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이루고 사는 꽃대궐

▲ 이상노 할머니. 장엄한 그림집을 만들어냈다.
 더 넓은 곳, 더 높은 곳, 더 값나가는 곳에 이르고자 하지 않았다.
 껍데기의 무늬를 탐하여 떠돌기보다, 그 속내에 견결한 항상심을 지켜온 이들의 거처엔 켜켜이 첩첩이 쌓이고 쌓인 시간의 무늬가 빛난다.
 오로지 심겨진 자리에서 피할 수 없는 비와 바람을 꿋꿋하게 견뎌낸 위대한 생애의 집들이 여기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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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꽃이 색색으로 흐드러진 마당을 지나 흰 종이꽃과 넝쿨을 오려붙인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놀라운 세상이 펼쳐진다.

 “뭐슬. 암것도 아녀. 우솨 우솨.”

 할매는 그리 겸양하시는데 우습지 않다. 장엄한 그림집이다.
 
 “자꼬자꼬 끼적거리다 보니 이러고 되아불었어”

 방을, 부엌을, 목욕탕을, 온 집을 화폭으로 삼아버린 화가는 이상노(83) 할머니. 고창 성내 큰톳날서 시집을 왔다. 마을에서는 성내떡이라 불린다.

 “스물 두 살에 왔어. 그때로는 노큰애기여. 중매여. 글 때는 연애 걸지도 몰르는 시상이여. 내가 못 배와서 울 아그들은 논 닷마지기 팔아서 갈쳤어.”

 다섯 살 위 할아버지는 50년 넘게 해로하시다 먼저 가신 지 대여섯 해가 지났다.

 “할아버지 가시고 내가 느닷없이 우울증이 걸려서 우두거니로 살았어. 어디가 아픈지도 몰르게 아퍼. 꼭 애기 서는 속마니로 밥도 순전 못 먹고.”

 한 달 이상을 입원해 있다 퇴원을 했는데 종일 멍하니 넋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러고 있는디 서울 사는 딸들이, 우리 근숙이하고 근순이가 ‘그림 그린 것이 사람게다 좋다네’ 험서 크레용허고 그림 공책을 큰 놈으로 사다줘. 거그다 추미를 붙였어. 대처나. 아픈 디가 다 얼로 가불었어. 머슬 그리고 있으문 거그다만 정신을 다 쓴게 다른 생각은 한나도 떠오르들 안혀. 사람들이문 다 잘혔다고 혀. 딸들이 질로 좋아라고 허지. 이거이 다 재작년 시한부터 그린 것이여.”

 여든 한 살 할매가 스스로를 치유하려고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다.

 “밤에도 열두 시까지 앙거서 그려.”

 눈만 뜨면 그리고 있으니 스케치북은 금방 바닥났다.

 “저 많헌 놈을 거그다 어치게 다 그리겄어. 달력을 뒤집어서 그려. 회관에 달력이 많애. 석유공장에서도 갖다 놓고 농협에서도 갖다 놓고. 안가지간 놈 내가 갖고와. 밤낮으로 막 문대고 있은게 크레용도 모지래. 시내 문방구점에서 사다 써. ‘어디다 쓰시요’ 물으문 거짓말을 허지. 늙은이가 그림 그린다 글문 웃지, 긍게 ‘우리 손지 사다줄라 그러요’ 그래. 색 모지랜 놈만 개래 갖고 사. 내가 빨간 색을 많이 쓰드만. 저런 꽃을 많썩 그린게.”
순정하고 또한 장엄하다. 방을, 부엌을, 목욕탕을, 온 집을 입체적인 화폭으로 삼아버린 통큰 화가 이상노. 어느 한 자리 빈 곳 없이 그림으로 빼곡한 놀라운 갤러리.

 할매는 그림을 배워 본 적이 없다.

 “글자도 안 배왔지. 전에는 여자는 갈치들 안했어. 갈치문 시집가서 시집살이 사나문 편지질 헌다고. 그림을 어디서 배와. 기냥 끼적거려 본 것이지. 내가 조깨 배우고 그랬으문 더 낫게 그렸을 란가.”

 “자꼬자꼬 끼적거리다 보니 이러고 되아불었네” 하는 이상노 할매의 그림집. 벽만 아니라 침대 머리판에도 싱크대 문에도 방문에도 신발장에도 목욕탕 타일벽에도 창고의 선반 아래벽에도 어디 하나빈틈이 없이 그림들로 빼곡하다.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아니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다채롭고 대담하게 쓴 색채와 구성이 강렬하다. 섬세한 세부 묘사는 들여다볼수록 아름답다.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천진하고 소박하고 순정한 그림에 무장해제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뭇 경이롭고 경건해질 정도다.

 가만 보면 벽 위에 그냥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려서 가위로 오린 것을 투명테이프로 붙인 것이다.

 “눈 뜨문 그리고자퍼. 한정없이 그려놓고 저 놈을 띠어불고 요 놈을 붙일끄나 그 궁리를 허고 살았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입체적인 화폭을 있는 대로 다 사용하고도 모자라 오래된 살림의 구석구석까지 할매의 예술혼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이러저러 손때 묻은 세간 살림과 흔연스러운 조화가 빛나는 것이 이상노 작품세계의 미덕이다.
어느 한 마리도 같지 않다. 저마다의 날개옷을 입은 새들. “이 새는 딸기 찍어묵으라고, 이 새는 감 찍어묵으라고.” ‘그림의 새’ 앞에 먹을 것을 내어 대접하는 그 맘이 다정하다.
 
만화방창 꽃대궐에 온갖 새 날아드는

 “어디 가서 뭐슬 보문 ‘저 놈 그렸으문 좋겄다’ 그 생각이 들어가. 약을 지으러 가서 지달리고 있는디 요만헌 상지에 저 나무가 그려져 갖고 있어서 그려봤어. 저 꽃은 쟁반에다 뭐슬 갖다 먹음서 본게 있어. ‘참 이쁘네 요놈 그리문 쓰겄네’ 허고 그렸지. 요 감은 봉감 상지 보고 내가 보태서 내 자유로 그린 거여. 대봉감이라 커. 한나 다 묵으문 새가 배불르게 커.”

 샤갈의 그림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듯 환상적인 꽃병은 식당의 ‘대비 종우’를 보고 그린 것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렸어. 보문 머릿속에 박아져. 거그다가 내 자유로 꽃송이를 많이 너갖고 그렸어.”

 꽃을 좋아하는 할매.

 “모랑모랑 크는 것을 딜다보문 찌긋찌긋 헌 것이 없어져불어. 이삐게 키울라문 손 놔둘 새가 없어. 심어서 내둬불문 지대로 안커.”

 한번은 동네 아주머니가 꽃을 한 송이 갖다 주었다.

 “성내떡은 꽃 좋아헌게 이 놈 보고 기리라고. 글서 눈앞에다 놓고 그렸제.”

 그 꽃 한 송이는 폴세 시들었지만 지금 할매의 방 벽에 송이송이 지지 않을 꽃으로 남았다.

 “꽃 모냐 붙여 놓고, 넝쿨 뻗는 것은 난중에 그려서 붙였어. 아, 꽃만 있느니 넝쿨이 있어야 쓰겄구나 의견이 들었지.”

 마당의 꽃을 돌보듯이 방안의 그림꽃에도 새록새록 정성을 보탠다. 사철 꽃이 한가득 피어 있는 할매의 그림집.

 “이 넝쿨은 이리 가고 이 넝쿨은 저리 가고 물 주고 키우는 것 같지. 사람들이 놀러오문 그려. 꽃 좋아헌께 방에도 꽃, 배깥에도 꽃이라고.”

 울긋불긋 꽃대궐을 스스로 이루고 사는 할매. 할매가 그린 꽃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활짝 핀 꽃송이 안에 씨방이 보석같이 들어 있다.

 “그것이 있은게 봄마다 새로 와서 활짝 피어나지. 꽃 보고 내가 말혀. 사람은 한번 가문 다시 못오는디 너그들은 죽었다가도 새로 와서 새로 피는구나 글케 말이 나와.”

 지지 않는 꽃들 사이로 새가 날아든다. 어느 한 마리도 같지 않다. 저마다의 날개옷을 입은 새들이다.

 “이 새는 딸기 찍어묵으라고, 이 새는 감 찍어묵으라고.”

 ‘그림의 새’ 앞에 먹을 것을 내어 대접하는 그 맘이 다정하다.

 날개가 우아한 한 쌍의 새는 장롱 문을 보고 그린 것이다.

 “요 앞집이서 집을 지슴서 농을 뿌스가. 본게 농짝 문에 요 새가 있어. 글서 ‘아저씨 나 요 웃고닥(위판)만 뜯어줄 수 없소. 내가 조깨 쓸라고 그러요’ 그래갖고 그 놈을 갖다놓고 요 새를 그렸어.”
‘쓸모없는 아름다움’을 지어내는 몰두로 생애의 응달을 지나올 수 있었다. 그림의 꽃, 그림의 새들과 더불어 할매의 생애를 꽃대궐로 만들어준 가족이라는 존재. 사진액자에 들인 공력이 살뜰하다.

 원앙새는 폐백 상자에 마주한 것을 보고 그렸고, 오리 한 쌍은 이불 한복판에 노니는 것을 보고 그렸다.

 “한나는 외로와. 둘이 마주봐야제. 요 사슴은 이불 가운데 똥그럼허니 한 쌍이 섰는 것을 보고 그린 것이여.”

 시방 입을 맞추려 다가서는 중인 사슴의 눈썹은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하다. 달력 종이에 엎드려 그 눈썹 한 올 한 올에 공을 들이고 있는 할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장롱에서, 폐백 상자에서, 이불에서 쌍쌍이 노닐던 동물들은 ‘이상노식’으로 재해석되어 더욱 화사하다.
 
 “안에 들앙거서 꽃 피운 것은 만고에 핀허제”

 “언제는 참외 생각이 나서 한번 그려봤어.”

 노랗게 탐스럽게 익어 당장 따먹어야 하게 생긴 참외다. 화가 이중섭이 친구의 병문안을 가서 쭈볏쭈볏 내민 것이 그림 한 폭이었다던가.

 “천도를 그린 거야. 이 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 하지 않던가. 자네도 이걸 먹고 툭툭 털고 일어나게.”

 이상노 할매의 참외에는 이파리가 제대로 달려 있다. 밭에서 참외를 키워 본 이의 그림이다. “나는 놀들 안해 봤어. 논 아홉 마지기 밭 서너 마지기 농사 지스고 살았어. 할아버지가 일찍허니 아퍼갖고 일을 못헌게 내가 다 했제. 낮으로 곡석 만들어서 장에 내고 밤으로 미영베 모시베 짜서 장에 폴고. 나 놈 허는 만치 고생 했어.”

 평생 흙손으로 살던 할매는 시방도 생강 심고 마늘 심고 파 모종 심고 완두콩 심고 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밭이 뻔허니 보고 있는디 묵하불문 쓰간디. 밭일에다 대문 집안에 들앙거서 꽃 피운 것은 만고에 핀허제. 쪼만헌 상 딱 갖다 놓고 앙거서 그늘농사 지스는 거여.”

 할매가 ‘그늘농사’ 짓는 그림밭에는 인삼이 뿌리를 내리고 대나무가 우뚝하다.
마을회관 남자노인방 달력에 올린 콜라주 작품. ‘가심에다 엉벅지다 장딴지에다’ 섬세하게 꽃넝쿨을 올리고 새를 앉혔다. ‘내건시럽게’ 뵈일라고 작정한 광고를 우아하게 덮어줌으로써 마을 남자노인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수수만번의 색칠과 가위질로 빼곡하게 채워진 할매의 그림집.

 반복과 대비가 조화롭게 구성된 문짝들은 그대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다. 그 모든 그림은 벽에다 대고 그린 것이 아니다. 종이에 그린 것을 일일이 잘라서 테이프로 붙인 것이다.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그리 숱한 시간과 몸공이 쌓인 작품들이다.

 “내가 가새질에 소질이 있어. 슥삭슥삭 오리는 것이 재미져. 배깥에 저런 꽃나무도 다 내가 가위질 해 갖고 키우는 거여. 나는 꽃나무에 시든 이파리 하나만 있어도 못봐. 심은 차로 내비두문 말꼬롬허들 안해.”

 안 이쁜 것을 못 참는 할매. 헌 수건에조차 꽃송이를 오려 붙여 전화기 덮개를 만들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취미를 붙인 게 헝겊에서 꽃송이를 오려내 상보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런저런 덮개며 깔개도 만들었다.

 “히서 넘들 주는 재미가 있드라고. 줄 만헌 사람들은 다 줬어.”

 할매가 오려낸 꽃송이가 이 집 저 집 그 어디만치서 오도마니 피어 있을 터이다.
 
 마을회관 달력 콜라주에 담긴 따뜻한 유머

 “하다본께 연구심이 들어가.”

 궁구하는 예술가인 이상노 할매.

 할매의 유머가 빛나는 콜라주 작품을 뜻밖에 마을회관에서 만났다. 남자노인들이 쓰는 웃방에 걸린 주류회사 달력.

 반벌거숭이로 춥게 입은 여성 모델들은 이상노 할매의 손길로 덜 춥게 됐다.

 “앞가심 다 내놓고 엉벅지 다 내놓고 쳐다보문 내건시럽잖아. 쑥씨러. 부끄롸. 글서 가심에다 엉벅지다 장딴지다 꽃넝쿨을 올리고 새를 앉혔어.”

 ‘내건시럽게’ 뵈일라고 작정한 광고를 우아하게 덮어준 할매의 작품활동은 마을 남자노인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남자노인 몇몇이 짐짓 웃으며 항의를 하셨단다.

 “뭐덜라고 수고시럽게 붙였냐고 허드만.”

 한 장에 줄여 모은 이 달력의 모델들은 또 알뜰하게 할매의 방에 모셔져 ‘싱크로나이즈드 수영’ 단체전을 연상시키는 꽃송이가 되었다.

 할매네 가족사진 액자들도 예사롭지 않다. 가족사진 옆으로 할매가 그린 새가 날아드는가 하면 할매가 그리지 않은 개도 보초를 서고 있다. 누가 사료포대를 버렸는데 거기 개가 있어서 오려낸 것이란다.

 “진돗개여. 개들이 지캐주고 있어.”
 
쓰잘데기 없어도 이쁜 꽃보따리

 눈 뜨면 그리고 오리고 붙이기를 거듭해 온 무한열정의 작품활동으로 할매의 집엔 그림꽃이 무장무장 쌓여갔다.

 “하도 많애서 겁나게 태와불었어. 나 가고 울 아그들이 없앨라문 힘들어.”

 그럼에도 아직 남아 있는 보따리를 풀어보이는 할매.

 세상 누구에게도 없고 오직 할매한테만 있는 꽃보따리엔 차곡차곡 꽃송이가 가득하다.

 “목단꽃이 접으로 피어 있는디 돌아봄서 왔어. 꽃은 본 대로 그리고 이파리는 내 의견대로 했지. 꽃만 이쁜 것이 아녀. 이파리도 꽃만치 이삐잖애.”

 ‘우두거니’가 될 뻔한 자신에게 스스로 손을 내민 할매.

 “쓰잘데기 하나 없지. 근디 이쁘잖애.”

 쓸모없는 아름다움을 지어내는 몰두로 그이는 생애의 응달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희망은 싸움꾼입니다. 그는 늘 절망이 있는 곳에 찾아가 그에게 시비를 겁니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말처럼, 우울한 방에 웅크리고 있던 할매는 뽈깡 일어나 희망이라는 싸움꾼을 불러들였다. 그 희망을 데불고 스스로 지은 꽃대궐의 주인이 되었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 이상노, 심계순 할머니의 고요한 일상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 주소지를 밝히지 않습니다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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