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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돼지해 맞이하는 일탈 여행
낙지와 굴과 매생이와 물회가 있는 풍경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9-01-04 06:05:02
 대구의 벗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년을 장흥에서 맞이하겠다는 그래서 합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에 있을 적 강릉이라고 호출을 했었고, 막창이 맛있다고 대구로 오라고 통보를 하던 대구의 벗을 만난 게 2004년의 일이니 어언 15년간을 그렇게 지내왔다.

 만나서 하는 일은 대개 문화현장의 이슈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 내내 어떻게 먹고 놀 것인지 궁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자리는 무장해제 그 자체로 에너지를 가지며 확장성을 내포한다. 언젠가 통영에서 너무나 신나게 놀다가 하루를 더 지내고 돌아왔던 기억도 있다.

 이번 신년 모임의 장소는 장흥군 대덕의 내저 마을이다. 그곳에는 서울과 장흥을 오가며 문화활동을 하는 선배가 4년째 둥지를 틀고 있다. 집 바로 앞이 바다다 보니 틈나는 대로 낚시를 해서 생선을 말려놓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선배다. 반찬이나 안주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세 번이나 낙지를 먹어본 경험이 있는 친구는 올 때 반드시 세발낙지 한 접과 해산물을 준비해 오라고 한다.
 
▲장흥군 대덕 내저마을에서
 
 31일 바쁜 일상을 마감하고 똘똘이 스머프라는 별명을 가진 후배와 차에 동승해 목포로 향하다 선배에게 낙지 도매를 하는 가게의 전화번호를 얻는다. 북항의 회타운 안쪽에 있다고 전해준다. ‘그래 그곳이 신안이나 무안에서 나온 낙지의 집합처가 맞지’하며, 며칠 한파가 찾아온 가운데도 낙지가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어둠이 다가올 무렵 북항에 도착했다. 세발낙지는 떨어지고 없고 그 보다 더 큰 낙지가 있다. 한접에 9만 원을 한다. 통째로 먹기에는 부담스럽겠다 싶지만 챙겨본다. 주인장은 이것을 어디로 가져갈 것인지 묻는다. 장흥이라고 하니, ‘이 낙지가 장흥서 왔는데’ 하면서 이즈음의 낙지 주산지는 장흥이라고, 무안이나 신안에서는 낙지가 잘 안 나온다고 일러준다. 그런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안타까운 것은 세발낙지를 몇 마리라도 구하는 것이다. 그런 심정을 알아챈 주인장이 이리 저리 수소문해서 세발낙지도 구했다. 반접에 5만 원이다. 내친김에 굴도 한 망태 사고 말린 우럭도 두통을 샀다. 이만하면 다섯이서 이틀간은 넉넉하게 먹어 넘길 수 있겠다 싶었다.

 이제 모든 쇼핑을 마쳤으니 장흥으로 향한다. 영암과 강진을 거쳐 마량항쪽으로 향한다. 모든 차들의 운항이 정지된 가운데 라이트를 켜며 달리는 차의 우현으로 장검 같은 도암만이 펼쳐진다. 저 바다에 고니들이 있겠지 싶지만 해찰은 금물이다. 허기를 술로 달래며 기다리고 있을 벗이 먼저이니. 별빛이 쏟아지는 가운데 시누대와 대나무와 동백 울타리로 둘러쳐진 선배의 집에 도착했다.

 벌써 설성막걸리를 비롯한 각종의 막걸리 병이 보인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마신 것 치고는 양이 많다. 반가운 인사를 하며 자리에 둘러앉았다.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들이지만 이렇듯 모든 것을 버려 놓고 함께하기 어려운 자리임을 아는지라 한시가 급하다. 주인장은 참기름과 소금을 섞어 기름소금을 내어놓고, 낙지를 한입에 넣으려면 나무젓가락이 최고라며 챙겨온다. 대구에서 온 두 명의 벗이 낙지를 냉큼 손으로 잡는다.

 쭈욱 미끄러지며 흡착판을 팔목까지 들이미는 광경이 연출되고, 그럼에도 숨구멍을 찾아 젓가락을 후벼 넣으며 다리를 훑어 낸다. 초장이나 기름소금에 찍지도 안고 입안에 넣는 것이 어지간한 전라도 사람들보다 익숙하다. 겨우 세 번에 먹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낙지는 전라도만의 고유한 식습관을 지상에 전파한 매개 역할을 했던 것 아닌가. 한 여름 고된 노동에 시달린 소가 거품을 물고 쓰러지면 낙지 한 마리 먹이고 나서 벌떡 일어섰다는 전설 같은 힘을 가진 낙지를 대구 사내들은 연이어 먹고 있다. 지난번 대구 김광석 거리 활성화를 위한 회의에 갔을 때 낙지를 모셔오라는 벗의 부탁을 잊어버리고 합천을 지날 때 쯤 그에게서 낙지와 함께 오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 등짝에 식은땀이 흐르던 기억이 선연하다. 그날의 위기는 잘 발달된 교통편으로 고속버스를 통해 모면했었다. 그때도 대구 사내 일곱이서 낙지를 세 접이나 먹어 치웠었다. 나는 서너 마리면 질려서 손이 안 가는데, 이들에게 전라도의 갯벌이 선물한 낙지는 먹는 행위 자체부터가 경이로움이었고, 독특한 체험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낙지, 전라도만의 고유 식습관 전파 매개체
 
 몇 순배의 술이 돌았다. 개성이 다른지라 누구는 맥주, 누구는 소맥, 누군가는 막걸리를 들다가 이제는 굴을 찾는다. 마당에 적정기술로 만든 화덕이 있다. 거기 집주위의 마른 나무를 찾아와 얹으니 불이 활활 타오른다. 한파가 아직 남아있는 겨울 바닷가의 한기도 이 열기와 취기에 녹아든다. 금세 삶아진 굴을 까고, 누군가는 계란도 구워 먹는다고 호일에 싸서 적사에 올려놓고, 그 틈새로 누군가는 고구마를 굽는다. 잃어버리고 살았던 고향집의 정겨움이 여기서 재현된다. 그 사이 전화벨이 울린다. 야근을 끝낸 사회적기업에 다니는 후배가 어디냐고 묻는 전화다. 장흥에 고립되어 있는데 스무 개의 컵라면과 계란 스무 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집에 들렀다 곧 출발하겠다는 전갈이다. 도착하면 11시도 넘을 시간이지만 함께 먹으면 더 맛나고 함께 얘기하면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니 후회하지 않을 권유다 싶다. 그렇게 삶아진 굴과 구워진 달걀과 고구마를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각자 편한 자세로 오미자차를 마시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면서 이야기 삼매경에 들어간다. 대학에 있는 친구는 미국 유학시절 80㎝ 미만의 바닷고기는 잡지 못하는 바다낚시를 신나게 이야기한다. 한인사회의 답답함을 이기기 위해 몇몇이서 일탈을 감행한 낚시이야기는 정말 신나는 레퍼토리가 된다. 밤은 더욱 깊어지고 내 눈이 슬며시 감겨질 무렵 컵라면을 들고 후배가 등장한다. 다시 ‘새시로’ 판이 형성된다. 선배는 라면을 끓이며 매생이를 넣을 것인지, 굴을 넣을 것인지, 낙지를 넣을 것인지 묻는다. 모두들 전부를 원한다. 면발보다 건더기가 더 많은 간식을 훌훌 입에 넣는다.

 이제 묵은해가 저물어 간다. 2018년을 풍미했던 다양한 일과들이 떠오른다. 대인시장과 테마여행10선을 운영한 나에게는 때론 버겁고 때론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계속 성장을 해왔던 야시장은 5월 이후 지속적으로 하양곡선을 그렸다. 문화전당쪽으로 펼쳐진 마켓과는 경쟁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게 되었다. 셀러의 고도화와 마스터 셀러제도의 도입 등으로 전환을 유도했지만 피로감만 극심하게 찾아왔다. 예술인을 초대하여 다양한 문화행사와 작업을 펼치는 것은 어느 해 못지않게 유지했지만 외부자나 상인들의 시선은 야시장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면을 보지 못하는 것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격감하는 내방객, 그에 따른 매출의 하락, 매주 토요일 진행이라는 피로감의 누적 등은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이었다. 그나마 전국에 10개를 선정하는 한국관광의 별이라는 상이 대인예술시장의 그간의 노고를 위로해주는 모멘텀이 되었다. 8명으로 구성된 별장팀은 오늘부로 해체된다. 고군분투 그 자체였던 벗들과는 며칠 전 회합을 가졌지만 개별적인 만남은 갖지 못했다. 돌아가면 한명씩의 소감과 앞날을 이야기 해 봐야 할 터이다. 이런 저런 허무한 마음속에 재야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아픔들은 소멸되고, 벅찬 희망의 날들만 오라는 소원을 종소리에 실어본다. 그리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역시 남도는 맛의 결정체
 
 새벽 다섯 시 눈이 뜨였다. 아직 자리는 그대로였다. 여섯 명의 사내 중 한명만이 잠을 청하고 모두들 또렷한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마당으로 나가보니 별이 쏟아질 듯 하고 달은 그네처럼 하늘에 걸려 있다. 낡은 카메라를 들고 조리개를 F2.8로 맞추고, 타이머를 20초에 두고 촬영을 한다. 가로등의 불빛이 너무나 밝은 탓인지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불과 어제, 광양 백운산의 이원규시인에게 배운 별 사진 촬영법인데, 앞으로 수백 번 하늘을 쳐다보면 저 별무리중의 몇 개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오겠지 하며, 카메라를 접었다. 마당 한 켠에 전봇대처럼 후배가 서 있다. “뭐하니”, “달이 하도 이뻐서. 눈물이 나네요” 할 말을 잊었다. 누군가에게는 소유의 대상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상념의 대상이 되는 저 우주의 몸짓들. 여명이 돋을려면 두 시간 반을 더 기다려야 하니 잠시 눈을 부치자고 권유하니 제각각 이불을 덮는다. 긴 재야의 밤이 벗들과 저물고 다시 아침 아홉 시 반, 주인장이 밥을 했다. 반찬은 총각김치와 찌개, 무산김이다. 화덕에 불을 지피고 모두들 아침을 먹는다. 밥한톨 남김없이 먹어대는 힘은 전라도의 김치 탓이었다.

 오전 잠시 문화계의 이슈를 가지고 몇 마디 나누다 포구로 나간다. 썰물의 바다에 눈보라가 치는데 어부는 말뚝을 손질하고 있다.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듯이. 우리는 회진항으로 향해갔다. 거기 물회를 잘한다는 집을 찾아서. 근자에 할아버지를 떠나보내신 주인장이 첫손님인 우리들에게 약간은 귀찮은 듯 대하신다. 상심이 크신 듯한데, 나오는 물회와 우럭탕은 대구 벗들이 표현한 것을 빌자면 “이 보다 더 맛난 것은 못 먹어봤다” 였다. 절로 자부심이 넘쳐나는 시간을 보내고 1박 2일간의 일탈은 마감했다. 역시 남도는 맛의 결정체라는 것을 절감하면서.
전고필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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