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새들’에서 `푸릇푸릇’으로
백 살 할매 텃밭에 납셨네

▲ 수돗가에서 텃밭까지 행로가 천로역정이다. 말라가는 생명을 푸르게 살려내려는 백 살 박복례 할매의 걸음걸음. 순창 동계면 추동마을.
 ‘주전자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떠다 놓습니다.’
 어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적 받은 성적표의 행동발달사항에 그런 글귀가 써져 있었더란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언제 어디서나 ‘주전자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떠다 놓는 사람’이 되려 하였다.
 품이 들어가는 일, 생색도 안 나는 일,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일.
 마치 굳은 맹세나 한 것처럼 그런 일을 거듭하는 사이 그 아이는 목마를 때 꼭 그 자리에 있는 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시방 어느 시암가에서 길어올리는 물 한 방울을, 어느 텃밭을 어느 들녘을 적실 물 한 줄기를, 생각한다.
 메마른 자리를 희망으로 바꾸는 물의 행로에 깃든 몸공들이 거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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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을미년생. 딱 올해로 백 세이시다.

 순창 동계면 동심리 추동마을 박복례 할매가 올해 새로 입적한 가족 중에 대문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들은 토란.

 <내가 뿌린 씨앗들이 한여름 텃밭에서 자란다/ 새로 입적한 나의 가족들이다/ 상추 고추 가지 호박 딸기 토마토 옥수수 등의/ 이름 앞에 김씨 성을 달아준다/ 김상추 김고추 김가지 김호박 김딸기…> (김종해 ‘텃밭’ 중)

 그러니까 이 토란들은 모계를 따지자면 박토란들인 셈이다. 할매는 이 가족들 때문에 요새 하늘에 대고 부탁하는 원(願)이 간절하다.

 “그저 비나 한 둘금 뿌래주씨요이.”

 행여 초록잎이 시들새라 할매 텃밭에 납신다. 지팡이를 의지해서 뙤작뙤작 수돗가에 가서 수대에 물을 담고 바가지를 띄워 텃밭으로 드는 몇 걸음이 천로역정이다.

 이윽고 토란을 향해 기울인 바가지의 물코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각도는 가파르지 않고, 물흐름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것이 백년을 살아낸 할매의 내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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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들새들했던 박토란네들은 비로소 쾌청한 얼굴을 푸릇푸릇 쳐들고 할매를 치어다보고 있다.

 “도시는 돈이 중해도 촌에서는 비가 중해. 농사는 하느님에가 매였어. 하느님이 한 둘금 내려주문 다 펄펄허니 살아나. 뭐시그나 쭉쭉 커.”

 전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이 노했다고 제를 지냈다.

 “큰 가뭄 들문 기우제를 지내. 날 받아갖고 새로 장봐다 여자들이 음석 장만해주문 남자들이 갖고 산으로 올라가. 기우제 지내고 나문 어쩔 때는 산에서 비들을 맞고 와. 모다 지성시럽게 원을 허문 하늘에서 글케 들어줘.”

 지구의 한 조각을 초록으로 덮은 할매의 텃밭. 박토란 옆으로 박콩 박고구마 박생강이 옹기종기 키를 키우고 있다.

 “내가 안즉은 씨를 간직해. 씨가 있고 흙이 있으니 씨를 숨구는 거여. 왜 못 키와. 자식도 야달을 키왔는디.”

 작은 수대에 물을 채워 몇 번이고 밭고랑을 드나드는 걸음은 자식을 키우는 그 맘이신 것이다.

 “한번이라도 더 딜여다보고 그러문 후회를 덜 허제. 더 잘헐 것을 그리 안허고 홀홀 털제.”

 말라가는 생명을 푸르게 살려내려는 진양조의 걸음걸음.

 오늘 이 땅 위 누구의 이력이 이처럼 장중할까.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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