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트루먼 쇼’ 포스터.
 ‘트루먼 쇼’의 모든 장소는 세트장이고, 사람들은 배우이다. 하지만 ‘트루먼 쇼’에는 연기 아닌 실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트루먼, 태어날 때부터 ‘트루먼 쇼’에 출연해온 입양된 존재다. 그러나 트루먼은 자신이 사는 곳이 세트장이란 것도, 모든 사람들이 연기자란 것도, 모든 사건에 각본에 짜여있다는 것도, 심지어 자신의 일상이 텔레비전에 생중계되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트루먼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감독이 만든 세상에 속했다.

 세상에도 트루먼들이 있다. 그들은 몇 명 사람들의 각본에 맞춰 살아간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사람도, 텔레비전에서 연기하는 배우도, 관중을 웃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개그맨들도 어쩌면 한 명의 트루먼이다. 그들은 관중의 요구에 따라 행동해야 하며 늘 관중의 반응에 신경 쓰며 살아간다. 하지만 관중의 요구는 늘 새롭게 바뀌며, 한 방송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방송을 찾아 채널을 돌린다. 이처럼 하나가 끝나면 새로운 요구를 충족시켜줄 다른 채널을 찾아 떠난다.

 나도 트루먼이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남의 시선을 늘 고려하고 그들이 원하는 틀에 나를 끼워 맞춘다. 그래서 나는 이중인격자다. 집에서는 보는 눈들이 없으므로 마음대로 까불고 말도 많다. 하지만 밖에서 그리고 학교에서는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로, 선생님께는 책임감 있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아이로 보일 것이다. 사실 내가 아는 나는, 귀찮음이 많은 아이다. 내가 친구와 선생님께 성실한 아이로 보이는 이유는 낯을 좀 가리는 편인 나의 모습을, 나 같은 아이를 필요로 하는 사회가 그렇게 보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은 시끄러운 학생보다 조용하고 맡은 일을 잘하는 학생을 좋아하며 친구들은 토크쇼의 겸손한 게스트처럼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는 친구를 원한다. 그렇기에 낯가림이 있는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스스로 트루먼이 되는 것 아니었을까? 가끔씩 담임선생님과 학원 선생님과 상담을 하신 후 엄마가 나에게 집에서는 시끄러운데 밖에서는 얌전하냐며 웃음을 터뜨리시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트루먼이다. 트루먼들을 위한 세트장에서 각본대로 연기하는 배우다. 우리는 트루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트루먼이라는 것을 알까? 트루먼임을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은 아닐까? 남의 시선에 파악되지 않는 자신의 본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 나의 진실은 무엇일까? 트루먼은 시선이 만들어 낸 존재다. 트루먼이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들도 감독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게 조성한 것처럼 나도 때로는 시선들이 이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에 따라 행동해버린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겐 또 다른 시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아는 스스로의 모습, 본래의 면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트루먼과 다르다.
김지수<정광중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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