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 미투(#ME TOO) 운동 마주하기(1)

 오늘은 제가 활동하는 대안학교에서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차 한 잔과 함께 봄기운을 느끼려는 찰나, 고2 여학생 두 명이 제가 일하는 곳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수년 간 학교 곳곳에서 마주쳤던 학생들인데 새삼스런 얼굴로 상의할 것이 있다며 저를 찾아왔더군요. 마침 준비했던 차를 나눠 마시며 40여 분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학생들이 저에게 풀어놓은 긴 이야기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학교에서 미투 운동을 시작 하고 싶어요. 마음을 먹었는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해서 상의하려고 왔습니다!”

 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 가지 감정들이 올라왔습니다. 맨 처음 올라왔던 감정은 ‘반가움’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가득 메우고 있는 ‘미투’의 외침을 듣고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함께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어, 이런 역사적인 현장에 주체로 서는 용기를 보여주려고 한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이야기가 반가웠습니다. 그러다가 ‘미안함’이 몰려왔습니다.
 
청소년들에게도 미세먼지처럼 퍼져 있는 현실
 
 마치 미세먼지처럼 우리의 주위에 널리, 깊숙이 퍼져 있는, 그러나 대놓고 문제 삼기에는 사소하게(!) 보이는, 그럼에도 그냥 지나치기엔 당사자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수많은 일상 속 성폭력들을 견디고 여기까지 오게 했다는 점에서 미안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상황에 대해 저도 선생으로서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도 미안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막막함’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학생들이 ‘이곳 대안학교에서도 미투!’를 외치면 그 다음에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들의 미투에 학교 구성원 모두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 거지?”

 이 물음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섣부른 물음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시작에 불과하며 아직 터져 나오지 못한 외침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미투의 외침이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불러올지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투에 ‘응답하는 방법’, 미투 이후를 고민한다는 것은 너무나 섣부른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간 켜켜이 쌓여왔던 피해자의 말들이 다 터져 나올 때까지 아픔에 공감하며 귀 기울이고 더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미투 이후의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 기껏해야 미투를 ‘권력형 성범죄’의 틀로 한정해서 고소, 고발과 그에 따른 사법처리에 머무른다면, 그래서 법률에 갇힌 미투가 되고, 미투에 응답하는 주체가 한낱 국가의 사법기관에 그친다면, 과연 개개의 시민들이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삶의 현장 곳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소규모 공동체서 미투 외침 터져 나오면…
 
 권력형 성범죄만이 미투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를 찾아온 학생들이 일상에서 겪은, 현행법의 틀로는 미처 다 걸러지지 않는 일상적인 차별과 여성혐오의 말들도 엄연히 미투의 문제입니다. 이 학생들이, 그리고 이 학생들을 둘러싼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미투를 외치고 그에 응답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해야 합니다.

 여기에 저는 아직 뚜렷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글을 접하는 여러분들에게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 드리는 것입니다. 저의 고민은 사회적 차원에서 미투 운동과 더불어 작은 공동체들, 예를 들면, 마을, 학교, 가정, 직장 등 다양한 현장에서 일상적인 미투의 외침이 터져 나올 때, 이 공동체들의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함께 생각해 주세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 속해 있는 소규모의 공동체에서 미투의 외침이 터져 나올 때, 여러분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의 경우, 학생들의 외침이 터져 나온 뒤에 학교 곳곳에서 ‘펜스룰’ 따위의 현상들이 일어나지 않고, 학생 (또는 교사, 학부모)들이 겪은 피해와 고통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모든 구성원들이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를 통해 더 나은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개개인들이 따로 또 함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제가 진행하고 있는 일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저를 찾아온 학생들과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함께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학교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자들 및 구체적인 경험 사례들을 더 모아보기로 했고요. 저는 저대로 학교 교사들 중에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조력자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이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어느 시점에 한 자리에 모여 ‘○○학교 미투 운동’을 의미 있게 기획할 예정입니다. 이후 칼럼에서도 일이 진행되는 대로 정리해서 기록을 남기고 여러분들과 공유하겠습니다. 부디 이 일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또 다른 유사한 일을 겪고 있는 공동체에서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길 바랍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세요.
추교준
 
 추교준님은 인문학이 잘 팔리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인문학이 가능할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한 번씩 시민단체 활동가들 어깨너머로 인권을 함께 고민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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