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앞마당, 아름다운 베풂

▲ 골목길 담벼락이 무표정하지 않다. 온기 있다.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섬에서 나는 것들과 버려진 것들로 쓰잘데기 있는 볼것들을 이루었다. 바닷길에 늘어선 조형물들에도 눈길 닿는다.
<…바람은 쉽게 언덕을 넘어 금산으로 가는데/ 순희는 국민학교 육학년 마지막 달/ 삼월엔 언니 따라 서울로 가느냐/ 이대로 배에 실려 거금도로 가느냐/ 그것이 걱정여서 난생 처음 외로워진다>(이생진 ‘소녀의 첫 고민’ 중)

 바다가 앞마당이었겠다. 연홍초등학교. 이 시가 쓰여질 때만 해도 학교는 재재거리는 아이들도 이른 작별 앞에 막막한 아이들도 품고 있었을 터.

 50년 역사를 뒤로하고 학교는 1998년 폐교됐다. 아이들 떠나간 뒤 깊은 침묵에 들었던 학교를 다시 깨워 사람들 소리와 온기로 채운 것은 연홍미술관. 2006년 문 열었다. 어깨며 치맛자락이며 펼쳐진 책에 어지간히 시간이 내려쌓인 책 읽는 소녀상이며 바다를 마주하고 선 이순신 장군 동상이 이곳이 학교였노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연홍미술관에 이르는 길은 두 갈래. 마을 골목을 굽이굽이 지나가거나,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걷거나. 길목에 선 물고기 모양의 표지판들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골목길이든 바닷길이든 화살표처럼 이어지는 작품들을 따라가노라면 그곳에 닿는다. 저절로 발걸음 옮겨지는 길이다. 자연스런 맥락처럼 그 끄트머리에 미술관이 나타난다.

 골목을 따라 담벼락에 볼거리들이 주욱 이어진다. 연홍도에서 나는 온갖 조개들이며 부표나 로프, 노, 폐목 같은 낡고 버려진 어구들로 만든 조형물에선 뚜덕뚜덕한 손맛 느껴진다. 소박하고 정답다. 무어든 바다에서 난 것들이나 섬생활과 맞닿은 재료들을 활용해 이곳이 섬임을 새삼 일깨운다.

 “섬에 흔하게 널려 있는 것들, 곁에 가까이 있는 것들을 재발견하고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했어요. 낡은 것들이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다가드는 경험도 안겨주고 싶었고요. 처음엔 ‘왜 쓰레기들을 갖다 걸어놨어?’ 하던 마을 어르신들이 이제는 작품으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연홍도를 찾는 이들도 그 담벼락 작품들을 재밌어 하고요. 오래된 배의 노나 부표 같은 그런 주변적 물건들이 미술이 된다는 걸 알고 이제 마을 분들이 ‘쓰겄다’ 싶은 것들은 미술관 마당으로 휘익 던져놓고 가셔요. 그 역시 마음의 표현이죠. 같이 작업해 가는거나 마찬가지에요. 콜라보랄까. 마을 분들이 오브제를 마련해 주시는 거죠.” 연홍미술관 선호남 관장의 말이다.

 고샅에 없는 아이들을 대신해 담벼락속 아이들이 예전 이 골목을 왁자하게 했을 섬아이들을 떠올린다. 펑 튀는 튀밥 소리에 화들짝 귀를 막기도 하고, 딱지치기, 말뚝박기 같은 놀이도 하고.

 골목길 담벼락이 무표정하지 않다.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섬에서 나는 것들과 버려진 것들로 쓰잘데기 있는 볼것들을 이루었다.

 골목길뿐 아니라 바닷길에서도 굴렁쇠 굴리는 아이며 자전거 타는 아이며 바다 너머 저 먼곳을 바라보는 아이며 걸음걸음 만날 수 있다. 자연이 이룬 거대한 작품, 완도 금당도의 기암절벽도 눈앞에 펼쳐진다. 금당8경의 하나인 병풍바위가 맞바라보인다. 바닷물이 들고 날 때마다 모양새가 달리 보이는 ‘은빛 물고기’도 미술관 앞바다에서 만난다. 단순간결한 선으로 이룬 물고기는 물때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다와 어우러진다. 프랑스 설치미술가 실뱅 페리에가 작업한 수상조형물이다.

 연홍미술관의 10월 전시는 이숙희 작가의 ‘상점일기’. “이 낱낱의 일기장에 새겨진 것들은 나로 살아가는 날들의 집합이며 모든 오늘에게 바치는 경배의 목록”이란 작가의 말처럼 시 같고 낙서 같고 일기 같은 문구들이 그림과 어우러져 나날의 일상처럼 채곡채곡 쌓인 채 말을 건다.

 미술관 관람은 무료. 쉼터 어우러진 미술관 앞마당도 바다를 오래 마주할 수 있는 처소가 되어준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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