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는 어디에 두었니? ‘마임’은 정말 재밌어요!
수다, 호모 사피엔스를 만든 아름다운 발명

▲ 7만년 전으로 돌아간 해미에게 자기들이 물려준 ‘수다’의 행방을 묻는다면 뭐라 말할까. 소유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고 말을 해야 할까.
 “나 요즘 판토마임 배우고 있잖아.”
 “그런 걸 왜 배워? 배우 될려고?”
 “야! 배우는 아무나 되니? 그냥 재밌어서 배우는 거야. 봐봐! 난 내가 먹고 싶을 때 항상 귤을 먹을 수 있어. 뭐냐면, 여기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먹으면 돼. 그게 다야. 중요한 건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입에 침이 나오고, 진짜 맛있어.”
 - 영화 ‘버닝’ 중에서

 해미는 에코(Echo)를 닮았다. 행사장 입구에서 추는 춤에서나 친구 앞에서 귤을 까는 마임에서 즐겁고 행복한 해미를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예술의 창조자는 현실이다. 해미의 춤과 해미의 마임을 창조한 현실은 무엇일까?

 요정 에코는 억울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 꼴이 된 것이다. 바람둥이 제우스가 시키는 일을 어이 거부하랴? 그녀가 가진 특기는 끊임없이 지껄여대는 ‘수다’. 예쁜 여자 이오를 품에 안고 뒹굴어야 하는데 헤라가 도끼눈을 하고 감시하니 도무지 튈 수가 없다. 에코가 이 일을 해낼 적임자로 보였다. 에코는 헤라 앞에서 혼신의 힘으로 나불거렸고 헤라는 에코의 현란한 혓바닥에 놀아나 바람둥이의 행방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에코의 비극. 다시는 주절대지 못하도록 말을 빼앗아버린 헤라의 징벌에 불쌍한 에코의 비탄은 그저, ‘에고, 내 인생아!’.

 스스로 말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진화한 인간이 말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건 비극이다. 에코의 수다는 자연이 준 선물이지만 에코의 침묵은 인공의 사회가 가한 형벌이다. 인류가 걸어온 역사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에코들이 갖가지 이유로 혀가 뽑히고 입이 막혔다. 말할 수 없는 에코들은 그래서 말 대신 다른 것을 찾아야만 했다.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할 수 있었던 게 말이었으나 그들이 찾아낸 비상한 행위는 시공의 제약이 따랐으므로 간결하게 압축하고 강렬하게 돋보여야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마임이다. 우스꽝스런 마임은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 소극(笑劇)으로 관객을 웃겼고 조선의 저자에서 탈바가지를 쓰고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아냥대며 말을 앗아간 놈들을 향해 풍자로 자위했다.
해미는 에코다. 해미의 ‘리틀 헝거’ 마임은 에코의 ‘메아리’ 마임과 근원적으로 동일하다.
 

▲7만년 전의 동굴 속, 마임(Mime)은 없었다
 
 누가 ‘수다’를 발명했을까? 인류학적 통찰에 의거해 판단을 내리면 단연코 여자다. 수백만 년의 인류사에서 인류의 반은 채집에 종사했고 나머지 반은 수렵에 종사했다. 그들의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채집과 수렵은 그 성격에 맞게 그들의 언어습관을 만들어낸다. 수렵가들은 굵고 짧게, 채집가들은 가늘고 길게! 들소를 향해 맹렬히 질주하던 남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낄낄거리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수렵가들에게 말이란 추격 전에 나누는 작전과 쓰러진 들소 옆에서 내뱉는 헉헉거림 뿐이다. 하지만 채집가들은 여기저기 사방으로 눈을 굴리며 정보를 교환하고 싸돌아다니는 새끼들을 불러야 한다.

 위대한 발명은 공유되어야 한다. 수다의 발명가는 여자들이었지만 그 수다를 매우 유용하게 쓴 것은 남자들이었다. 정보의 불통은 확실히 사냥의 성공률을 떨어뜨렸다. 사냥 도중에 전술을 교환할 수 없음을 깨달은 수렵가들은 사냥 전과 사냥 후에 충분한 토론을 벌임으로써 위대한 수다 대열에 합류한다.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우리의 언어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제한된 갯수의 소리와 기호를 연결해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무한한 갯수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주위 세계에 대한 막대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소통할 수 있다. 녹색원숭이도 동료들에게 ‘조심해, 사자야!’라고 외칠 수 있지만 현대 여성은 친구에게 ‘오늘 아침 강이 굽어지는 곳 부근에서 한 무리의 들소를 쫓는 한 마리의 사자를 보았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어서 그녀는 정확한 위치와 그곳까지 가는 여러 길들까지 묘사할 수 있다. 이 정보를 두고 그녀의 무리는 강에 접근해서 사자를 쫓아버리고 들소를 사냥할 것인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도 있다.’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년 전 획득한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주었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뒷담화 이론은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는 무수히 많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의사소통의 대다수가 남 얘기다. 이메일이든 전화든 신문칼럼이든 마찬가지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우리의 언어가 바로 이런 목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일 지경이다.’
 ‘뒷담화 이론과 강변의 사자 이론은 둘 다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사람이나 사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는 사피엔스 뿐이다.’
 - ‘사피엔스(Sapiens)’, 유발 하라리

 동굴 속의 수다맨들이 거둔 성과는 식량증산에 머물지 않았다. 그들의 막강한 경쟁자인 네안데르탈 인종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몸집도 크고 힘도 셌다. 현생 인류에게 그들은 살인병기나 다름없었다. 사냥에 있어서나 상호간의 싸움에 있어 유리함만 갖춘 네안데르탈 인종은 과묵했다. 굳이 나불대고 지껄일 필요가 있겠는가? 호모 사피엔스만이 눈을 부비며 ‘밥샘토론’에 목숨 걸 수밖에. 동굴 속의 사피엔스 수렵가들은 그날의 사냥을 복기하며 전술을 가다듬고 다음날의 사냥을 시뮬레이션으로 떠올리며 작전을 구상했다. 수다로 만들어내는 예측과 상상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같은 우월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지구의 유일한 인류로 남게 해주었다.
 
▲미수다(美-)를 추방한 추수다(醜-), Bad boys

 우리 모두가 감옥으로 들어가니 소크라테스가 막 사슬에서 풀린 참이었고, 그 분의 아내 크산티페가 아이를 팔에 안고 소크라테스 옆에 앉아 있더군요.그녀는 우리를 보자 부녀자가 으레 그러듯 울부짖었습니다.
 “오! 소크라테스. 이제 친구들이 당신과 이야기하는 거나 저분들이 당신과 이야기하는 거나 이것이 마지막이군요.”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눈을 돌려 말씀하셨습니다.
 “크리톤, 사람을 시켜 저 사람을 집에 데려다 주게.”
 그러자 크리톤의 하인 하나가 그녀를 데리고 나갔는데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가슴을 치고 하였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 중에서

 아테네의 이 수상한 남자들, 지금 뭐하는 짓인가? 평생을 한 남자만 보고 살아왔고, 싸돌아다니는 남편 대신에 살림 도맡고, 싸질러놓은 자식들 키워 대를 잇게 한 주인공이 누군데 여자를 비하하는 것인가? 여자들은 으레 ‘울부짖고 소리 지르고 가슴을 치는’ 침팬지나 오랑우탄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테네의 남자들이 그들의 고귀하신 스승을 거론하는 역작에 차마 기록할 수 없었던 크산티페의 살아있는 싱싱한 언어를 상상하는 건 실로 유쾌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오매불망 그리던 당신 친구들 왔소. ‘이놈의 여편네 언제나 가나?’ 하고 기다리던 차에 참 잘되얏소. 칠십 평생을 밖으로만 싸돌아댕기고, 내 배도 모자라 딴년 배에까지 싸질러놓고 나몰라라 하고 뒈져불면 퍽이나 속시원하겄소. 나는 인자 갈탱께, 죽고못사는 당신 친구들하고 하루죙일 주딩이 놀림서 노씨요. 오메, 이년의 팔자여! 아이고, 저놈의 웬수덩어리!”

 크산티페, 짱! 진정으로 그녀는 호모 사피엔스의 적자(嫡子)다. 7만년 전 생존적 차원에서 이룩한 채집가와 수렵가의 위대한 업적을 이어받은 빛나는 후손이지 않은가? 호모 사피엔스가 그들의 마지막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난 후, 수다의 피교육자 수렵가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수다의 교육자 채집가들에 대한 배신이었다. 남자들은 수다의 무용성을 주장했고 침묵의 고귀함을 역설했다. 급기야 그들은 ‘문자’라는 새로운 소통 체계를 창조한 뒤에 소리로 말하는 재미 대신에 눈으로 읽는 따분한 행위를 유포했다.

 지식의 축적과 지식을 축적할 체계를 발명했음에도 여성은 상대적 수혜자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로부터 소외받고 착취당하는 비운의 역사를 살아왔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등의 부정적 ‘수다 이데올로기’는 여성 억압적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데에 이용되었다. 말을 통해 아름다운 관계를 만드는 대신에 가랑이를 벌려 남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는 추악한 ‘인어공주’ 이야기는 얼마나 잔혹한가?

 그날, 크산티페의 강제 퇴실 직후 아테네의 남자들은 무엇을 했던가? ‘오! 스승님, 자살이란 말입니다’와 ‘오! 제자들이여, 철학이란 말이지’ 운운하며 온종일 수다로 보내지 않았던가? 참으로 배은망덕한 ‘소피엔스’ 아닌가? ‘수다’는 우리말 ‘쏘다’에서 유래한다. 수다는 입에서 발사되는 총알과 같은 것이다. 총알의 위력과도 같은 수다가 호모 사피엔스를 지구의 지배자로 진화시켰다. 그런데 그 중의 절반이 그 대열에서 추방되었다. 왜 그랬을까?
울부짖는 크산티페를 몰아내고 아테네의 남자들은 ‘자살’이며 ‘철학’이며 ‘영혼’에 대해 하루종일 수다를 떨었다.

 
▲아프리카로 돌아간 ‘해미 사피엔스’

 “나 곧 아프리카에 간다. 그동안 열심히 돈 모았거든. 여행가려고.”
 “왜 하필 아프리카야?”
 “너, 그거 알아?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부시맨. 부시맨들에게는 두 종류의 굶주린 자가 있대. 굶주린 자, 영어로 헝거.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 리틀 헝거는 그냥 배가 고픈 사람이고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에 굶주린 사람이래. 우리가 왜 사는지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런 거를 늘 알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배가 고픈 사람이라고, 그레이트 헝거라고 부른대.”
 - 영화 ‘버닝’ 중에서

 해미의 마임은 예술도 아니고 취미도 아니다. 그녀에게 마임은 표출되지 못한 분노의 절제된 표현이며 침묵으로 드러난 위장된 저항이다. 해미는 그레이트 헝거를 꿈꾸었던 것일까? 안타깝지만 그녀는 3만년 전 동북아시아에 도착한 호모 사피엔스 중 지속적으로 말을 잃어왔던, 최초의 채집 지식인으로부터 무섭게 이탈돼온 종말의 리틀 헝거다.

 날이면 날마다 탐욕의 몸뚱이로 그들이 가진 기름진 부유(富有)를 소비하지 않으면 소멸할 ‘오렌지’들에게 해미는 그저 ‘귤’ 고픈 리틀 헝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리틀 헝거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서도 그레이트 헝거를 꿈꾼다. 아주 머언 옛날 해미의 조상 할머니 채집가들이 배고픔을 참아가며 두뇌를 살찌웠듯이 해미도 삶의 의미로 그녀의 척박한 몸을 비옥하게 하려 했을까?

 7만년 전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그리고 7만년 만의 ‘리턴 투 아프리카(Return to Africa)’. 만약 ‘해미 사피엔스’가 세월을 거슬러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를 떠나기 전의 호모 사피엔스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나누게 될까? 우리가 밤잠을 설쳐가며 나누었던 수다, 그 수다가 만든 빛나는 언어와 우수한 두뇌는 얼마나 발전된 모습으로 변했느냐고 해미에게 묻는다면 그녀는 어떻게 말할까?
날마다 탐욕의 몸뚱이로 기름진 부유를 소비하지 않으면 소멸할 ’오렌지’들에게 해미는 그저 ‘귤’ 고픈 리틀 헝거다. 그러나 리틀 헝거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서도 그레이트 헝거를 꿈꾼다. 영화 ‘버닝’ 중 한 장면.


 “난 판토마임을 해요. 말같은 건 필요하지 않아요. 귤을 먹고 싶으면 마임을 하지요. 귀찮게 왜 말을 해요? 배워보실래요?”
김시인 <인문학공간 소피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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