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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타이빼이서의 첫날
[타이빼이 배움 여행]<2>시먼홍로우와 101 타워에서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9-03-08 06:05:01
▲ 101타워에서 본 시내의 야경. 저 발 아래 분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차를 공항 출입구에 세우고 모두들 짐을 내리시도록 한다. 주차장은 그야말로 차로 가득하다. 무안공항에 이륙하는 다양한 국제선 영향이다. 작년에는 에어 필립이라는 항공사도 신규 취항하게 되면서 국외여행의 선택폭이 넓어졌다. 중국 장가계를 비롯하여, 필리핀, 일본의 오사카나 오키나와, 베트남의 다낭 등 직항편이 많아지며 인천까지 가는 수고로움이 한결 덜어졌다. 지난번 제주 여행을 다녀왔을 때 나름 알뜰하게 여행을 다녀왔다며 계산을 해 보니 1인당 40여만 원 정도는 들었던 것 같다. 먹고 싶은 것들 참아가며 여행했음에도 이 비용이 나오는 것에는 기본적인 항공료와 숙박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탓이었다. 심지어 렌트비는 제주에 사는 선배님이 내어 주셨음에도 그러했다. 이 분야의 전문가라는 나에게도 국내 여행비의 비용이 결코 낮지 않음을 실감하는 터인데, 실속을 중요시 하는 분들은 오죽하겠는가 싶어진다.

 하여튼 차로 가득한 주차장에서 광주 송정역 생각이 난다. 기차는 오고 있고, 주차장 입구의 차들은 다른 차가 빠져 나오길 기다리고 있을 때 그 난감함. ‘설마 주차할 곳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하며 찾아보니 겨우 몇 대 둘 공간이 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차를 두고 23˚정도의 대만의 날씨에 맞춤한 옷으로 껍데기를 벗어냈다.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먼저 환전을 하러 농협으로 갔다. 사전에 전화해 둔 덕분에 수월하게 환전이 이뤄졌다. 모든 여행 경비를 내가 책임지고 있으니, 환전액이 500만 원 정도가 된다. 돈을 잘 챙기고 수속을 마쳤다.

팔각의 홍루몽은 문화예술과 소비자가 만나는 접점이었다.
 
▲ 제주항공의 기내 이벤트
 
 시간이 여유로워 공항 내부를 둘러본다.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사업의 일환으로 목포시에서 설치한 지역관광안내 키오스크를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목포로 집중된 듯하다. 비용이 목포시에서 지급 되었으니 일견 옳은 일이지만 한편으로 연계 관광 목적지의 루트를 제공하면 훨씬 시너지가 날 것인데, 싶다. 점만 찍고 가는 관광이 아니라 선과 면으로 이뤄지고, 선이 아니어도 점이 번져가는 여행을 도모해야 하는데…라는 아쉬움을 제쳐두고 2층 출국장 쪽으로 가니 전라남도가 설치한 남도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 인공의 벽면에 전시되어 있다. 한 장의 사진이 갖는 효과가 얼마나 소구력을 가진지 알기에 사진을 보면서 관광지 한 곳 한 곳에 얽힌 이야기를 상기해 본다. 저 멋진 광경을 잡아내기 위해 얼마나 사진작가들은 기다림의 찰나를 가졌을까 라는 고마움을 뒤로하고 출국장에 들어섰다.

 대부분의 짐은 수화물로 보냈지만 나는 배낭에 노트북과 카메라까지 담겨있어 꾸역꾸역 꺼내어 검색대를 통과했다. 이제 남은 것은 면세점을 들르는 것이다. 딱히 살 것이 없다. 양주도 내 취향이 아니고, 필요한 게 있다면 대만에서 구매하는 것이 좋을 성 싶었다. 그래도 매장은 꼼꼼히 살폈다. 이제 그렇게 갈망했던 입국 면세점도 들어서게 되기 때문에 이의 파급효과가 어떨지를 고민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곱창국수를 맛보고 있는 일행들.

 정시에 비행기는 출발했다. 제주항공의 비행기는 20대와 갓 30대쯤 되어 보이는 승무원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활주로를 벗어났다. 내륙을 벗어나고 안전벨트 싸인등이 해제되면서 스마트한 승무원이 기내 맨 앞에서 승객과 게임을 제안한다. 우리 여행팀은 맨 앞줄에 앉아 있어 그 게임 제안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일견 ‘뭐 이런 걸’이라고 여길 법도 한데 승무원은 재치 있게 가위 바위 보 게임을 이끌어 간다. 전 승객을 대상으로 한 이 대회에서 승무원을 이기는 것인데, 세상에 200여 명 가까지 승선한 기내에서 우리 팀의 문화예술계장님이 승무원을 재껴 버렸다. 부상으로 컵라면이 왔다. 드실 것인지 정중한 물음이 오니 대만에서 드시겠단다. 일용할 양식 하나를 더 번 셈이 되었다. 따분할 수 있는 기내에 이런 활력을 주는 이벤트도 재미져 보였던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훌쩍 두 시간이 지났다. 이제 비행기는 다시 안전벨트를 메어줄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곧 하강한다. 대만이다.
 
▲100살 건물 현대와 접속하다
 
 가을쯤의 날씨가 지속되고 있는 대만의 공항에 우리는 내려섰다. 그리고 곧장 짐을 찾고 입국심사장으로 간다. 간소화된 서비스 덕분에 쉽게 입국을 하고 우리를 기다리는 가이드와 이내 만났다. 우리로 치면 카니발 정도로 보이는 차도 우리를 반겼다. 대만인 운전기사님과 이곳으로 살길을 모색하러 왔다는 가이드와 잠시 인사를 하고 우리는 곧장 시먼홍루로 갔다. 110살이 넘은 건물이다. 붉은 색 벽돌로 팔괘의 형상을 담아냈다. 애초 시장의 중심부이자 주변 상가와 조응하며 메인 본부와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다. 누각의 형태이니 당연히 층고를 가지고 있고, 팔각이니 그야말로 사통팔달하여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건축물이다.

 100년 이후의 세대들이 이곳에 서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 자연스러운 공간이 시먼홍루이다. 내부의 시설은 공연장과 전시관, 16개의 공방, 상품판매대, 팝업 스토어 등의 형태로 꾸며져 있다.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뤄지는 현장으로서 가치를 부여한 곳이다. 운영은 타이베이 시 문화기금회, 이를테면 우리로서는 광주시 문화재단 같은 단체가 운영한다. 다소 유연성이 떨어질까 우려되지만 그렇지 않다. 공간을 내어주어 송산문창원구 같은 곳에서 실험되고 제작되었던 작품이나 상품을 판매하거나 전시하는 역할도 하고, 공연이나 전시가 상시적으로 열리는, 대만이 자랑하는 공간이다.

홍루몽 내부에는 쇼핑객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그치지 않았다.

 상업적인 곳이 이렇게 변모하게 되는 데에는 홍루가 1960년대부터 영화 관객들의 거점 역할을 했던 데 있다. 과거 80년대와 90년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학생단체 할인을 받아, 광주극장, 제일극장 같은 곳에서 단체 영화 관람을 했던 기억과 일치하기도 하다. 대만이나 홍콩에서 제작된 영화가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시대가 있었음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지난 대만 여행기에서도 말했듯이 롱테이크를 통해 통곡의 시대를 이야기하던 ‘비정성시’나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학창시절의 비애를 그림을 통해 이야기했던 ‘로빙화’ 같은 이야기를 담아내던 대만의 영화 전성시대. 하지만 할리우드와 상업자본이 들어서며 대만 영화의 전성기는 아쉽게도 잦아들게 되어버렸다. 그곳에 다시 전시와 공연을 통해 시먼홍루가 번창하던 90년대를 보낸다. 하지만 이곳이 고적으로 지정된 97년 극장의 활동이 정지되고, 안타깝게도 2000년 화재로 인접 지역이 전소되지만 이 건물을 살아남았다. 그야말로 부활의 역사를 가진 것이다. 200년대 중반이 되며 문화예술의 플랫폼으로서 시먼홍루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여기에 화산이나 송산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창작활동의 판매기지 역할까지 겸하게 되며 당당하게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태풍이란 음식점 곳곳에는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유달리 많아 보였다.

 홍루의 내부는 곳곳에서 이뤄지는 창작활동의 결과물이 진열되고 판매되고 있었다. 단순하게 보는 것으로만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있어 나도 술병을 모티브로 다양한 변주를 가한 유리공예품을 골랐다. 대만어를 모르니 혀끝을 감도는 영어로 흥정을 해 본다. 마음씨 고운 작가는 내 뜻을 이해하고 10%의 디스카운트를 해 준다. 사고 싶은 것이 많지만 이러다 금고가 거덜 나면 안 되니 발걸음을 돌린다. 십자로의 붉은 건물이 주는 랜드마크적인 요소는 일견 서울역과 같은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이곳을 배경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이 도시의 생동감을 부여한다.
 
홍루몽에서 나오는 길은 하교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아지트로 보였다.

▲“관광산업, 최고의 인적서비스”
 
 다음으로 우리는 중심가를 약간 벗어나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국수집에 갔다. 무안에서 점심을 먹었지만 출출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곳의 곱창국수가 너무나 유명해서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던 탓이다.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먹지만 서로 얼굴 마주치면 무안해 지니 선체로 코를 박고 먹는 것이 이집의 특색이라 할 수 있었다. 나도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웠다. 외국에서 이런 적이 없는데 웬일인지 나 자신조차 어리둥절하면서. 무언가 좋은 예감이 든 간식이었다. 학생들이 파했는지 거리는 그야말로 충장로의 토요일 같은 분위기 였다.

 이제 우리는 101빌딩으로 향한다. 마천루들이 즐비한 타이베이 시에서 대만의 자존심과 같은 건물에 들어서는 것이다. 서울로 치면 63빌딩이나 남산타워로 여기면 된다. 삽시간에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이베이의 야경을 관람한다. 저 휘황한 불빛 사이에서 처음 이곳에 왔던 92년의 풍경을 떠 올려 본다. 오토바이에 꿈과 희망을 걸고 달리던 그 부지런한 대만 사람들의 모습. 이제는 왠지 도시의 풍경이 달라졌다. 무력감이나 자괴감 같은 것이 사람들 사이에 만연한 것 같아 보인다. 경이로운 아시아의 용 대만, 싱가폴, 한국 모두 병을 앓고 있는 듯하다. 부의 편중 현상. 모든 것이 도시로만 집중되는 현상. 기성세대와 미래 세대 간의 단절과 간극. 서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101 타워의 비싼 입장료 대신 얻고자 했던 대만의 아름다운 야경은 내게는 헛된 미망으로 다가온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예약이나 대기 손님을 응대하는 종업원, 대기 손님을 좌석으로 안내하는 종업원, 물을 제공하고 음식 주문을 받는 종업원, 음식물을 내어오는 종업원, 테이블의 빈 접시를 치우는 종업원,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종업원. 200여석 쯤 되어 보이는 식당과 홀은 종업원 천지처럼 보였다. 물은 셀프, 반찬도 셀프, 주문도 자판기로 변해가는 우리와는 정반대의 풍경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저녁. 밥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조차 없이 내 머릿속은 최고의 인적 서비스 산업이 관광산업이라고 배웠던 시절이 상기 되었다.
전고필<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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