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책 밖으로 나온다면

 책을 읽으며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할 때가 있었을 겁니다. ‘책 속 주인공이 책 밖으로 나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혹은 ‘읽는 이가 책 속으로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상상을 소재로 한 그림책 한 권을 소개할까 합니다. 책의 제목은 (책이 꼼지락꼼지락)입니다.

 저자 김성범은 제3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섬진강 도깨비 마을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인형극을 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그러다가 틈틈이 도깨비랑 함께 노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도 하며 지냅니다.

쓴 책으로는 장편동화 ‘뻔뻔한 칭찬통장’, ‘숨 쉬는 책, 무익조’, ‘도깨비살’, ‘비밀로 가득 찬 세상’ 등이 있으며, 그밖에 인문교양서적 ‘도깨비를 찾아라!’와 ‘책이 꼼지락꼼지락’ 동요가 실려 있는 창작 동요 음반 ‘섬진강, 도깨비마을 사람들’ 등이 있습니다.

 저자 김성범은 인터뷰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첫 번째 그림책이자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아이들과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준 특별한 책입니다. 유치원 추천도서이기도 해요. 노래로도 만들어져서 율동과 함께 부르기도 하고요. 어린이 연극으로도 만들어져서 작가로서도 뜻깊은 선물을 받은 행복한 책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수록된 책, 더구나 작가가 광주와 가까운 섬진강 도깨비 마을에서 글을 쓰고 있다니 더 반가운 책입니다.
 
▲책을 키만큼 쌓아서 만든 ‘책 집’
 
 “범아.” “범아!” “너, 또!”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점점 커져가는 글씨로 표현합니다.)

 “엄마가 부르면 빨리 빨리 대답하라고 했지. 어떻게 된 애가 게임만 시작했다 하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푹 빠지니.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엄마가 말했지. 하루 종일 게임만 하지 말고 책 좀 보라고!”

 “알았어요.....”
 “엄만, 만날 책책! 책밖에 몰라. 에잇 너 땜에 야단맞았잖아.”(남자 아이가 책을 휙 던지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어?”


 순간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범이는 책을 세우고 쌓기 시작했어요. 짠! “멋지지? 이제부터 여긴 우리 집이야.”(범이 키만큼 높이 쌓아진 ‘책 집’이 위풍당당한 범이 옆으로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때 무엇인가 꼼지락꼼지락거려요. “누구야?” 범이가 다가가자 쏙 숨어버려요. 범이가 돌아서면 다시 꼼지락꼼지락. 범이는 궁금해서 못 참겠어요. “우리 집에 오고 싶으면 와도 돼!” 하지만 꼼지락거릴 뿐 나올 생각을 안 하네요.

 “괜찮아. 여긴 나밖에 없어. 우리 집에 정식으로 초대할게.” “고마워!” 사뿐 책 밖으로 나오는데, 범이가 좋아하는 백설공주예요. 그 뒤를 올망졸망 일곱 난쟁이들도 따라 나와요.

 범이는 ‘흥부놀부’ 책을 보며 말했어요. “얘들아, 우리 집에 놀러 오지 않을래?” “좋아!” 흥부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요.

 “강아지 똥아! 꽃을 피워 줘.” 마당이 금세 꽃밭이 되었어요. 꽃밭이 되자 온갖 동물들이 기웃거려요. “너희들도 초대할게!”

 책 속 동물들이 한꺼번에 깡충깡충, 겅중겅중 뛰어나와요.

 “나는?” 범이가 소리 나는 쪽을 돌아봤어요. ‘어리석은 호랑이’책 속 호랑이가 착한 눈빛으로 범이를 바라봐요. “너도 나오고 싶어?” “응!” 호랑이가 얼른 대답해요. “다른 동물들을 괴롭히면 안 된다.” “엉!” 호랑이가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끄덕해요. “약속 어기면 곶감 데려온다!” “그래 그래 알았어!” “좋아, 너도 나와!” 호랑이가 펄쩍 뛰어 나와요. 그러고는 쌩쌩 신나게 뛰어다녀요.

 
▲“과자 나와라 뚝딱!” “빵 나와라 뚝딱!”
 
 다른 책들도 들썩들썩 난리가 났어요. “나도 나도!” “나도 나가고 싶어!”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나오려고 해요. “안돼! 오늘은 그만! 너희는 내일 놀자.” “우리 뭐하고 놀까?” 범이가 두리번거리다가 책 한 권을 찾아냈어요. “그래 이거야!” 그러고는 책장을 착착 넘기더니 스르르 책 속으로 들어갔어요. 범이는 살금살금 도깨비 집으로 들어갔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도깨비는 드르렁드르렁 잠을 자고 있어요. 범이는 조심조심 도깨비에게 다가갔어요. “됐다!” 범이의 손에 커다란 도깨비 방망이가 들려 있어요. “도깨비야, 친구들하고 논 뒤에 돌려줄게.” 범이가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며 큰 소리로 외쳐요. “과자 나와라 뚝딱!” “빵 나와라 뚝딱!” “과일 나와라 뚜우딱!” “맛있는 건 다 나와라, 뚝뚝뚝딱!”(방망이에서 온갖 맛있는 것들이 튀어나오고 책 속에서 나온 친구들은 행복한 얼굴로 입을 쫘악 벌리고 있습니다.)

 “범아!” 엄마가 방문을 벌컥 열었어요. 이게 다 뭐야? 내가 못살아! 네가 아기야? 책 읽으라고 했지 누가 이렇게 난리를 피워 놓으래. 넌 어떻게 된 애가 만날 뒤죽박죽 어질러 놓기만 하니? 하루 종일 꼼지락꼼지락 말썽만 피워 대냐고! 그리고 엄마가 말했지. 정리정돈 잘하라고! (책 속에서 나오는 친구들은 엄마 목소리가 들리자 허겁지겁 책 속으로 들어가기 바쁩니다. 미처 들어가지 못한 친구들이 책 틈새에서 당황한 얼굴로 낑낑대고 있습니다.)

 엄마가 나가자 책들이 다시 꼼지락꼼지락거려요. “알았어, 알았어. 쉿!” 범이가 책을 집어 들며 말해요. “이번엔 뭐 하고 놀까?” (마지막 페이지엔 글자 없이 그림만 있는데, 방망이를 되찾으러 온 도깨비의 화난 얼굴이 보입니다. 그 뒷 이야기가 사뭇 궁금해지는 장면입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책 좀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고, 아이는 그렇게 만든 책이 미워집니다. 책을 휙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이는 책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 다른 궁리를 합니다. 책 쌓기 놀이! 책을 가지고 노는 것이니 상관없겠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그 때 책이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며 책 속에 사는 등장인물들이 너도 나도 책 밖으로 나옵니다. 주인공 범이는 그런 등장인물들과 늘 그래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놀이를 시작합니다. 책 속으로 들어가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오기도 하구요.

 
▲엄마 잔소리에 푹 빠진 도깨비들
 
 아이들이 참 좋아할만한 내용입니다. 그림도 생동감 있게 그려져서 계속 계속 보고 싶은 책입니다. 책꽂이에 꽂혀만 있는 책이 아니라 함께 놀 수 있는 책, 해리포터의 마법세계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가 이 책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엄마의 잔소리가 그 세계에 등장하는 순간 모든 것이 정지하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또 다시 모험을 시작하죠. 더 많은 책 속 주인공들과 함께요. 작가 김성범씨는 이 책을 쓰면서 다음 이야기를 미리 생각해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 이어 (도깨비가 꼼지락꼼지락)이라는 책도 출간되었는데 (책이 꼼지락꼼지락) 책과 내용이 이어집니다. (도깨비가 꼼지락꼼지락)이라는 책의 내용을 짧게 소개하면, 상황을 보지도 않고 잔소리부터 쏟아내는 엄마, 책이 꼼지락꼼지락 대더니 엄마가 도깨비 책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책이 꼼지락 꼼지락)에서 범이가 들어갔다가 도깨비방망이를 슬쩍 가지고 나와 버린 바로 그 책으로요. 엄마는 도깨비들에게도 어마어마한 잔소리 폭탄을 날리는데, 의외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도깨비들이 엄마의 무시무시한 잔소리를 무서워하기는커녕 서로 듣고 싶어 안달입니다. 심지어 엄마의 잔소리와 도깨비방망이를 바꾸자고 합니다. 아기도깨비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요. 엄마의 잔소리를 들을 때 도깨비들 표정이 정말 가관입니다. 연예인에게 푹 빠진 열성 팬들같습니다. 이 부분은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도깨비들이 하늘에서 무수히 떨어지며 엄마에게 얼굴을 그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과 오버랩 되거든요. 어쨌든 범이는 도깨비방망이를 들고 책속으로 들어가 엄마를 구해냅니다.

 두 책 모두 아이들이 빠져들 만한 줄거리와 장면들을 많이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들도 재미있어서 단번에 읽게 되는 책이니까요.

 작가 김성범 씨는 우리 옛이야기와 특히 도깨비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는 게 책 속에서 느껴집니다. 그가 만든 이야기 속에 주인공들과 도깨비는 우리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으면서, 옛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와서인지 묘하게 친근함이 느껴집니다. 작가는 섬진강 도깨비 마을도 운영 중인데 그곳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책이 꼼지락 거리다 주인공을 토해낸다면
 
 “어린이의 시각에 맞춘 문화예술 기업입니다. 동요, 동화, 인형극 등이 마련되어 있고, 대한민국 유아숲체험원 제1호 등록기관이기도 하지요. 우리나라 도깨비에 대한 역사적, 형태적 정리를 한 유일한 장소이고요. 도깨비 마을은 어린이들한테는 꿈을, 어른들에게는 추억에 빠질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국립아시아 문화전당과의 인터뷰 내용 중 도깨비마을이 되었든, 책을 통해서든 아이들이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작가와 책을 읽는 어른 모두가 같을 것입니다.


 ‘책이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다가 주인공들을 토해낸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주인공을 만나고 싶습니까? 아주 오래전에 읽은 동화책 속의 주인공 뿐만 아니라, 최근에 읽은 소설, 과학, 인문학,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나요? 우리 아이들은 누구를 만나고 싶어할까요?

 상상만으로 즐거워지는 시간입니다. 이 책이 그 소원들을 어느 정도 해결해주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책은 이렇듯 읽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하늘 <인문학공간 소피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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