게 작대기와 낡아빠진 반닫이 그리고 손때 묻은 피리 하나씩. 삼 형제는 이 유산을 하나씩 들고 각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다. 이들은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우락부락한 산적 패거리, 호랑이떼를 만나기도 한다. 어떤 어려움도 사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옛사람의 믿음과 낙천적인 정신이 담겨 있는 이야기이다. (출판사 서평 인용)

 자, 그럼 이제 해학과 위트가 가득한 그림책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가난한 영감님, 아들 삼형제에게 남긴 유산
 
 옛날 옛날에 아들 삼형제를 둔 가난한 영감님이 있었어요. 어느 날, 영감님은 아들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어요.

 “얘들아, 나는 이제 죽을 때가 된 것 같구나. 내가 죽으면 맏이는 내 지게 작대기를 갖고, 둘째는 반닫이를, 막내는 내 피리를 갖도록 해라. 내가 없더라도 서로 의좋게 지내야 한다.”

 그리고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지요. 삼형제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지요. 그래서 삼형제는 넓은 세상으로 나가 돈을 벌어 오기로 했어요. 그리고나서 다시 모여 오순도순 살자고 약속했지요. 삼형제는 마을 어귀의 세 갈래 길에서 헤어졌어요. 맏이는 왼쪽 길로, 둘째는 가운데 길로, 막내는 오른쪽 길로 갔어요.

 맏이는 달랑 지게 작대기 하나를 들고 길을 갔어요. 가다 보니 장터에 닿았어요. 장터에는 사람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았어요. 하지만 돈 한 푼 없는 맏이에게는 밥 한 끼 주는 사람도 없고 하룻밤 재워 주는 집도 없었지요. 맏이는 하는 수 없이 뒷산에 올라가 어느 무덤가에서 새우잠을 잤어요. 그런데 새벽녘에 무덤 뒤에서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나서 눈을 떠 보니, 꼬리 아홉 달리 여우가 무덤을 파헤치고 있었어요.

 여우는 해골을 뒤집어쓰고 ‘뱅그르르 홱홱!’ 재주를 아홉 번 넘더니, 꼬부랑 할머니로 감쪽같이 둔갑했어요. 그리고는 어디론가 부지런히 걸어갔어요.

 맏이는 침을 꼴깍 삼키고 그 뒤를 살금살금 따라갔어요. 할머니로 둔갑한 여우는 마을로 내려가 어느 잔칫집으로 들어갔어요.

 “아이고, 할머니 어서 오세요.” 사람들은 할머니를 반갑게 맞았어요. 맏이는 슬그머니 따라 들어가 할머니를 줄곧 눈여겨보았지요.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할머니가 심술궂은 표정을 쓰윽 짓더니, 주인 영감님의 옆구리를 쿡 찔렀어요.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나 죽네!”

 주인 영감님은 배를 움켜쥐고 떼굴떼굴 굴렀어요. 그 바람에 잔칫집은 그만 난장판이 되고 말았지요.

 바로 그때 “예끼, 이 못된 여우야!” 맏이가 냅다 소리치며, 지게 작대기로 할머니를 다짜고짜 후려쳤어요. “아니, 저 고얀 놈이 할머니를 치네! 저놈 잡아라!” 사람들이 고래고래 고함치며 맏이에게 달려들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깨갱깽!”하는 소리가 나더니, 할머니가 꼬리 아홉 달린 여우로 스르르 변했어요. 그러자 아프던 주인 영감님도 거짓말처럼 싸악 나았고요. 사람들은 놀라서 입이 쩍 벌어졌어요.

 “아니, 할머니가 아니라 여우였잖아. 큰일 날 뻔 했네!” “아이고, 도사님!” 주인 영감님이 맏이에게 넙죽 절을 했어요. 그리고는 고맙다며 쌀이랑 비단을 잔뜩 싸 주었어요. 맏이는 지게 작대기 덕분에 부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맏이는 작대기 덕분에 부자 되고
 
 둘째는 반닫이를 짊어지고 가운데 길로 갔어요. 가다 보니 마을이 나왔어요. 둘째는 이 집, 저 집에서 장작을 패주고 밥을 얻어 먹으며 길을 갔습니다. 하루는 둘째가 길을 가다 잠시 쉬는데, 웬 아가씨가 헐레벌떡 달려왔어요. “도와주세요. 나쁜 사람들이 쫓아와요.”

 둘째는 아가씨더러 얼른 반닫이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다시 반닫이를 짊어지고 터벅터벅 걸어갔지요. 몇발짝 가지 않아,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어요. “이봐, 이리로 처녀 하나 지나가는 것 못 봤어?” 둘째는 시치미를 뚝 뗐어요. “처녀라니, 개구리 새끼도 못 봤소!”

 그러자 사람들은 씩씩거리며 오던 길로 돌아가 버렸어요. 사람들이 사라지자, 아가씨는 고맙다며 절을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어요. “저 도둑놈들이 우리 집 재산을 몽땅 빼앗고 식구들을 해쳤답니다. 저는 간신히 도망쳤지만, 갈 곳이 없어요. 제발 저를 데려가 주세요.”

 그래서 둘째는 아가씨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반닫이 덕분에 예쁜 색싯감을 얻었지요.
 
▲둘째는 반닫이로 예쁜 색시 얻고
 
 막내는 피리를 불며 오른쪽 길로 갔어요. 오른쪽 길은 깊고 깊은 산으로 나 있었어요. 막내는 밤이랑 도토리를 주워 먹고, 밤이면 나뭇잎을 덮고 새우잠을 자며 길을 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었어요. “어흥!” 컴컴한 어둠 속에서 호랑이들이 눈을 번뜩이며 떼를 지어 몰려왔어요. 막내는 허둥지둥 나무 위로 기어올랐지요. 하지만 호랑이들은 한 놈 두 놈 차례차례 등에 올라타더니, 나무 위로 올라와 입을 쩍 벌렸어요.

 ‘아이쿠, 나는 죽었다!’ 막내는 덜덜 떨며 나무를 꽉 부둥켜 안았어요. 그때 품 속에 있던 피리가 막내의 가슴을 쿡 찔렀어요.

 ‘에라 죽기 전에 피리라도 불어보고 죽자.’ 막내는 얼른 피리를 꺼내 힘껏 불었어요.

 “삐이~ 릴리이~ 삐이 삐이이일리~.” 그러자 갑자기 맨 밑에 있던 호랑이가 엉덩이를 씰룩씰룩, 고개를 꺼떡꺼떡거렸어요. 그 호랑이는 흥겨운 가락만 들리면 춤을 추는 무당 호랑이였거든요. 그 바람에 위에 올라탄 호랑이들도 덩달아 씰룩씰룩 꺼떡꺼떡 흔들리고 호랑이 탑이 기우뚱기우뚱하더니……

 “투닥탁, 덜퍼덕. 쿵!” 무너지고 말았어요. 호랑이들은 모두 혀를 빼물고 땅바닥에 나동그라졌어요. 맨 밑에 있던 호랑이가 씰룩씰룩 춤을 추는 바람에, 위에 올라탄 호랑이들이 와르르 무너져 서로서로 깔려 죽은 거예요. 막내는 호랑이 가죽을 몽땅 벗겨 팔았어요. 피리 덕분에 목숨도 구하고 부자가 되었지요.

 막내도 집으로 돌아왔어요. 맏이와 둘째는 막내를 얼싸안고 기뻐했지요. 그 뒤로 삼형제는 아버지 말씀대로 의좋게 오순도순 살았답니다.
 
▲막내는 피리 덕분에 목숨 구해
 
 위기의 순간마다 참 운이 좋게도 삼형제는 문제를 잘 해결한다. 반전의 반전이 계속 이어진다. 독자들은 삼형제에게 위기가 닥칠 때마다 가슴 졸이며 함께 고민하게 되고, 또 뜻밖의 행운이 찾아올 때면 자기 일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옛 이야기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가진 것은 없으나 마음착한 평범한 사람들이 마치 신이 예비해 놓은 듯 행운을 만나 위기를 극복해 마침내 행복한 결말을 맞을 때 내 일처럼 기뻐하게 되는 것 말이다.

 행운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던 과거 우리 조상들은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입으로 입으로 전파하면서 대리 만족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사이사이 유머를 잃지 않고 춤과 노래로 시름을 달랬던 사람들. 호랑이들이 한놈 두놈 등을 타고 올라와 막내를 향해 입을 쩍 벌리는 위기의 순간, 피리소리에 흥이 고취되어 호랑이 탑이 무너질 줄도 모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맨 밑의 호랑이는 다름 아닌 무당 호랑이였다니 이 얼마나 재미있는 장면인가! 이렇듯 엉뚱하고 흥미진진한 옛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다시 듣고 싶은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김달성 씨의 섬세한 수채화 그림과 함께 보면 읽어도 읽어도 계속 읽고 싶어질 것이다.
이하늘 <인문학공간 소피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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