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중한 물그륵 지키는 법

▲ 가장 작은 길이지만 가장 중한 길. 농부에게 논두렁은 그런 길이다. 논두렁 풀과 싸우느라 오체투지중인 최영아 할매. 해남 북일면 월성마을.
 ‘주전자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떠다 놓습니다.’
 어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적 받은 성적표의 행동발달사항에 그런 글귀가 써져 있었더란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언제 어디서나 ‘주전자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떠다 놓는 사람’이 되려 하였다.
 품이 들어가는 일, 생색도 안 나는 일,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일.
 마치 굳은 맹세나 한 것처럼 그런 일을 거듭하는 사이 그 아이는 목마를 때 꼭 그 자리에 있는 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시방 어느 시암가에서 길어올리는 물 한 방울을, 어느 텃밭을 어느 들녘을 적실 물 한 줄기를, 생각한다.
 메마른 자리를 희망으로 바꾸는 물의 행로에 깃든 몸공들이 거룩하다.
<편집자 주>

 “논 보러 가요.”

 “논 보고 오요.”

 이렇듯 지성스러운 연애가 있을까.

 때론 애태움으로 때론 설레임으로 ‘보러 가고’ ‘보고 오기’를 한결같이 거듭하고 거듭한 발걸음들이 있었다. 가장 작은 길이지만 가장 중한 길. 평생 논과 눈맞아 사는 농부한테 논두렁은 그런 길이다.

 해남 북일면 신월리 월성마을, 신현수(75)·최영아(74) 부부는 시방 논두렁에 엎드려 풀과 싸우느라 오체투지중이다.

 “이것을 비어줘야 나중에 가을걷이가 수월해. 모심기 전에 해야 하는디 늦었소. 우리가 올해 모내기도 좀 늦었소. 우리가 실기를 했소.”

 ‘실기(失期)’를 고백하며 어린 모를 들여다보는 눈길에 애잔함이 담겼다.

 여린 연두를 단단한 초록으로 키우려고 물을 담은 큰 물그릇 무논. 행여 새는 데는 없는지 구멍 단속이 큰 일이다.

 “쥐가 구녕내고 드랭이라고 장어같이 생긴 것이 내고 논고동 그것도 내. 물을 품고 있는디 구녕 있으문 밑빠진 논에 물붓기여. 근께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보고 수시로 들여다봐. 벼가 주인 발소리를 듣고 큰다는 것이 뻘소리가 아녀. 그만치 늘 돌보는 것이여.”

 논두렁에 구멍 때우는 법을 그이는 할아버지한테서 배웠다.

 “내 손 지나간 자리에 다른 사람 손 댈 것 없이 헌다”는 일의 원칙을 학교가 아니라 들에서 배웠다.

 근위무가지보(勤爲無價之寶)라고, 부지런은 값없는 보물이라는 그 말씀도 괭이로 삽으로 줄을 그은 논두렁 경전에서 읽었다.

 무논은 ‘소 발굽 적실 정도’만 촉촉해도 된다 하였으나 그만치 물을 지키기도 쉽지 않았다.

 “나락은 물이 밥인디 비 안 오문 아조 속이 보타져. 지금은 관정 있어서 모타로 품지만 전에는 가물문 둠벙 파갖고 둠벙물을 드레질로 품었어.”

 월성마을 박성무(65)씨도 시방 논두렁 단속중이다.

 “전에는 물쌈들 많이 했어요. 어디 똘물이라도 쪼끔 내로문 서로 댈라고 쌈이 나요. 몰래 터불고 도로 막고 그러다 보문 다툼이 일어나.”

 여름한철 논두렁에서는 낮이고 밤이고 큰소리가 나곤 했다.

 “촌 동네가 모다 자자일촌이라 다 한 집안이여. 아제 되고 조카 되고 그런 사이라도 물 때문에 다퉈. 그래서 ‘아제고 조지고’ 그런 쌍말이 나와. 물 앞에서는 아제도 필요없다는 것이여. 그만치 물이 중해.”

월성마을 윤계옥 할아버지네 논의 물꼬. 물 조절에 맞춤한 돌을 과학적으로 배치했다.|||||

 물을 빼앗길까봐 밤에도 잠을 안자고 물꼬를 지켰다.

 어느 동네서는 “아무개집 아짐이 깨를 벗고 물꼬 저테서 잤다”고 그런 소문이 돌기도 했다. 내 논에 물 한 방울도 내어주지 않겠다는 집념이었다.

 “물꼬가 밥줄인게 목구녕 지키는 거여. 논에 물 들어가는 것이나 자식 입에 밥 들어간 것이나 같애.”
 <아버지는 죽어서도 물 걱정 하리
 죽어서도 가물에 타는 벼 한 포기에 애타 하리>
 (고재종, ‘땅의 아들’ 중)

 농사꾼은 방안에 들앙거서도 맘으로는 항시 논을 보고 있는 사람이었다.

 “중한 것은 늘 머리에서 떠나들 않는 법이여. 글케 공을 딜여 맨든 것이라 귀해. 값이 낮다고 천헌 것이 아녀. 우리는 그런 맘으로 지스고 살아.”

 꺾어진 허리로 들에 엎드려 불볕과 비바람 속에 집집이 밥상의 밥그릇에 밥을 지어내 주는 그이들.

 “작물한테는 거짓이 안 통해. 앞허고 뒤가 같고 껍딱이나 속이나 똑같애야제.”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최성욱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