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최고선이다”

칸트
칸트

 전쟁의 참화에서 왜 깨닫지 못하는가?

 인류 역사에 수많은 크고 작은 전쟁이 있어왔다. 그래도 우리가 사는 현 세상이 문명 세상인데, 이래도 되는가? 인간은 왜 같은 종족을 상대로 이처럼 잔인한 전쟁을 반복해서 일으키고 있는가! 참으로 안타깝고 기막힌 일이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 무차별적인 공격과 점령, 무력 충돌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살상되었다. 2023년 10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전쟁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전쟁의 참혹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루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딱히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다. 이 세상을 전쟁 대신에 평화체제로 만드는데, 인류공동체 전체도 적절한 수단과 방법을 강구할 수 없다는 점에 크게 낙담하고 있다.

 한반도에도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직감하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도 결코 안심할 수 없겠구나!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전쟁 발발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전쟁이 잠시 중단된 정전체제이고 155마일을 경계로 최첨단 무기들이 서로를 겨누고 있다. 특히 적대관계의 최정점에 남북한 양 정상들이 우뚝 서서 정권 종말이니 초토화 운운하고 있고, 또 양측의 군대도 힘을 보여주기 위해 훈련과 경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무력 충돌이 확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양무진 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의 진단이다.

 전쟁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6·25전쟁에 대한 국가기록원의 피해 현황 통계자료를 보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6·25전쟁에서 650여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으며, 약 100만 명의 민간인 인명피해(사망/학살/부상/난치/행불)가 났다. 군인 관련 통계에 따르면, 한국군 18만 명(부상자 55만 명), 북한군 50여만 명, 유엔군 4만 명, 중공군 14만 명, 대략 86만 명의 군인들이 전쟁에서 사망하였다. 전쟁은 수십 수백 만의 인명을 살상한다. 인간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파괴한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전쟁에 대한 어떤 명분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지구상에서 모든 전쟁을 당장 중단하고 그것을 영원히 몰아내야 한다.

 정치의 최고선은 영원한 평화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죽기 몇 년 전에 <영원한 평화>(백종현 역, 아카넷, 2013년)라는 책을 썼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지금 인류가 직면한 전쟁과 평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칸트가 <영원한 평화>를 저술할 당시 유럽은 열강들이 국가 팽창주의에 빠져있던 시기였다. 1795년 10월경에 이 책이 나왔는데, 이미 그 해 1월에 독일은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협약하여 인접 국가인 폴란드를 분할 병탄한 상황이었다. 당시의 엄혹한 정치 상황을 목도하면서 철학자 칸트는 우리에게 정치철학의 으뜸원리로서 영원한 평화를 대안으로 제시해 주었다.

 영원한 평화에 대한 칸트 선생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정치가 추구해야 할 최고선은 영원한 평화다. 영원한 평화 위에서만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보편적으로 지켜질 수 있다.”

 말하자면 정치의 최고 목적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평화를 통해서만, 즉 평화로운 세상에서만 우리는 마음 놓고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 그렇다! 평화체제에서만 우리는 우리의 자유와 존엄성을 온전히 지켜내고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평화가 최고선이다” 이 말을 그 누구보다도 정치가들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정치가 평화를 가로막는 장애 요소

 평화의 문제는 단순한 정치적 과제는 아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좋음을 넘어 의무로 인정되는 모든 사람들의 으뜸 소망이다. 그래서 평화가 최고선인 것이다. 평화는 정치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정치의 차원을 넘어서는 윤리 도덕의 문제에 속한다. 이 점을 혼동하게 되면, 마치 말을 수레의 뒤에 매는 것처럼, 원칙을 목적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류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서는 도덕적 정치가가 필요하다.

 칸트에 따르면, 정치가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도덕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정략가이지만, 도덕적 정치가는 국가 운영의 원리들을 도덕과 양립하고 공존할 수 있게 만든다. 참된 정치를 위해서 정치가들은 항상 윤리 도덕에 기초한 도덕 정치, 즉 덕치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윤리 도덕에 경의를 표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정치로 한 걸음도 내딛을 수가 없다. 비록 정치가 그 자체로는 어려운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정치의 도덕과의 합일은 전혀 기술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양자가 상충하자마자, 정치는 풀 수 없는 매듭을 도덕은 잘라 버리기 때문이다.

 경제 회복 위해서라도 평화 세계 앞당겨야

 많은 사람들이 경제 상황이 나빠져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모두 전쟁 때문이라고 인식한다. 일찍이 칸트 선생도 이 점을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었다. 상업이나 경제활동은 전쟁과 양립할 수 없으며, 상업정신이야말로 폭력과 전쟁에 대항에서 모든 민족들의 상호적 이익을 통합시킨다. 너무나 자명한 말이다. 비록 도덕적인 동기는 아니더라도, 하루 빨리 경제회복을 위해서라도 전쟁을 막고 평화의 세상을 앞당겨야 한다. 영원한 평화는 헛된 이상이나 꿈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그리고 하루 빨리 실현되어야 할 인류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하겠다.

 김양현 (전남대 철학과 교수)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