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놈이 나쁜 놈 된다

 1. 전화기 너머의 사람

 애플 운영체제가 업그레이드 됐다. 새로 추가된 기능이 기대됐고, 새 버전이 나오자마자 업그레이드 했다. 그런데, 운영체제 업그레이드 후 문제가 생겼다. 말하기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 다음 업데이트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운영체제를 다시 설치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너무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피하고 싶었다.

 고객센터에 전화했고 상담사와 연결됐다. 증상을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는데…

 이후 기억은 흐릿하다. 처음 연결된 여성 상담사와 통화하며 ‘왜 이것도 모르지?’라는 불신과 ‘모르세요?’라고 물었던 내 말 그리고 불쾌함이 느껴지는 그 상담사의 목소리와 다른 상담사와 연결해달라고 했던 내 말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그 통화가 한참이 지난 지금도 부끄럽고 미안하게 마음에 남는다. 오만하게 들렸을 내 말투와 깔보는 것처럼 느껴졌을 ‘모르세요?’라는 내 말이… 시간이 지나도 전화기 건너에 있던 그 상담사에게 미안함을 전하지 못하고 남아서 잘 잊히지 않는다.
 
 2. 곳곳에 있는 대나무숲

 진상들끼리 네버, 다 카페 커뮤니티에서 진상 떨어서 보상 받는 방법이나 공유하지 마세요 그게 진짜 파쿠리 아니냐고 고객들 딴에는 보상 받는 방법이지만 그게 곧 상담원들을 곤란하게 하는 방법들인데 사람 괴롭히는 방법 공유하는 쓰레기들 각성이나 좀 하세요

 오늘 본인 실수로 손해보고 전화건 욕설 고객
 고객: 너네들 때문이잖아! 개같은 년들아!
 상담사: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고객님께서 하신 일로
 고객: 너네 잘못이 아니란 거야?!
 상담사: 네…도움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 고객: 그럼…나?!
 상담사: (거기서 각성하는 거야?)
 -> 샘 궁금한건데 이거 통화는 잘 끝났나요? 각성해서 더 진상부렸을까봐 걱정되는데…. ㅋㅋㅋㅋㅋ
 -> 아눀ㅋㅋ 보통 이런 콜이 끝까지 자기잘못 아니라고 우기면서 뭐라도 받아내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고객은 혼자 각성하더니 어물어물하면서 일단 끊겠다고 했어요 ㅋㅋㅋㅋ 정말 초필살기 개방하려고 전화한거같음ㅋㅋㅋ
출처 : https://twitter.com/loserwaetori
 
 우연히 보게 된 트위터 계정이다. IT 상담원, 은행 상담원, 보험 상담원 등 정말 다양한 상담원 계정이 있었다. 올라온 트윗을 읽으며, 계속 내가 했던 콜센터 통화가 떠올라 힘들었다. 한편, 구인 게시판에 올라온 콜센터 광고를 보며 콜센터 상담원은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뿌리채 뽑혔다.
 
 3 혹시나와 어쩌면

 어쩌면 그렇게까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 증오한다는 건 확신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말하고 위해를 가하며 살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사람을 그렇게 멸시하고 모욕하고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증오하는 자에게는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한 점의 회의도 있어선 안 된다. 그 앞에서 의심하는 자는 증오할 수 없다. 회의한다면 그렇게 이성을 잃을 리 없다. 증오에는 절대적 확신이 필요하다. 모든 ‘어쩌면’은 걸리적거리며 방해만 한다. 모든 ‘혹시’는 증오 속으로 침투해 어딘가로 분출했어야 할 그 힘이 새나가게 한다.
출처 : 혐오 사회(https://is.gd/c5b8OP)
 
 혹시 신입 직원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참고할 만한 사례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닐까? 아니, 이 문제를 이 상담사가 맡아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맞는 걸까?

 이 질문 중 어느 하나라도 내가 생각했다면, 까칠한 목소리로 ‘모르세요?’라고 물었을까?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곳곳에 여러 대나무숲이 있다. 차마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괴로운 일을 목소리 그대로 접할 수 있는 계정들이다. 읽고나니, 더는 전처럼 차갑고 까칠하게 말 못하겠다.

 못되다 : (사람이나 그 성질, 언행 따위가) 몹시 좋지 않고 고약하다.
 나쁘다 : 에게 해가 되는 점이 있다.

 못된 사람이 나쁜 사람된다. 무슨 문제가 있어 흥분된 상태로 콜센터 상담사와 통화하게 된다면, 이 말이라도 떠올리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정의는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누가 혹은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중.
도연

 도연 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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