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82)곰돌곰순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주신 두 형님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편집자주>

새로 수리한 수도. 주변을 맴돌며 기쁨을 주는 양이, 짱이, 셋째.
새로 수리한 수도. 주변을 맴돌며 기쁨을 주는 양이, 짱이, 셋째.

 느즈막하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삼형제가 마당일을 시작합니다. 오늘의 미션, ‘정자 의자 만들기’와 대문쪽 ‘수도 고치기’. 정자 의자는, 곰돌곰순이 정자를 좀더 효율적으로 쓰려고 연구한 끝에 최적의 모델을 고안하여 넷째 형님께 의뢰한 겁니다. 수도는, 겨우내 얼어 있다 풀려서인지 수도꼭지 위쪽에서 물이 새는 걸 차일피일 미루다 형님들이 오시면 함께 해결하자고 놔두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곰돌이 생각에 ‘번외 경기’인 줄 알았던 수도 공사가 ‘본경기’인 정자 의자 만들기만큼이나 힘든 작업이 될 거 같습니다. 전날 오후에 도착해서 작업현장(!)을 미리 둘러보신 넷째 형님 말씀이 30년 정도 되었으니 수도를 통째로 바꿀 수도 있다고, 그럼 수도 주변을 1미터 정도 깊이로 파서 교체해야 한다며, 슬쩍, 겁을 주시기도 하셨지요.

 수도꼭지를 풀어보니 수도 파이프 한가운데 1미터 길이의 환봉이 있습니다. 겨울철 동파 방지를 위해 안에 설치된 거랍니다. 넷째 형님이 이걸 빼내더니 수도 파이프 위쪽을 아기손 한 뼘 만큼 그라인더로 잘라내고, 장닛플을 용접으로 고정시키면 가능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작업하고 물을 틀어보니 머리카락 같은 구멍도 없는지 개미 눈곱만한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습니다. 오래된 수도파이프라 안쪽에 보온재도 없다며 바깥을 보온재로 감싼 후 보온테이프로 꽁꽁 동여매서 마감을 합니다. 거기에 사용하기 편하도록 수도 방향까지 바꿔주는 센스까지, 역시 완벽함을 보여주는 기술자입니다.

 드디어 ‘본 경기’인 정자 의자 만들기. 곰돌이는 삼각 받침대 세 개와 난간용 봉 하나로 설계했는데, 넷째형님 말씀으로는 그렇게 만들면 받침대 위에 설치한 의자 바닥이 나중에 춤을 춘다(!)고. 받침대 간격이 50센티미터는 되어야 하고, 이걸 위해 받침대 지지 기둥들을 따로 세워야 하며, 의자 바닥으로 쓸 합성목 길이(2400밀리미터)에 맞게 끝부분에 기둥도 세워야 한다고. 역시, 아이디어는 아이디어일 뿐, 그걸 구체화할 때는 얼마나 많은 정교하면서도 세밀한 후속 작업들이 이어져야 하는지를 이번에 또 배우게 됩니다.

 넷째형님이 불러준 치수대로 곰돌이 마킹해서 넘기면 셋째형님이 아연 각관을 절단기로 재단하고, 이걸 다시 넷째형님이 용접으로 작업하고. 순서대로 하다 보니 일에 탄력이 붙기 시작합니다. 등받이와 의자 바닥 작업도 넷째형님이 드릴로 구멍을 뚫어주면 곰돌이와 셋째형님이 피스를 박다 보니 어느새 마무리되었습니다. 거기에 곰돌이 미리 재단해 둔 장판을 올려 놓으니, 고정이야 나중에 하더라도, 카~, 정자 의자 완성. 곰돌곰순이 머릿속으로 그려본 그림보다 몇 배는 더 좋은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영산강변 대숲 길 끝에서 삼형제가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영산강변 대숲 길 끝에서 삼형제가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두 형님을 모신 사연인즉

 곰돌곰순이 멀리 사시는 두 형님께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십사 하고 부탁을 드린 사연은 이렇습니다. 곰돌이 날씨가 따뜻했던 2월 어느 날 블루베리 화단에 물을 주려 수도를 틀었더니 수도꼭지 옆쪽에서 쒸-익-, 소리를 내며 마치 소방호스처럼 물이 뿜어져 나왔답니다. 얼른 잠그고 조심히 틀어 물이 뿜어져 나가는 곳을 살펴보았더니 수도밸브 쪽 관 윗부분에 금이 간 듯. 손을 봐야지 했지만, 이런저런 일로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습니다.

 정자에 앉아 있으면 앞쪽으로 불태산 전경을, 왼쪽으로 해지는 붉은 노을을 볼 수 있습니다. 불태산 아래로는 마을 풍경이요, 마을 앞쪽으로 들판이니, 정자에 앉아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거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날씨가 풀려 곰돌곰순이 정자에서 커피 한잔하며 들어오는 날이 많아지던 2월 어느 날 신발을 벗지 않고 정자에 걸터 앉을 때 건너편에 의자가 있다면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도 하고, 사이에 테이블을 놓게 되면 야외 카페 겸 식당, 작업실, 기타 연습실 등 다용도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곰돌이 궁리를 거듭한 끝에 최적의 그림을 그려 곰순이에게 보여주며 작업 일정까지 브리핑을 하니, 왜 그렇게 혼자서 무리하면서까지, 다 하려고 하냐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원하는 모양대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넷째형님께 부탁드리면 어떠냐고. 이렇게 기회를 만들어 형님도 보고, 덩달아 셋째형님께도 전화드려서 도와달라는 핑계로 서로 얼굴 보면 어떠냐고 의견을 줍니다. 역시, 곰돌이의 마음속에 열 번도 넘게 들락날락하며 둘러보았는지 쉽게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곰순의 제안대로 곰돌곰순의 ‘만능 치트키’이신 경상남도 사천의 넷째 형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귀촌 이후 집 뒤안 데크, 옥상, 정자와 파고라, 화단 같은 텃밭, 옆집에서 내려오는 홈통 때문에 놀리고 있던 담벼락 밑을 화단으로 만들기 등 넷째 형님의 아이디어와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눈이 빠른 곰돌이는 넷째 형님 덕에 귀촌에 필요한 여러 기술들을 배워 요긴하게 쓰고 있답니다). 예상한 대로 쉬는 날 기꺼이 하루를 빼서 오겠다고 하십니다.

 내친김에 집안일과 넷째 형님 일이라면 가장 먼저 나서시는 경기도 기흥에서 일하시는 셋째 형님께도 전화를 드렸습니다. 역시나, 날짜에 맞춰 월차를 내고 전날 일 끝나자마자 오후 늦게 출발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날부터 곰돌곰순이 얼마나 마음 설레며 맛집을 예약하네, 텃밭에서 자란 봄나물들로 봄향기 가득한 요리를 해 드리네 하면서 기다렸는지 모른답니다.

새로 만든 정자 의자. 테이블을 갖다 놓으니 야외 카페가 되었다.
새로 만든 정자 의자. 테이블을 갖다 놓으니 야외 카페가 되었다.

 관수정의 매화향과 곰순의 봄나물향이 영산강까지

 오랜만에 만났으니 전날 자정 넘어서까지 막걸리에 이야기꽃을 피웠겠지요. 내일은 7시에 일어나자고 했는데, 넷째형님은 미리 일어나서 작업할 곳을 돌아보고 또 구상과 밑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곰돌곰순은 셋째형님과 동네 산책을 하기로 합니다. 새 학기를 맞아 곰순이 이른 출근을 하다 보니 여전히 관수정쪽으로 아침 운동을 다니고 있는데, 셋째형님께 소개하니 좋다고 가보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셋째형님이 관수정에 올라 앞쪽으로 쭈-욱 뻗은 산책로를 보시자마자 바로 신발을 벗더니 맨발걷기 하자고 하십니다. 역시, 곰돌곰순과 같은 DNA를 공유하고 있나 봅니다. 어머님 생신, 두 번의 명절과 아버님 제사, 1년에 네 번은 온 가족이 모이는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늘 참여하십니다. 어머님과 남매들과 곰돌곰순에 대한 애정이 깊으신 분이라.

 산책로 끝에는 매화향 가득한 매화나무 숲이 있습니다. 내려가는 산책로 중간부터 산책로 끝부분의 하얀 매화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 절경에 저절로 탄성이 나옵니다. 아주 넓은 곳은 아니어도 산책길 끝에서 매화향을 음미하며 감상하기에는 충분합니다. 흡족해 하시는 셋째형님의 모습을 곰순이 사진에 담습니다.

 산책을 다녀와서는 조금 늦게 출근해도 된다며 곰순이 마당의 봄동과 머위, 냉이, 쪽파를 캐 씻어서 데쳐 접시에 놓고는 한쪽에 초장을 놓습니다, 어제 로컬푸드에서 사 온 달래와 세발나물, 당귀는 씻어서 접시에 놓고 발사믹 소스를 뿌려줍니다. 곰돌이는 사과, 황금향, 배, 바나나, 견과류, 생식 등을 준비해 과일주스를 만듭니다. 두 형님이 함께 준비하자고 상 차리는 걸 돕습니다. 그렇게 아침, 저녁 밥상에 봄나물 향이 가득했겠지요.

 마당 일을 마치고 삼형제가 영산강변을 산책했답니다. 대숲을 지나 영산강을 거슬러 걸으며 물오리떼와 물고기, 강태공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자전거족들을 보며 이들과 얽힌 이야기들도 나누었습니다. 강바람이 여전히 차가워 옷깃을 여미게 했지만 곰돌이에게는 그리 차갑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다는.

 돌아오며 걷는 그 길 위에서 곰돌이는 어제 저녁 술 한 잔 하며, 그리고 오늘 아침 식사하며 곰순이 내내 말한 걸 형님들께 이야기했답니다. 지금은 한창 일하고 계시니 10년쯤 지나 담양으로 이사 와서 함께 모여서 살자고. 그때쯤 되면 이곳도 변화가 있을 거고, 살 집도 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 안에라도 좋은 곳이 나오면 이곳에 집을 얻어놓고 일은 거기에서들 하시고, 주말은 여기에서 지내시며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추임새를 넣으며 기분 좋게 웃게 되었습니다.

 평소 곰돌곰순의 화제에 늘 빠지지 않는 소재입니다. 그 일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곰돌곰순이도 잘 알고 있답니다. 이미 일가를 이루신데다 삶의 터전과 사회적 지위와 관계들이 얽혀 있다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겠지요. 그럼에도 형님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픈 마음이 늘 앞선답니다. 그리고 늘, 곰돌이보다 앞서 이야기를 꺼내는 곰순이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다 할 수가 없겠지요.

 그런데 삶이란, 많은 우연들이 만나고, 그 우연들이 또 다른 계기가 되어 필연이 되기도 하는 법 아니던가요.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그런 우연들의 필연. 그래서 곰돌곰순이는 존경과 사랑의 마음뿐 아니라, 기대와 희망뿐 아니라, ‘그렇게 될 수도 있기에’ 함께 있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지겠지요. 서로의 공간에서 최선을 다하면서요.

 커피 한 잔 들고 정자를 둘러보는 지금, 역시 의자는 참 잘 만들었네요.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