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가두지 마세요

▲ 희한한 새. 당장 가둬.
▲다르면 다 가둬!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사람, 분수대에서 종이배를 띄우는 사람, 모래놀이를 하는 사람, 줄넘기를 하는 사람,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 공놀이를 하는 사람, 술래잡기를 하는 사람, 공원의자에 앉아 읽을거리를 보고 있는 사람, 새에게 모이를 주는 사람, 공원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사람, 나무 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새, 그 새를 쳐다보고 있는 나무 뒤 고양이, 공원에는 많은 사람과 동물들이 평화롭게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왜애애앵”

 공원에 유리창에 철망을 단 까만 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들어왔어요. 사람들은 요란한 그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차를 쳐다보았어요. 철망을 단 까만 차에서 번쩍이는 훈장을 가슴에 세 개나 단 경관이 척! 내렸어요. 그의 부하들과 함께 말이죠.

 “잠시 신분증 검사가 있겠다!”

 “오, 경관님. 죄송하지만 깜빡했네요. 얼른 가져올게요!”

 “신분증이 없다니, 당장 가둬!”

 공원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던 피부색이 까만 아주머니는 철망이 달린 차에 갇혔어요.

 “초록 고양이라... 여긴 초록 고양이가 살 곳이 아니지. 암! 잠시 신분증 검사가 있겠다!”

 “고양이에게 신분증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야옹!”

 “신분증이 없다니, 당장 가둬!”

 초록색 고양이는 철망이 달린 차에 갇혔어요.

 “음, 희한한 새로군…. 잠시 신분증 검사가 있겠다!”

 “제 깃털 중 가장 예쁜 걸 뽑아서 신분증을 만들어 드릴게요. 짹. 일 분도 안 걸려요. 짹!”

 “신분증이 없다니. 당장 가둬!”

 공원 나무 위에서 아름다운 소리로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던 분홍 깃털을 가진 새도 철망이 달린 차에 갇혔어요.
- ‘다르면 다 가둬!’ 중에서
해님. 잠시 신분증 검사를 하겠다.
 
 단순하여 선명한 그림과 간단한 대화체로 구성된 이 그림책을 읽다보면, 웃음이 터져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뒤로 생각에 따끔거림을 느끼게 된다. 가슴에 번쩍이는 훈장을 세 개나 달고 있는 경관이 하는 ‘신분증이 없다니, 당장 가둬!’라는 말은 우리 사회가 낯선 존재들을 대하는 태도와 낯선 존재들에게 던지는 단호한 말인 것만 같다.

 경관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던 존재는 공원에 있던 다수의 사람들과 피부색이 달랐던 아주머니였고, 공원에 있는 다수의 고양이와 다른 초록색 고양이었고, 자유롭게 노래하는 희한하게 생긴 새였다. 이들은 공원에 있는 이들과 다른 특징을 가진 존재들이다.

 경관은 왜 이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했을까? 경관의 눈에는 많은 사람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 그들이 이상하게 보였고 그래서 이 공원의 질서와 평화를 깨뜨릴 위험한 존재로 보였나 보다. 당연하게도 그는 그들을 철장이 달린 차에 가둠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려고 한 것이다. 경관의 사고의 흐름이 쉽게 읽혀진다. 그런데 나는 문득, ‘왜 이 경관의 사고가 이토록 쉽게 읽히는 것인가? 나도 이 경관처럼 사고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모두 철망 달린 까만 차에 갇혀 버렸어요.
 
▲성정체성이 다르면 다 가둬!
 
 “엄마, 혹~시 내가 남자가 좋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뭘 어째! 그런가 보다 하지.”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그러는데?”
 
 민호가 중3 때 엄마에게 한 이야기이다. 민호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고 하지만 가슴이 벌렁거렸다고 한다. 민호는 몇 가지 이유로 자신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고 느꼈던 것 같다. 여자 아이들에게는 도통 관심이 가지 않고,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으며 다른 남자친구들처럼 운동하는 것보다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고, 남자아이들이 하는 자각 없이 하지만 폭력적인 성적 농담이 예사로 넘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민호가 말한 내용으로 생각해보면 민호는 그냥 젠더감수성이 조금 풍부한 남성일 뿐이다.

 설령 민호가 다른 성정체성이나 성지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는 무엇이 불안했던 걸까? 왜 민호의 엄마는 가슴이 벌렁거려야만 했을까?

 민호의 고등학교 때 별명은 ‘게이’이다.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반에서 “야, 게이 민호!”라고 부른다고 한다. 민호도 친구들이 장난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을 알기에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게이’라는 말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아이들 입에서 장난처럼 쉽게 나오는 별명이고 호칭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도 될 일일까? ‘게이’라는 말이 장난처럼 불려도 될 말일까? 우리가 다수라고 여기는 이성애를 성지향성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야, 이성애자!’ 라고 부르는 것은 놀림이나 장난이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가진 성지향성은 놀림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왜 ‘게이’라는 성지향성이 놀림감이고 장난거리가 되어야 할까? 생물학적 성별과 정신적 성별이 일치하는 시스젠더이자, 이성애자인 사람들이 이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면서 스스로를 표준으로 세워버린 사회이기 때문이며, 다수이자 표준이 된 그들이 자신과는 다른 존재에 대해 조롱과 혐오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다른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 즉 숨기였다. 장난으로 아이들이 ‘야! 게이 민호야’라고 민호를 부를 때,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는 게이라는 성지향성을 가진 아이는 숨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얼굴이 붉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의식하지 못 한 채 ‘다르면 다 가둬’ 를 실행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초록고양이. 당장 가둬.

 작년 광주 민주광장에서 열린 퀴어축제에서였다. 더 이상 숨어 있지 않겠다고 자신을 드러낸 사람들에게 쏟아졌던 머릿속에 떠올리기도 무서운 혐오의 말들을 기억한다. 저들은 왜, 무슨 권리로, 저토록 듣기조차 힘든 말들을 그곳에 모인 아이들에게 비수처럼 쏟아 붓고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들은 어떤 아이에게는 든든한 어머니이고 자애로운 아버지일 텐데 말이다. 왜 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들과 다른 성정체성, 성지향성을 지닌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한다고, 그것이 안 된다면 조용히 숨어살아야 한다고 굳게 믿는 것일까? 왜 ‘다르면 다 가둬!’라고 소리치는 것일까?
 
▲가족형태가 다르면 다 가둬!
 
 “너네 집 어디야?”

 “○○○이야.”

 “○○○이 뭔데?”

 “엄마아빠하고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진짜? 야, 너 불쌍하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의 대화였다. 이 대화 끝에 민욱이는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상처받은 얼굴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내가 살고 있는 복지시설을 잘못 설명했을까?’, ‘다르게 설명했으면 불쌍하다는 말을 안 들었을까?’ 여러 번 생각했다고 한다.
피부색이 까만 아줌마. 당장 가둬.

 어린 아이일수록 엄마아빠는 세상의 전부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는 세상과도 같은 엄마아빠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민욱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하던 친구에게서 동정을 받게 되니 속상하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가슴이 꽉 막힌 듯 불편하기만 했다.

 “나는 형아도 있고, 누나도 있거든요. 나는 동생도 있고... 자기는 대학생 형도 없으면서... 형이 얼마나 나한테 잘해 주는데…”
 
 사람이 살아가는 형태는 다양하다. 가족을 이루며 사는 형태 또한 무척 다양하다. 사전적으로 가족(家族)은 ‘혈연, 혼인, 입양, 친분 등으로 관계되어, 같이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한다. 구성원의 수에 따라 부부와 여러 세대의 가족이 모여 사는 확대가족과 부부와 미혼의 자녀가 모여 사는 핵가족, 구성원의 특성에 따라 부부 중 한 명이 자녀와 가족을 이루며 생활하는 한부모가족, 할머니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손녀가 가족을 이루며 생활하는 조손가족, 재혼을 통해 가족을 구성한 재혼가족, 입양을 통해 구성된 입양가족, 혈연 또는 같은 공간에 생활하진 않지만 후원으로 형성되어지는 후원가족, 다른 두 문화 이상의 사람이 부부를 이루어 사는 다문화가족, 반려동물과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가족 등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가족을 구성하여 생활하고 있다. 그러면 이중에 정상가족이 있을까? 정상가족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비정상가족도 있다는 말인데, 비정상가족은 그렇다면 어떤 가족일까?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정상가족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가족의 형태는 가족구성을 국가에 신고한 법적가족형태이다. 법적가족이 국가에 의해 표준이 되는 것이다. 법적가족형태가 아니면 가족에게 부여되는 공적 혜택도 받을 수 없고 보호도 받을 수 없다.

 표준이 아닌 것은 미달이거나 부적합한 것으로 판단된다. 동성혼의 경우 국가에서 법적가족형태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엄연한 사실혼의 관계임에도 부적합하고 비정상적인 가족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한다.

 예전에는 부부 중 한 명에 의해, 조부조모에 의해, 부모 없이 미성년자인 자녀가 양육되어야 하는 가정을 결손가정이라고 불렀다. 표준에서 부족한 가족의 형태라는 말이다. 부정성 때문에 한 부모가정, 조손가족 등으로 순화하여 부르고 있으나 여전히 정상적이지 못 하고 부족함이 있는 가족의 형태로 인식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혈연관계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에게 보내지는 시선 또한 다른 가족을 보는 시선에 비해 부드럽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걱정과 관심, 격려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핵가족이든 확대가족이든 법적가족을 이루며 사는 가족에게는 걱정과 격려를 보내지 않는다. 민욱이는 떨어져 있지만 가족이 있고, 혈연으로 맺어져있진 않지만 생활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가족이 있음을 친구에게서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친구가 자기 가족 속에서 성장하듯이 자신도 혈연이 아닌 다른 관계로 맺어진 가족 속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다르면 가둬!’가 아니라 ‘다르면 법적, 제도적,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흡수함으로써 가족의 다양성을 확장해 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공원은 어둠 속에 갇혔어요.
 
▲가두지 마세요. 인정해요
 
 다르면 다 가두어버리는 이곳이 무서워서 공원을 떠나려던 아이가 경관에게 말했어요.

 “참, 아저씨! 해님도 우리 동네 출신이 아니래요. 아마 해도 아프리카에 있었다니까...다른 나라에서 온 게 틀림없어요.”

 “이봐, 해님! 잠시 신분증 검사가 있겠다! 신분증이 없다니 당장 가둬!”

 해님도 철망이 달린 까만 차에 갇히고 말았어요. 해도 사라지고 사람들도 사라지고 공원은 어둠 속에 갇혔어요.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훈장을 세 개나 달고 있는 경관만 서 있을 뿐이었답니다. 참, 철망 달린 까만 차와 함께 말이죠.
- ‘다르면 다 가둬!’ 중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두고 있는 것은 또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이주노동자,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 난민, 청소년비혼모, 정신질환자 등.

 아이들이 말했다.

 “경관아저씨를 가둬요.”

 “가두라는 말을 가둬요.”

 “어둠을 가둬요. 해님도, 피부색 다른 아주머니도, 초록고양이도, 새도 풀어줘요.”

 다름과 낯섦을 위험요소로 인식하여 제거하려 들지 말고, 수용하고 우리 안으로 끌어들여 우리 사회가 확장되고 성숙되기를 바란다.
하수정 <그림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꿈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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