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이 만난 사람] 박선옥 전국돌봄서비스노조 광주지부 사무국장
“돌봄노동의 특수성 이해와 정당한 대우 위한 법과 제도 개선 필요”

3·8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7일 본보와 만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 광주지부의 박선옥 사무국장.
3·8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7일 본보와 만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 광주지부의 박선옥 사무국장.

1908년 여성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임금 격차와 고용 불안은 여전하기만 하다.

특히나 오랜 시간 여성의 노동이라 인식돼 온 ‘돌봄’의 영역은, 초고령사회에 접어드는 오늘날 그 역할의 중요성이 더 없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들의 ‘값싼 노동’으로 취급받고 있는 실정이다.

‘돌봄노동자’의 90% 이상은 여성. 그 중에서도 50~60대가 대부분이다. 어린이·환자·노인 등 돌봄이 절실한 현장 곳곳에 그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이로 인한 인력난에 제대로 쉴 수도 없는 구조에 빠져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치열한 노동 현장에서 처우 개선을 외치고 있는 돌봄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노동자 평균 222만 원, 돌봄 종사자 153만 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 광주지부 박선옥(56) 사무국장은 4년 째 장기요양시설과 방문요양서비스 등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요양보호사다.

7일 본보와 만난 박 국장은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만큼 돌봄의 수요는 늘어나지만 돌봄 현장의 노동자들에게는 희생과 봉사 정신만이 강요되고 노동의 가치는 부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간한 ‘필수노동자 실태와 정책과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돌봄서비스 종사자는 130만 명 가량이다. 이중 여성의 비중은 꾸준히 90%를 넘기고 있다.

2022년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등 사회복지 관련 노동자 월 평균 임금은 222만 원인데 비해 요양보호사 등 돌봄·보건서비스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153만 원이다. 당시 최저시급이 9160원이었던 것을 대입하면 월급은 191만 원 수준인 것.

그는 “현장엔 대부분 50~60대 여성이 일하고 있다. 제가 그나마 어린 편인데, 오랫동안 처우 개선이 안 되다보니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에 업무 강도는 높아 젊은 여성들이 일을 시작해도 이직하는 일이 잦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양시설에 남성 어르신들도 많은데 여성 요양보호사 밖에 없다보니 목욕이나 옷을 갈아 입혀 드리는 거를 수치스러워 하시는 경우도 많다”며 “남녀 모두 일 할 수 있도록 고용의 형태가 다양화되고 적정 임금이 지급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인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박 국장은 북구 각화동의 한 가정에 방문요양 일을 하고 있다. 홀로 살고 있는 어르신 댁에 방문해 청소 등의 가사 지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정서 지원을 하는 업무다. 근로 시간은 하루 3시간 가량, 월급은 최저임금으로 계산돼 6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방문요양 4대보험 피하려 ‘59.9시간’

그는 “방문요양은 한 달에 60시간 이상 근무해야 4대 보험을 들 수 있는데 그래서 일부러 59.9시간만 일하게 하는 등 초단시간 근로가 많다”며 “방문요양하시는 분들은 하루에 한 번으론 안 되니까 하루에 2~3곳의 가정을 방문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방문요양을 하다보면 대상자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일도 있다. 그럼 갑자기 일자리를 잃는 거다. 임금의 형태가 시급제다 보니까 일을 안 하면 돈을 못 받는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현재 방문요양 일을 하고 있지만 이전 요양시설에서 근무했을 땐 “쓴 물이 올라올 정도로 달려다녔다”고 회상할 정도로 더욱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다.

“24시간 운영되던 요양시설에서 근무했었는데 10명의 어르신을 2명의 요양보호사가 케어해야 했다. 돌봐야 하는 어르신들 중엔 치매 환자도 있고, 외상 환자도 있고, 배회하면서 악 쓰는 환자들도 있어서 두 명이서 어르신들을 지켜보기만 하는 걸로도 벅찼다.”

업무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청소와 식사, 기저귀 케어는 기본, 위생을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없었기에 목욕을 할 때마다 침대 시트를 일일이 벗겨 빨고 다시 씌우는 일까지 해야 했다. 일할 때마다 어르신들한테 욕을 듣는 건 부지기수고 목욕 시킬 때 멱살을 집어 뜯기고 뺨을 맞는 건 일상이다.

박 국장은 “혼자서 야간에 21명의 어르신을 돌봐야 했었는데 휴게시간이 있어도 쉴 수 없었다. 밤에 혼자 가다 넘어지는 낙상 사고가 가장 많아 화장실 가는 소리만 들려도 동행한다. 밤새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으니 환자 곁에서 쪽잠을 자거나 하는 게 전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13시간을 일해도 5시간을 휴게시간으로 빼니 8시간에 따른 시급을 받는다”며 “희생과 봉사라는 이름 아래 너무 많은 불합리한 노동이 강요된다. 그러다보니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 못 버티고 그만둬 늘 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돌봄노동자 기본법 제정 악순환 고리 끊어야

이처럼 돌봄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내몰리며 제대로 된 평가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계속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박 씨는 돌봄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돌봄노동자 기본법’ 제정의 중요성을 말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돌봄 노동자의 처우 개선 계획을 논의하고 수립하도록 하자는 게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박 국장은 “한 생명이 요람에서 무덤으로 가기까지 긴 여정 속에 특히나 돌봄이 막대하게 필요한 시기가 있다”며 “그 시기 올바른 돌봄이 행해질 수 있도록 국가는 더욱 촘촘히 돌봄노동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통해 지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끝으로 강조했다.

유시연 기자 youn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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