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투성이 흙투성이를 씻고
갯시암

▲ 여수 소라면 사곡리 섬달천 갯시암.
 ‘주전자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떠다 놓습니다.’
 어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적 받은 성적표의 행동발달사항에 그런 글귀가 써져 있었더란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언제 어디서나 ‘주전자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떠다 놓는 사람’이 되려 하였다.
 품이 들어가는 일, 생색도 안 나는 일,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일.
 마치 굳은 맹세나 한 것처럼 그런 일을 거듭하는 사이 그 아이는 목마를 때 꼭 그 자리에 있는 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시방 어느 시암가에서 길어올리는 물 한 방울을, 어느 텃밭을 어느 들녘을 적실 물 한 줄기를, 생각한다.
 메마른 자리를 희망으로 바꾸는 물의 행로에 깃든 몸공들이 거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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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뻘에 산 사람들은 뻘이 불러.”

 오늘도 그 부름에 응답하여 뻘바닥을 기고 또 기었다.

 길 없는 곳에 길을 내는 동력의 근원은 오로지 몸뚱아리.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발이 푹푹 빠지는 뻘에서 치러내는 극한의 전투다.

 “장화 신고는 못들어가. 뻘이 발을 쭉쭉 잡아댕겨.”

뻘에서 뭍으로. 갯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에서 온통 뻘투성이 흙투성이 옷과 얼굴을 씻는다. 순천 해룡면 와온마을 뻘밭.|||||

 순천 해룡면 상내리 와온마을 뻘밭. 뻘배 아니면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차진 뻘이다. 어매들은 이곳에서 ‘널을 탄다’. 왼무릎은 널 위의 또아리에 단단하게 붙이고, 오른발은 헤엄치듯 그침없이 뻘밭을 내젓는다.

 “널 타기가 애러와. 첨에는 물팍이 다 벗어져. 요리 갈라 하문 절로 가고 절로 갈라글문 욜로 가고.”

 그리 바닥을 기어 자식들을 가르쳤노라는 안수 어매(75).

 “울 아들이 학교 댕길 때 지그 친구한테 그러드래. ‘울 엄마돈은 뻘묻은 돈이다. 나(내)가 뻘로 쓰문 안되는 돈이고, 나는 뻘짓허고 살문 안된다’고 그런 말을 허드라고.”

 온몸이 뻘 속에 파묻혀야만 끄집어올릴 수 있는 것이 ‘맛’. 뻘에 들어가면 널은 맛밭에 앉혀놓고, 다라이 하나 끌고 맛을 캔다. 오뉴월 해는 뜨겁고 뻘밭엔 그늘 한 점 없다.

 “숨이 칵칵 맥해. 그래도 한번 뻘에 들어가문 못나와. 저 널룬 뻘밭에서 징역살이매니로 풀려나들 못해.”

 뻘징역에서 풀려나는 것은 물이 궁뎅이 밑에까지 달라들 때. 드는 물을 졸졸졸졸 달고 널을 밀고 나온다.

 어느 한 날 뻘투성이 흙투성이의 삶을 마다해 본 적이 없다.

 이윽고 뻘에서, 일에서 풀려난 어매들이 갯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에서 온통 뻘투성이 흙투성이 옷과 얼굴을 씻는다. 경계에서 치러지는 퇴근의 의식. 비로소 다른 세상으로 나온다. 뻘에서 뭍으로.

 내일이면 또 ‘뻘의 부름’에 응답할 게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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