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믿은 작가의 기발한 이야기

 ‘강도’라는 낱말에는 온갖 부정적 느낌이 가득하다. 그래서 나쁜 사람을 보면 정말 순 날강도같다고 여지없이 ‘강도’에 갖다 붙인다. 이런 강도를 그림책의 소재로 삼는다면 어떨까?

 강도처럼 나쁜 사람을 미화시켜서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지도 모른다며 심한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토미 웅게러는 어른이 갖고 있는 악이라든가, 부정적 선입견을 재조명하고 싶어서 강도나 뱀, 악어같은 부정적 이미지의 소재를 일부러 선택했다. 그것은 쉽지 않는 도전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성공적으로 이미지 변신을 이뤄냈다. 그것도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을 통해서 말이다.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토미 웅게러의 그림책 (세 강도)이다.

 
▲강도들 훔쳐서 쌓은 보물굚 어디에 쓰나?
 
 옛날 옛날에 무시무시한 강도 세 사람이 있었대. 강도들은 커다란 검정 망토와 높다란 검정 모자로 온몸을 가리고 돌아다녔지. 첫 번째 강도는 나팔총을 가지고 다녔어. 두 번째 강도는 후춧가루 발사기를 가지고 다녔고, 세 번째 강도는 커다랗고 빨간 도끼를 들고 다녔지. 컴컴한 밤이 되면 강도들은 훔칠 게 뭐 없나 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녔어. 사람들은 강도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었지. 여자들은 기절했고, 용감한 남자들도 달아났어. 개들도 도망갔지. 강도들은 말 눈에 후춧가루를 뿌려 마차를 세웠어. 도끼로는 마차 바퀴를 부수었고, 나팔총으로는 사람들을 위협해서 돈을 빼앗았지.

 강도들의 소굴은 높은 산 위의 어느 동굴에 있었어. 빼앗은 물건들을 그리로 옮겨 두었지. 강도들은 금, 장신구, 돈, 시계, 결혼 반지, 보석들로 가득한 궤짝을 여럿 가지고 있었어. 지독히도 깜깜한 어느 날 밤에, 강도들은 어떤 마차를 세웠단다. 마차에는 딱 한 사람이 타고 있었어. 티파니라는 고아였지. 티파니는 강도들을 만나게 되어 기뻤단다. 마차 안에는 티파니를 빼고는 보물이 한 점도 없었어. 그래서 강도들은 따뜻한 망토로 티파니를 감싸서 안고 데려갔어.

 강도들은 동굴 구석에 티파니를 누일 푹신한 잠자리를 마련했어. 티파니는 거기에서 잠들었지. 다음날 아침에 티파니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주위에 반짝이는 보물이 담긴 궤짝들이 있는 거야. 티파니가 물었어.

 “이게 다 뭐에 쓰는 거에요?”

 강도들은 말문이 막혀 횡설수설했단다. 강도들은 자기네 재산을 어떻게 쓸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거든. 강도들은 자기네 보물을 쓰려고, 길을 잃은 아이나, 불행한 아이, 버려진 아이들을 닥치는대로 데려왔어. 강도들은 이들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성을 샀어. 아이들은 빨간 모자와 망토를 차려 입고, 새 집으로 이사했지. 성에 대한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어. 날마다 세 강도네 문가에는 제 발로 찾아오거나, 누군가 데려다 놓은 아이들이 있었지.

 아이들은 자라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어. 아이들은 성 근처에 집을 지었지. 마을은 점점 커졌고, 온통 빨간 모자와 빨간 망토를 차려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찼어. 사람들은 인정 많은 양아버지가 된 세 강도를 기리려고 뾰족 지붕이 있는 높은 탑 세 개를 세웠어. 강도 한 사람에 탑 하나씩이었지.

  
▲ 달, 뱀, 악어, 낙지, 강도를 소재로
 
 토미 웅게러의 그림책은 단순한 선과 선명한 색이 인상적이다. 내가 웅게러의 그림책을 처음 만난 것은 바로 (제랄다와 거인)이라는 책이었다. 거인이 제랄다라는 소녀를 납치해서 함께 사는 파격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지 않은 그림책이라는 뒷 이야기도 담고 있는데, 그림책에 이런 소재를 쓰다니 놀랍고 신기해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그림책의 글과 그림을 다 맡은 작가, 토미 웅게러는 제 2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의 점령지였다가 프랑스 땅이 된 스트라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여 디자인 학교를 입학했으나 중간에 그만 두고, 오랫동안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방랑 생활을 하다가 1956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유럽 각지를 떠돌았던 웅게러의 젊은 시절은 빈곤과 병치레의 연속이었다. 일자리를 찾던 웅게러는 어느 출판사 문 앞에서 쓰러지게 되고 웅게러의 품에서 그림을 발견한 편집장이 즉석에서 그림을 의뢰하게 됨으로써 그는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웅게러는 색다른 소재를 사용하여 독창성이 강한 그림책을 출간하였는데, 달, 뱀, 악어, 낙지, 강도와 같이 외형적으로 볼품도 없고, 연상되는 이미지가 악이나 부도덕을 나타내는 대상을 선택하여 작품을 그려나갔다. 웅게러는 기성 사회가 만든 그릇된 가치관이나 선입견을 배제하고 자기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 내었던 것이다.

 웅게러는 그림책 작가말고도 화가, 광고 미술가, 조각가로도 활동하였으며, 기발한 착상과 빠른 전개가 돋보이는 그림, 그리고 그로테스크하며 시니컬한 웃음이 넘치게 하는 그림을 주로 그렸다.-작가 소개 내용 인용


  
 ▲기성사회가 만든 가치관·선입견 배제
 
 (세 강도)역시 웅게러의 가치관이 그대로 담긴 그림책의 하나이다.

 그가 쓴 또 다른 그림책을 한 권 더 소개하자면 뱀과 할머니가 등장하는 (크릭터)다.

 이야기는 뤼즈 보도 할머니가 어느 날 아프리카에서 파충류를 연구하는 아들로부터 생일 선물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선물 꾸러미 속에는 똬리를 틀은 커다란 보아뱀이 들어 있다.

 처음에는 할머니도 기겁을 했지만, 동물원에서 독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정성껏 기르기 시작한다.

 뱀에게 젖병을 물려 우유를 먹이기도 하고, 뱀의 길고 날씬한 몸에 맞을 긴 털옷을 짜주기도 한다. 할머니는 당신이 일하는 학교에까지 보아뱀을 데리고 와서 아이들과 함께 알파벳 공부며 숫자 놀이를 하도록 하고 그때마다 유연한 뱀의 몸이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좋은 교구 노릇을 한다.

 남자 아이들은 보아 뱀을 미끄럼틀 삼아 함께 놀고, 여자아이들은 줄넘기 삼아 함께 즐긴다.

 그런데,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과 뱀의 우정의 평화를 깨는 사건이 생긴다. 바로 할머니의 집에 강도가 침입하였고, 그 때 몸을 아끼지 않고 보아 뱀이 강도를 잡는데 앞장을 선다. ‘뱀은 위협적이다’는 인식을 ‘뱀은 해롭지 않다’는 새로운 인식으로 바꾼 것이다.

 2003년 2월 28일, 73세의 토미 웅게러는 독일의 어린이 책 작가상인 에리히 케스트너 상을 받았다. 프랑스와 독일이 화해한 지 40년 되던 해인만큼 의미 있는 일이었는데 그 때 웅게러는 수상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케스트너가 글에 담은 것을 나는 그림으로 그렸다. 케스트너와 나는 세상의 악,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를 무기로 사용하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같은 피를 가진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우리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엇인가는 해야만 한다.

 특히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은 사회의 선을 위해 재능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재능을 부여받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선한 의지에서 나온 유머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서 세상 여기저기의 고통을 줄일 수는 있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긴 하지만, 그리고 점점 나빠지고 있지만, 때때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는 곳이다.”
 -‘그림책의 이해’(현은자, 김세희 지음)에서 인용

  
▲“선한 의지서 나온 유머는 세상을 변화시킨다”
 
 ‘선한 의지에서 나온 유머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서 세상 여기저기의 고통을 줄일 수는 있다. 세상은 때때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는 곳이다.’

 나는 웅게러의 그림책이 그런 힘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한 의지에서 나온 그의 그림책은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가 가진 이야기의 힘은 여전하다. 그가 주는 웃음과 감동은 그가 만든 선이나 색만큼이나 단순하도 명쾌하다. 결코 어렵지 않다. 딱 그가 가진 생각만큼 그의 그림이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그림책 작가들은 글 보다 그림에 더 강한 면모를 보이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또 아예 그림에는 자신이 없어서 다른 이에게 그림을 맡기기도 한다. 하지만 웅게러의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이기에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그이기에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같다. 참 재능이 많은 사람이이다.

 색을 굳이 많이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으며, 화려한 선이 아니어도 감동을 살려낼 수 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에 그림은, 그래서 많은 그림책 작가들이 닮고 싶은 그림이다.

 웅게러의 그림책을 보면서 나도 그처럼 글과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에 그림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누구든 선한 의지가 있다고 해서 그 의지를 다 실현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다 인정받지도 못한다. 오히려 곡해되어 상처받기도 한다.

 하지만 웅게러는 아주 성공적으로 우리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이 늘 옳은 것은 아니며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세상은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태초에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처럼 독사 굴에 어린이가 손을 넣어도 되고, 사자들과 함께 뒹구는 것이 가능한 아름다운 낙원이 현실세계에서도 가능해지기를 기도해본다. 웅게러의 그림책이 그곳에 함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하늘 <인문학공간 소피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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