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 정치인들은 미움 받기 시작했을까.
 
 잘 알려져 있듯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고라의 민회(民會)를 기반으로 한 직접 민주주의가 횡행했다. 어린이와 청소년, 여성, 그리고 노예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시민권을 획득한 자가 곧 정치인이었으니, 최소한 정치인이라고 해서 눈 흘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정치인들은 미움 받기 시작했을까. 그건 아마도 우리가 정치 바깥에 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이 사회에 만연한 정치혐오(politicophobia)를 묘사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그 놈이 그 놈.’ ‘어차피 다 똑같다.’ 그 뿌리 깊은 정치혐오는 엄밀하게 구분되어야 할 정치적 양태들을 정말로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정치적 목소리를 박탈당한 이들에게 이 볼멘소리는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말할수록 정치인들을 용이하게 미워할 수 있겠지만 정작 현실정치에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정치혐오를 혐오하다
 
 정치혐오를 이겨내기 위해서 내가 택한 방식은 정치였다. 2년에 한 번 투표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당원이 되기를 선택하면서 매일같이 정치판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정치판에 대한 혐오가 상쇄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치혐오는 생각보다 끈질겼다. 정치혐오를 혐오하기 시작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유권자에 대한 혐오가 움튼다. 내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았던 풍경은 이랬다. 시장에서 한 상인은 정치인에게 이 주변 쓰레기를 한 번이라도 주워봤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는 유권자가 왕이라고, 정치인은 그 앞에 엎드려 절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다. 아무도 줍지 않을 쓰레기를 정치인이라고 해서 주울 이유가 없고, 고객이 왕이 아닌 것처럼 유권자도 왕이 될 수 없다. 달리 말해 쓰레기 줍는 정치인은 무능하며, 유권자의 명령을 받드는 정치인은 무력하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머슴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꼭 있다.)
 
 어느 날은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10년에 한 번이라도 택시 기사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시민 교육을 해주면 좋겠다고. 어디 가서 교육 받을 기회가 없다고.’ 사람들은 복지적 혜택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 같았다. 발밑까지 굴러오는 정치, 나와 더불어 호흡하는 정치, 그런데 먹고 살기 바쁘다고 정치를 외면하면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 혐오의 정서를 정정해야 한다. 혐오는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나는 정치인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분명하게도 정치혐오가 아니라 정치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정치권의 단단한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구멍이라도 내야 한다.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는 정치적 목소리를 직접 내뱉어야 한다. 그게 어눌하고 미약한 목소리일지라도.
 
 - 블록체인 민주주의가 정치혐오의 벽을 허물까.
 
 최근 정치권에서는 여야 구분 없이 블록체인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치인들이 제 밥그릇 돌보는 데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관심을 분산하고 시민들의 신뢰를 갈구하는 것은 특이한 현상인 것 같다. 한국 정치권은 여러 가지 모델들을 구상하고 있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이미 과감한 실험들을 시작했다.
 
 호주의 신생정당 플럭스(Flux)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이슈 중심 모바일 투표로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여 ‘정치인은 민심을 있는 그대로 대변하기만 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거칠게 말하면 정치인의 개인적 신념이 발현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는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동시에 이행할 수 있는 해법이 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인디당(Indie Party)은 자체 암호화폐 발행을 통해 토큰 이코노미를 정당 시스템에 반영하고 있다. 이들의 지향점은 정치과정에서 돈을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금권정치를 몰아내는 것이다.

△잘 알려진 스페인의 정당 포데모스(Podemos)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아고라보팅(Agora Voting)’을 도입하여 당원들이 사사건건 당의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여기에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정치참여 수준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담겨 있다.
 
 누군가는 경제성장이나 일자리 창출을 위해, 혹은 정치적 무관심을 해소하기 위해 블록체인에 열광하고 있다. 한국사회에 어떤 계기들이 작용할지 몰라도 우리의 정치참여 모습이 긴박하게 변모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흥미로운 사실은 민주주의가 그 자신의 원리를 닮아 변함없는 모양새를 유지하거나 어느 한 지점에 영원히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변화에 기꺼이 동참해보고 싶다.
은별
 
 ‘은별’님은 술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나의 기쁨과 사회적 고통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는지 게으르지만 계속해서 물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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