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어매들의 삶이야기 모음집

▲ 김미 교사.
 <이 세상에서 제일 세고, 제일 강하고, 제일 훌륭하고, 제일 장한, 인생의 그 숱하고도 얄궂은 고비들을 넘어 매일 `나의 기적’을 쓰고 있는 장한 당신을 응원합니다. 이제는 당신꽃 필 무렵!>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마지막회에 붙은 헌사다.
 “왜 나를 숭글 디가 없어 여기다가 숭궈 놨나” 싶은 돌밭에서 스스로 일어나 꽃이 된 어매들한테도 바치고 싶다.
 무안여성농어업인센터에서 한글을 배우는 어매들의 삶의 이야기를 옮겨 쓴 모음집 《시방은 암것도 안 무솨, 글자를 안께!》. 글자를 알기 전에도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암것도 안 무솨’라는 불굴의 정신으로 살아왔고, 호강질(길)은 몰르고 고생질(길)로만 건너오면서도 발 디딘 자리에서 한사코 꽃을 피워내며, 가난하면서도 각박하지 않았고, 항꾼에 나누고 퍼주는 버르쟁이를 고치지 못한 어매들의 이야기다.
 강맹순 강영희 강정례 김고만 김단례 김연례 김옥금 김정순 김포접 김화엽 노정임 박삼녀 박은심 안덕심 안미순 유숙희 윤명애 윤연임 이경자 이백임 이삼임 이윤심 이현임 임춘금 전덕례 전정순 정광순 정매신 정정례 정춘심 주순례 최단임 최순례 최영자 김귀심 김옥자 김옥희 김순자 배대례 신금자.
 땡볕과 폭우와 거센 바람 속을 지나온 생애의 시간 속에서 핀 당신꽃들의 말씀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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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매들의 삶을 어매들의 입말로”
김미 교사

 “어느날 아이들 그림책수업을 하러 센터에 들렀다가 어매들이 한글 공부를 하는 정경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그 진지한 모습들에 맘이 시큰해졌어요. 우리 엄마는 글씨를 모른 채로 돌아가셨거든요. 글씨를 모르고 사셨던 엄마의 고충에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새삼 죄책감이 밀려왔어요.”

 7년 전 1월 무안여성농어업인센터에서 한글 문해수업을 시작한 김미(57·무안읍 경신동)씨. 엄마를 생각하며 자청한 일이다.

 “이제는 어디를 가든 글씨를 읽고 집을 찾아올 수 있고 관공서나 농협에서도 ‘내 이름 석 자’를 쓸 수 있으니 ‘시방은 암것도 안 무솨’ 하며 웃으시는 어매들의 모습을 보면 제 마음도 환해져요. 어매들은 저보고 늘 ‘선생님 덕분’이라고 말씀하셔요. 사실 당신들의 의지로 다 배운 것인데….”

 “테레비 ‘가요무대’를 본디 노래제목이랑 밑에가 써진 노래가사가 뭔말인지 인자 다 알겄더랑께”라는 어매들의 감격어린 말씀에 함께 감격하는 사람, ‘기차나 뻐스시간표에 써진 14시가 왜 2시라요?’ 물어보는 어매들한테 찬찬히 설명을 해주곤 어매들이 이제 덜 불편하시겠구나 싶어 혼자 흐뭇해지는 사람, 어려운 대목이 나오면 ‘못하겠다’고 투정을 부리다가도 끝내는 익히고 깨우치는 어매들을 보며 “오매 좋은그” “오매 이쁜그” 소리가 절로 나오는 사람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수업하다가 어매들이 겪어온 삶을 한 토막 한 토막 들을 때마다 ‘그 시대가 사라져버리는구나’라는 안타까움에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됐다.

 “시암에서 물을 길러다 항아리마다 가득가득 채워놨을 때의 충족감 같은 것을 우리 세대나 다음 세대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잖아요.” 그런 삶과 정서가 묻혀지고 잊혀지는 게 너무 아까워서 언젠가부터 “어매들의 삶을 어매들의 입말로 남겨야지”가 스스로 내린 숙제가 되었다.

 2016년 가을부터 노트북과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어매들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긴 대장정 끝에 최근 《시방은 암것도 안 무솨, 글자를 안께!》(무안군)를 엮어냈다. 무려 444쪽에 달한다.

 “한 식구라도 입을 덜어야 해서 어린 시절 남의집살이를 하다가 어매를 찾아가니 어매도 남의집살이를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며, 물때따라 갯일을 하다보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바구니를 채우다 가득 차오른 밀물에 무섬증이 일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있는 힘을 다해 뻘을 기어나왔다는 이야기며, 절절한 사연들이 어찌 그리 많던지요.”

 어매들 곁에서 눈이 퉁퉁 붓도록 함께 울곤 했다.

 “별 것 아닌 어려움에도 주저앉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더라고요. 어매들이 견디고 이기고 살아온 세월, 그 치열한 발자국들이 자식들의 삶에 길잡이가 되고, 지역의 역사가 되고, 이 나라를 지탱해준 힘으로 인정받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무안 태생인 그는 “계속 살아와서 그런지 무안이 무단시 좋아서, 무안을 벗어나서 사는 것은 뭔가 손해보는 일 같아서” 결혼할 때도 남편감 조건의 1순위가 ‘무안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 특별한 바람을 이뤄서 주욱 무안에 살고 있다.

 평소에도 전라도말을 구성지게 잘해서 어디서 유창한 전라도말 들려올짝시면 주변사람들한테 “아따 김미 같네”라는 소리를 듣고 사는 그는 《엄마살이》 《별명을 지닌 사람들》 등 전라도정서 짙은 두 권의 수필집을 냈다.

 그이가 각별히 좋아하는 전라도말은 ‘이녁’.

 “가차와질락말락 하는 사람들한테도 이녁이라 한번 부르고나문 뽀짝 가차와지고 사이가 보드랍고 말랑해지더라고요.”
그 말마따나 함께 한글공부하는 어매들의 정다운 ‘이녁’임에 틀림없는 김미씨다.
한글 수업 장면.

‘그라제’ ‘아문’이라는 공감과 소통
어매들의 ‘문해교실’ 수업풍경

 “식전은 밥 먹기 전에 먹는 것이고, 식후는 밥 먹고 나서 먹는 것이어요.”

 교과서에도 칠판에도 약봉투가 그려져 있다.

 무안여성농어업인센터(센터장·고송자) 문해교실. 수업내용은 어디까지나 어매들 맞춤형이다. 일상생활에 요긴한 내용들로 꾸려진다.
“근디 알아도 ‘식후 30분’을 우리는 못 기다래. 30분이문 논을 ㅤㅁㅔㅊ 마지기 맬 시간이여. 30분 동안 일하러 갔다 오문 우리는 약 묵기를 다 잊아불어.”

 한 어매 넉살에 모두가 ‘그라제’라고 공감의 추임새를 넣는다.

 공책 옆에 하시라도 소용될 지우개를 놓고 더할 수 없이 신중한 눈빛과 정성스런 손길로 한 자 한 자 새기듯 ‘기래가는’ 글씨들. 녹두알처럼 팥알처럼 동글동글 순하고 곱다.

 “써지는 것이 아니라 시방도 기래.”

 조용한 가운데 요란한 트로트가락도 섞여 든다. 핸드폰 벨소리다.

 “시방 수업시간이여. 낮으로는 공부한께 나한테 전화할라문 저닉에
 전화 많이 해라. 오냐 오냐.”

 통화내용에 비밀따위는 없다.

 “작은아들이 돈 부쳤응께 들어감서 닭 사갖고 가서 묵으라그네.”

 자식자랑이 이어지고 “존일이네!” “쓰겄네!”라는 화답도 뒤따른다.

 받아쓰기는 어매들한테 제일 떨리는 시간. 오늘은 ‘독감예방주사’ ‘안내문’ ‘우리 동네’ ‘희망보건소’ 같은 글자를 받아쓴다.

 예방주사의 ‘예’가 ‘에’나 ‘애’로 써지기도 한다.

 “하이간 이런 글자들이 애럽고, 받침만 나오문 헷갈리고.”

 빨간 색연필로 채점하는 선생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눈에 긴장과 기대가 서린다.

 <결혼식이 끝나고 식당에 가려고 하니, 뷔페는 B1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1층으로 내려갑니다.>

 족두리 쓰고 가매 타고 온동네 들썩이는 잔치 속에 혼례 치렀을 어매들이 진즉에 달라진 결혼풍속 따라 ‘뷔페’와 ‘B1’을 배운다.
한글 수업 장면.

 “인자 영어가 나와불었어. 한글도 벅차죽겄는디 영어가 나왔어. 그래도 우리 엄니들은 다 잘한께 겁묵지 말어요.”

 어매들이 어느 굽이에서 한숨 쉴지, 힘들어할지 잘 아는 김미 선생이 먼저 다독이고 나선다.

 “손가락으로 먼저 써보게요. 에이(A)는 요러케 사다리를 그리문 되고 비(B)는 짝대기 하나 긋고 3자를 붙이문 되고. 쓸 수 있겄죠?”

 선생님의 격려어린 물음에 할매들의 답은 “예”도 “응”도 아니고 “아문!”

 허공에 몇 번이고 손구락질로 연습을 한 끝에 공책에 ‘B’자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옮겨 쓴다.

 “엘리베이터 타문 써진 B1은 지하1층이고 B2는 지하2층이란 말이어요”라는 선생님 말씀에 어매들은 “가남으로만 타고 댕갰는디 인자는 알고 누르겄구만”이라고 답한다.

 “오늘 배운 것들, 내일 물어봐도 다 알 수 있겄어요?”

 “낼은 모르제. 돌아서문 잊어분디.”

 “째깐 손지들이 할매들보담 더 잘해불어.”

 어매들의 수업 마무리는 “선상님이 욕보요”라는 치하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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