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애그라 디디 글, 헨리 쇠렌센 그림
이수영 옮김, 해와나무>
풍암동에서 만난 크리스티안

▲ ‘평화와 평등을 실천하는 덴마크 왕의 이야기 노란 별’(카르멘 애그라 디디 글, 헨리 쇠렌센 그림, 이수영 옮김, 해와나무).
 풍암동에는 이상한 학교가 하나 있다. 그 학교는 마을 공원, 마을 정자, 길 위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생겨나는데, 이곳에서는 주로 초등학생들이 하나의 주제로 토론하며 생각을 나눈다. 간혹 지나가던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도 토론에 참석하기도 한다. 이 학교의 이름은 ‘뚜벅뚜벅 인권발걸음 길거리학당’으로, 오늘은 ‘뚜벅뚜벅 인권발걸음 길거리학당’에서 만난 아이들의 생각을 소개하겠다.
 
▲차이 인정하기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분다. 따스한 햇볕이 깊게 내려앉는다. 오늘 ‘뚜벅뚜벅 인권발걸음 길거리학당’은 신암근린공원 정자에 세워졌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열댓 명이 모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가 정자 주변으로 자리했다.

 오늘 이야기 나눔 주제는 ‘공평함이란 무엇일까?’이다. ‘공평’의 사전적 의미는 어느 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공정하다는 뜻이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공평하다는 것은 평등한 것, 똑같이 대하는 것 등으로 대답한다. 아이들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된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동생과 장난을 쳤는데, 누나여서 더 혼났을 때 불공평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학교에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때렸을 때와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때렸을 때를 각각 다른 무게로 평가하고, 남자아이들에게 더 많은 꾸지람과 처벌이 내려지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용돈을 나이에 따라 받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다시 질문했다. “모두 똑같이 해 주는 것이 공평한 것일까요?” 아이들에게 그림을 보여 주었다.

 첫 번째 그림은 한 사람만 짐을 많이 들고 있고, 두 번째 그림은 한 사람만 출발선 앞에 나와 있기 때문에 두 그림 모두 불공평한 상황이라고 아이들이 말한다.

 “그러면 이건 어떤가요?”

 아이들은 공평하다고 이야기한다. 힘이 센 사람이 좀 더 많이 드는 것이 공평하고, 의족을 한 아이가 앞에 나와 출발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했다. 두 아이가 똑같이 짐을 드는 것과 모든 아이가 조건에 상관없이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것이 오히려 불공평, 불평등한 일이 된다고 말한다. 비장애인 주차공간보다 장애인 주차공간이 출입구 쪽에 가깝게 위치하는 것이 공평한 것이고, 화장실 사용시간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긴 여성의 화장실 개수가 남성화장실 개수보다 많은 것이 공평한 것이라고 한다. 장애인 주차공간을 줄이거나 위치를 비장애인의 주차공간과 같이 두는 것과, 여성과 남성의 화장실을 같은 개수로 만드는 것은 오히려 불공평한 일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공평은 ‘모두에게 무언가를 똑같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기계적인 기회균등만을 강조하는 사고와 행위는 오히려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의 크리스티안과 덴마크 사람들의 노란 별 이야기
 
 1940년대로 접어든 어느 때, 덴마크라는 조그만 나라에 덴마크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키가 큰 사람, 뚱뚱한 사람, 나이 든 사람, 어리석은 사람, 괴팍한 사람, 그리고 훌륭한 사람까지, 모두 덴마크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덴마크 사람들이 사랑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크리스티안 왕이었습니다. 크리스티안 왕은 아침이면 호위병도 없이 혼자서 말을 타고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거리를 둘러보았습니다. 백성의 사랑을 받는 왕에게는 백성들이 모두 왕의 호위병이니까요.

 유럽 곳곳에서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덴마크에도 나치 군대가 먹구름처럼 몰려들었고 덴마크 왕궁에 전쟁과 공포와 증오를 불러온 나치의 깃발이 걸렸습니다. 크리스티안 왕은 덴마크 병사에게 깃발을 내리도록 했습니다. 나치의 장교가 크리스티안 왕을 찾아왔습니다.
 
 “누가 깃발을 내렸습니까?”

 “짐이 병사를 시켜 내렸소.”

 “폐하가 명령하셨다고요? 하지만 그 자리엔 내일 또다시 깃발이 걸릴 겁니다.”

 “그럼 짐은 내일 다시 병사에게 깃발을 내리게 할 것이오.”

 “그렇다면 그 병사를 쏴 죽이라고 명령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쏠 각오를 해야 할 거요. 내일 깃발을 내릴 사람은 바로 짐이니까.”

크리스티안 왕은 고민에 빠졌다. 별을 어디에 숨겨야 하나. ‘평화와 평등을 실천하는 덴마크 왕의 이야기 노란 별’(카르멘 애그라 디디 글, 헨리 쇠렌센 그림, 이수영 옮김, 해와나무).
 
 왕궁에는 두 번 다시 나치의 깃발이 걸리지 못했습니다. 이 일은 덴마크 백성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왕과 백성들에게는 더 큰 시련이 닥쳐오고 있었습니다.
 
 “경고! 유태인은 반드시 눈에 잘 띄도록 가슴에 노란 별을 달고 다녀야 한다!”
 
 덴마크 사람들은 겁에 질렸습니다. 노란 별을 단 유태인들은 어디론가 끌려간 뒤 소식을 알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티안 왕도 백성들만큼이나 걱정스러웠습니다. 크리스티안 왕에게 덴마크에 사는 사람들은 유태인이든 유태인이 아니든, 모두 덴마크의 백성이었습니다. 만약 크리스티안 왕이 군사를 일으켜 나치에 맞선다면, 수많은 덴마크 백성들이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또 다른 덴마크 백성들이 죽게 됩니다. 나치 군대는 노란 별을 달지 않으면 유태인을 알아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크리스티안 왕은 깊게 고민에 빠졌습니다. “별을 숨기려면 어디에 숨겨야 할까?”

 다음날 크리스티안 왕은 재단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날 아침, 굳은 결심을 한 크리스티안 왕은 홀로 말을 타고 코펜하겐거리로 나갔습니다. 왕은 최고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크리스티안 왕의 가슴에는 노란 별이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노란 별을 단 왕을 본 백성들은 모두 자신의 가슴에 노란 별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 ‘노란 별’(카르멘 애그라 디디 글, 헨리 쇠렌센 그림, 이수영 옮김, 해와나무)

노란 별을 단 왕을 본 백성들은 모두 자신의 가슴에 노란 별을 달기 시작했다. ‘평화와 평등을 실천하는 덴마크 왕의 이야기 노란 별’(카르멘 애그라 디디 글, 헨리 쇠렌센 그림, 이수영 옮김, 해와나무).
 
 덴마크 사람들의 가슴에는 모두 노란 별이 달려 있었다. 덴마크 사람들은 차별과 폭력의 노란 별을 또다른 노란 별로 감추어버린 것이다. 덴마크 사람들의 가슴에서 빛나는 노란 별은 바로 반인륜적인 폭력에 대한 저항이며, 다름으로 차별하는 배타성에 대한 도전이며 차이를 인정하는 공동체의식의 선언이며, 나만큼 소중한 타인의 존엄함을 수호하는 함성이었다.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살기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는 설치하는데 비용도 많이 드는데, 이용하는 사람은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밖에 없어요.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거죠. 그래서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지하도 안 의자나 휴게소를 더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요. 이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물었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든다.

 “그러면 장애인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잖아요. 그건 공평하지 않아요. 장애인도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해요.”

 “할머니, 할아버지도 엘리베이터 이용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도 지하철 타기 힘들어요. 공평하지 않아요.”

 다른 그림을 하나더 제시했다. 키가 큰 사람은 야구경기를 관람할 수 있고, 키가 작은 사람은 야구경기를 관람할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키가 큰 사람의 발판을 키가 작은 사람에게 주어서, 키가 작은 사람도 야구경기를 볼 수 있게 해요.”

 “키가 큰 사람이 무등을 태워서 함께 봐요.”

 “울타리 높이를 낮춰요. 키가 작아도 볼 수 있게 말이에요.”

 “나는 울타리를 투명하게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키가 큰 사람도, 키가 작은 사람도 모두 야구경기를 볼 수 있잖아요. 그것도 앉아서요.”

 아이들이 말하는 ‘공평함’이란 ‘모두에게 무엇인가를 똑같이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 그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맞추고 바꾸는 것’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울타리의 높이를 낮추자고 이야기하는 아이, 울타리를 투명으로 만들자는 아이의 생각을 들으며, 키가 작은 사람의 키를 키우는 것, 키가 작은 사람을 돕는 것 등 키가 작은 사람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키가 작은 사람이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있는 아이들의 건강한 관점에 깜짝 놀랐다.

 그렇다. 문제는 키가 작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키가 작은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키가 작은 사람이 생활하기 어렵게 만들어진 환경이 문제인 것이다. 환경을 바꾸면 키의 크고 작음 즉, 차이로 생기는 문제나 불편함은 해소된다. 우리는 환경, 제도, 사회가 배제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배제당하고 있는 사람을 누구인지를 살피고 환경과 제도와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차이를 가진 어떤 사람을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가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건강하게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유태인이든 유태인이 아니든 모두 덴마크의 사람들이었듯이 차이를 가진 소수자이든 소수자가 아니든 이 모두는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존엄한 존재임을 아는 우리 아이들은, 함께 사는 사회를 고민하고 꿈꾸는 우리 아이들은 모두 크리스티안이었다.
하수정 <그림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꿈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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