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이력(履歷)이 될 신발들이 아직은 첫 발을 떼지 못한 채 거기 대기하고 있다. 곡성장터의 ‘현대신발백화점’.

 “우리 아저씨가 신발은 생전 숭년(흉년)을 안 탈 것 같응께 하자고 하더라고. 누구나 신는 것이고 항시 필요한 것인께.”

 곡성장 순창장 옥과장 등을 돌며 신발장사를 해온 세월이 어언 45년인 박삼례(75) 할매.

 “이 장사도 인자는 숭년을 타. 옛날에는 집집이 자식들이 대여섯인께 장사가 잘 되얏어. 근디 촌에는 인구가 자꼬 줄어든께.”

 촌에도 장터에도 사람 북적북적하던 호시절이 있었기에 육남매를 먹이고 갈쳤노라고 안도하는 할매.

 “시방은 뭐이든 흔해서 귀한 것이 없는 시상이여. 옛날에는 신발도 귀했제. 맹절 때문 잘 나갔어. 소풍날 돌아오문 잘 되고, 어머니날 돌아오문 잘 되고, 추운 겨울 돌아오문 잘 되고.”

 신발장사 눈에는 항시 신발만 보였다. 신발만 봐도 그 사람의 곤궁한 처지가 짐작되곤 했다.

 “다 터지고 닳아진 신발을 보문 맘이 짠해. 긍께 그런 사람을 보문 신발 한나라도 기언치 앵겨주고 그랬제.”

 모든 벽이 오로지 신발로만 채워진 이 가게에서 유일하게 벽면을 장식하는 것이 있다면 시계. 정중앙이란 위치가 시계의 막중한 소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쳐다봐. 핸드폰 없는 노인들도 많애. 누구 한 사람이라도 쳐다보문 좋제.”

 신발과 더불어 반세기를 살아온 할매에게 신발이란 무엇일까.

 “맞아야 신이제.” 지당한 말씀이다.

 “아무리 뽄이 좋아도 안 맞으문 씰데없어. 시계랑 신발은 안 맞으문 암짝에도 소양없어.”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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