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火神)’ 조왕신 이야기

▲ ‘부엌 할머니’(이규희 글, 윤정주 그림)
 ‘나무 문을 한 부엌 아궁이에 불은 활활 타오르고, 그 위에 가마솥 두 개가 묵직해 보인다. 할머니는 불 앞에서 손을 쬐고 있는 손녀를 흐믓한 얼굴로 바라보신다.’ 오늘은 책 표지 그림이 정겨운 그림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제목은 “부엌 할머니”, 잊혀져 가는 우리의 조왕신을 소재로 한 그림책이다.

 글쓴이 이규희는 중앙일보사 소년중앙문학사에 동화 (연꽃등)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십년이 넘도록 어린이 책을 써오면서 이주홍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받았다. 우리 옛 어머니들이 늘 가까이 모셨던 조왕신에 대한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조왕신은 요즘 아이들에게 아주 낯선 단어일 것이다. 조왕신을 소재로 한 이 책은 우리 어머니들이 많은 시간을 보냈던 부엌이라는 공간을 조왕신을 통해, 단순히 노동의 장소가 아니라 성스럽게까지 만드는 것 같다.

 조왕신은 불신[火神]으로, 부엌에서 모셔지는 신령이다. 부엌은 인간의 의지대로 불을 조절하고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이자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난방을 하고 음식을 조리하는 곳이다. 부엌은 주부가 관할하는 곳이므로 조왕은 주부, 즉 시어머니 또는 며느리가 모시는 신령이다. 민간에서는 이 신령을 조왕각시, 조왕할매, 조왕대신, 정지각시, 삼덕할망과 같이 여성 신격으로 모신다. 그러나 무가나 불교계에서는 부부 또는 남성 신격으로 모시고 있다. 이 신령은 가정에서 모시는 가신 중에서 성주, 조상과 함께 상위에 위치한다. 혼인이나 분가 등으로 새로운 가정을 형성하면 조왕을 모시게 된다. 이때 대부분은 시어머니가 모시던 것을 며느리가 물려받는다.

 조왕의 연원(淵源)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불을 다루는 데서 유래되어 불을 신성시하여 숭배하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신앙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사람들은 집안의 흥망성쇠, 가족의 안녕, 가정의 길흉화복 등과 동일시하여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불씨를 꺼뜨리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여 주부가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이에 따라 불씨가 담긴 화로를 시어머니가 맏며느리에게 물려주었으며, 집을 새로 지었을 때 맏아들이 불씨가 담긴 화로나 솥을 제일 먼저 들고 새집에 들어갔다. 이사할 때도 집에서 쓰던 화로나 아궁이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그대로 옮기거나 택일한 길일 길시에 남이 먼저 들어가 불을 붙인 뒤에 짐을 옮겼다고 한다. (한국민속신앙사전 인용)

 그럼 이제 표지 그림만큼이나 따뜻한 책 속 세상으로 들어가 보자.
 
▲“조왕 할멈, 우리 식구 건강하게 해 주오!”
 
 여보게, 그예 갔구먼, 그예 갔어. 한평생 오순도순 잘 지냈는데 북적북적하던 식구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제 달랑 나 혼자 남았어. 달강달강…그나저나 먹을 게 하나도 없네. 예전엔 그리도 맛난 게 많았건만…

 그런데 내가 누구냐고? 아니 나를 몰라? 나야, 나! 조왕 할멈! 조왕 보시기 안에 살면서 부엌을 지키고 불을 다스리는 부엌 할머니!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 살았지. 엊그제 꽃상여 타고 떠난 봄이 할멈이 이 집에 시집 오기 전부터 말이야. 혼자 멀뚱멀뚱 앉아 있으려니 봄이 할멈 생각이 더 나는구먼. 시집온 지 사흘만에 조심조심 부엌 문지방을 넘어오던 모습이라니! 새색시가 그날부터 아궁이에 불을 활활 때서 가마솥에 물 끓이고, 중솥에다 밥 짓고, 옹솥에 국 끓이느라 정신이 없었어. 식구들이 좀 많아야지.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 시누이에 군식구까지 모두 한솥밥 먹으며 북적북적 살 때였거든.

 그런데 어느 날은 아궁이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불씨를 꺼뜨리지 뭐야.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살림은 불같이 일어나고 자손은 낱알처럼 불어나게 해 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불을 다스리는 신인 내 앞에서 감히 불씨를 꺼뜨려! 내, 그길로 아궁이 불을 활활 일으켜 밥을 홀랑 태웠지. 에구에구 불씨 꺼뜨려 밥 태워 시어머니한테 된통 혼나고 훌쩍훌쩍 울던 모습이라니!

 어디 그뿐인 줄 알아? 내가 알아주는 깔끔이잖아. 부엌이 조금만 더러워도 심술을 부렸지. 식구들 모두 배탈이 나서 데굴데굴 구르게 만들었으니까. 한번씩 그렇게 벼락을 내리고 나면, 정월 대보름이 가까워 올 즈음 날을 잡아 큰 잔치를 열어 주더라고. 풍물패를 불러다 덩실덩실 놀아 주고, “조왕 할멈, 조왕 할멈, 부디 우리 식구 건강하게 해 주오!”하며 굽실굽실 절도 했지. 나? 나야 한바탕 잘 먹고 잘 놀았지 뭐.

 아 그렇게 잘 지내다가도 봄이 할멈이 게으름을 피운다 싶으면 어찌나 심통이 나던지 몰라. 집 안으로 들어오는 복을 훠이훠이 다 내쫓아 버렸지. 그럼 또 봄이 할멈이 가만 있남! 정월 열나흩날 밤, 삼태기를 들고 몰래몰래 부잣집 문간의 흙을 훔쳐 오는 게야. 그걸로 부뚜막을 바르면 복이 절로 굴러 들어온다나. 나야 뭐 부뚜막을 새로 발라 주니 입이 함지박만 해졌지.

 우린 그렇게 옥신각신하며 지냈어.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아이들도 하나 둘 태어났지. 가을볕에 아람 여물 듯 여물어 가는 아이들을 보면 어찌나 대견하던지, 그 아이들이 다 내 자식 같고, 손자 같았거든.

 그러는 사이 봄이 할멈이 차츰 살림을 도맡게 되었어. 명절이나 제삿날이면 집안 여자들을 데리고 고기 삶으랴 전 부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 아이들은 들락날락 먹을 걸 집어 가고, 그런 날이면 나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신바람이 났지.
 
▲아궁이에 찐득찐득한 엿 바르는 이유
 
 아이들이 자라서 하나 둘 도시로 나가자 봄이 할멈은 자나 깨나 빌었어. “조왕 할멈, 조왕 할멈, 부디 내 새끼들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리게 해 주오!” 막둥이가 장가들어 손녀딸 봄이를 낳은 뒤로는 더욱 지극정성이었지. “조왕 할멈, 조왕 할멈, 부디 우리 귀한 손녀 병 없이 탈 없이 잘 자라게 해 주오!” 첫 새벽이면 조왕 보시기에 물을 떠 놓고는 빌고 또 빌었어. 그 지극 정성을 보고 내가 어떻게 가만 있겠어.

 에구, 그렇다고 내가 만날 대접만 받은 줄 알아? 원래 조왕 할멈은 섣달그믐이 다가오면 옥황상제한테 가서, 그 해 그 집 식구들이 뭘 잘하고 뭘 잘못했는지 낱낱이 아뢰고, 설날 새벽녘에 돌아와야 해. 한데 그게 어디 쉬워야지! 봄이 할멈이 아궁이에다 찐득찐득한 엿을 잔뜩 발라 뒀거든. 내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지. 간신히 올라가도 입이 쩍 달라붙어서 암말도 못하게 하려고 말이야.

 봄이 할멈은 손녀딸 봄이를 보는 게 가장 큰 낙이었어. 봄이만 오면 철 따라 감자며 옥수수·고구마를 잿불에 구워 준다, 노릇노릇 부침개를 부쳐 준다,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니까. 그럼 봄이는 그 옆에서 부지깽이로 삐뚤빼뚤 글씨를 쓰곤 했지. “이건 할머니 이름, 이건 내 이름.” 그러면 봄이 할멈은 대견해서 어쩔 줄 몰랐어. 하긴 나도 싱글벙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지. 봄이는 내 손녀딸이나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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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는 사이 봄이 할멈도 얼굴이 쭈글쭈글해졌어. 아, 그런데 얼마 전엔 뜬금없이 부뚜막 앞에다 밥상을 턱 차려놓고 이러잖아. “여보게, 조왕 할멈, 고마우이. 자네 덕분에 우리 자식들 무사히 키웠어. 그동안 섭섭한 게 있었다면 다 용서하시게.” 난 그만 뒤로 벌렁 나자빠질 뻔했다니까. ‘뭐야, 하늘 같은 조왕신한테 반말을 하다니!’ 뿌루퉁 화가 나서 밥이고 뭐고 홱 돌아앉고 말았지.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었어. 우리가 한솥밥을 먹으며 산 게 얼만데.

 그러던 봄이 할멈도 떠나고 나 혼자 남았구먼.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마을이 몽땅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선다는데… 가만, 이게 무슨 소리야? 이런, 이런 봄이네 식구가 왔어! 정든 집이 헐리기 전에 보러 온 모양이야. 아이고. 이걸 어쩌나? 뭐 먹을 것도 없고. 이럴 땐 봄이 할멈이 있으면 좀 좋아. 아니 다들 오자마자 뭐 하는 게야? 세상에! 토닥토닥 도마질 소리, 부글부글 된장 끓는 소리 좀 들어 봐. 게다가 구수한 밥 냄새까지…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야! 두런두런 모여 밥 먹는 걸 보니 눈물이 다 나는구먼. 옳지 왜 미처 그 생각을 못했을꼬? 내가 갈 데는 오직 한 군데뿐인 걸.
 
▲“우리가 한솥밥을 먹으며 산 게 얼만데”
 
 과연 그림책 속 조왕신은 어디로 갔을까? 아이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 그리고 과거 부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 부잣집 흙을 훔쳐와 부뚜막에 새로 바르던 풍습이며, 아궁이에다 찐득찐득한 엿을 발라두는 풍습 등 이 책은 사라진 우리 옛 풍습을 알아가는 재미도 크다. 과거 우리 옛 부엌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고 그 불기운으로 방을 덥히던 곳이다. 오늘날과는 달리 가마솥에 물을 데워 몸을 씻기도 했고, 농사일이 바쁠 때면 부엌에 둘러 앉아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부지깽이를 붓 삼고 부엌 바닥을 종이 삼아 틈틈이 글을 익히는 사람도 있었다. 부엌은 어머니들이 조왕신에게 식구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한 곳이기도 하다. 어머니들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조왕신의 노여움을 타지 않도록 부엌을 늘 깨끗이 하였다. 그것이 곧 가족의 건강으로 이어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한 부엌은 집 안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아궁이에 불이 방을 덥히게 하기 위해 낮아져서, 불을 지피자면 어머니들의 자세도 덩달아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낮은 자세로 가족을 지키던 어머니들의 공간이 바로 우리 옛 부엌이다. (그림책 말미에 소개된 글 인용) 그런 곳에서 새벽마다 깨끗한 물을 길어 ‘조왕 보시기’라 부르는 그릇에 물을 갈아 붓고 식구들이 잘 되길 비는 어머니의 마음은 동양과 서양이 다르지 않고, 옛날과 지금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에도 어머니께서 이른 아침 하얀 보시기에 물을 떠 두시고 두손 모아 기도하시던 모습이 남아있다. 또 솥뚜껑이며 부뚜막 이곳 저곳을 하얀 행주로 깨끗이 닦던 어머니의 손길도 떠오른다. 부엌 한 켠의 물 떠진 하얀 그릇은 감히 손댈 수 없는 무언의 압박을 느끼게 하는, 실수로라도 건드려서는 안될 금줄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대상이었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무엇을 비셨을까? 어떤 마음이셨을까? 없는 살림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성으로 조왕 할멈을 대접했을 어머니의 마음, 그 마음이 이 그림책을 보는 내내 느껴졌다.

 예전의 부뚜막 대신 가스렌지며 인덕션이 주방을 차지하고 있는 요즘이야 이런 이야기가 너무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생각해보면 40년도 채 되지 않는 시절 이야기이다. 이제 다시 우리 부엌에 조왕 보시기를 둘 일은 없겠지만, 새벽마다 깨끗한 물을 길어 조왕 보시기에 물을 채웠던 어머니의 그 마음은 우리들 가슴에 매일 매일 차고 넘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어른이 꼭 먼저 읽고 아이들에게 들려줘야 할 따뜻한 우리 그림책이다.
이하늘 <인문학공간 소피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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