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순의 호남의 명산] 광양 쫓비산(538.2m)
호남정맥 끝자락 대표적 봄꽃 산행지

관동마을.
관동마을.

 이맘때면 떠오르는 산이 있다. 호남정맥의 끝자락인 백운산(1216m)에서 망덕포구로 떨어지는 지맥의 꼬리에 있는 쫓비산(538.2m)이다.

 평소에는 주변의 백운산과 지리산에 밀려 등산객이 잘 찾지 않지만 매화가 만개할 즈음이면 앞다투어 찾는다. 산 아래 섬진강변과 마을이 온통 매화로 뒤덮여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린듯하고, 흰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모습으로 변한다. ‘전설 속의 이상향이 바로 이곳이구나’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은은한 매화 향기는 첫날 밤 신부의 속살 내음 같아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매화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전령사다. 추위에도 꿋꿋하게 꽃을 피워 세한삼우(歲寒三友)라 일컬으며 결기 있는 선비의 상징으로 비유되곤 한다. 2월부터 홍매가 피며 청매와 백매의 본격적인 개화는 3월 중순경 섬진강 550리 물길 따라 천천히 북상한다.

 봄이 왔음을 처음 알리는 축제가 열리는 다압면 일대는 이맘때면 관광객이 100만 명 이상 찾는다. 그 중심에 ‘홍쌍리’라는 여인이 50여 년 손을 호미삼아 일구어낸 ‘청매실농원’이 있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한그루 한 그루씩 나무를 심은 것이 10만 평이 되었다. 이제는 사방 30리길 산비탈이나 마을 담장에도 매화나무 한두 그루 이상 흔하게 보인다. 쫓비산은 탐매를 위한 봄나들이 산행지다.

섬진강 조망.
섬진강 조망.

 매화향 따라 발보다 마음이 앞서다

 쫓비산! 참 고운 이름이다. 순수 우리말인데 누구도 이름의 내력을 신통하게 답해 주지 못한다. 국문학을 연구하는 교수에게 자문을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흔하게 알려진 바로는 인근 산에 비해 뾰쪽하다 하여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쫓비산은 평범한 육산이며 특별히 모나게 돌출되지도 않았다.

 푸른빛과 자줏빛의 중간 빛깔을 ‘쪽빛’이라고 한다. 어쩌면 맑고 고운 하늘빛 닮은 섬진강물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되뇌어 본다. 산세는 전체적으로 특징이 없고 평범하지만 이미 꽃에 취하고 섬진강에 취한 탓에 발걸음은 가볍다.

암릉구간.
암릉구간.

 산행 초입은 일반적으로 관동마을 주유소에서 시작한다. 마을 입구에 있는 산행 개념도에는 백운산 정상 11.6km, 쫓비산 6.0km 가리킨다. 관동마을에서 골목길이 2개로 나뉜다. 왼쪽 담장 따라 마을을 통과하면 ‘게밭골’ 방향이다.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완만한 1.3㎞ 시멘트 길을 오르는 동안 매화나무들이 손을 쭉쭉 뻗고 있어 꽃 터널을 이루었다. 마지막 농가를 끝으로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흙길이 시작된다. 능선까지 20여 분 가파른 오르막이다.

 배딩이재까지 올라서면 조금은 느긋한 마음을 가져도 된다. 오르내림이 반복되지만 고도차가 크지 않아서 트레킹 수준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숲은 키 큰 굴참나무와 철쭉이 많아 조망을 거의 볼 수 없다. 녹음 짙은 계절에는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수림이다. 호남정맥이 지나는 길 답게 형형색색의 산악회 표시기가 만국기처럼 휘날린다.

 오른쪽은 매봉을 거쳐 백운산으로 가는 길이다. 둥그런 동산 형태의 ‘갈미봉葛美峰’은 작은 안내판을 유심히 봐야 알 수 있다. ‘갈미’ ‘갈모’는 조상들이 기름종이로 우산같이 만들어 갓 위에 덧씌워서 비를 막던 도구에서 유래한다.

청매실농원.
청매실농원.

 정상데크는 백패커들의 꽃놀이 성지

 팔각정 전망대는 탁 트인 산그리메와 섬진강 물줄기가 장관이다. 섬진강은 금빛 모래톱을 만들며 부드럽지만 도도하게 흐른다.

 강 너머로 분지봉(500m), 구재봉(767m), 형재봉(1115m) 그 뒤로 지리산이 나란히 보인다. 서쪽으로 백운산 줄기인 억불봉(1008m)이 장엄하게 다가온다.

 바람재에서는 독특한 소리음을 들을 수 있다. 파도가 바닷 바람에 부딪치는 듯한 ‘웅~ 웅~’ 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쫓비산과 억불봉이 성벽처럼 막고 있어 어치계곡을 통과하는 바람 소리가 공명을 울리며 내는 소리다. 정상 데크 전망대는 백패커들에게는 꽃놀이 성지다.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 무리가 하얀 꽃들과 만나는 밤 풍경은 별천지다.

 40여 분 구불구불한 내리막 끝에 있는 청매실농원이 보이면 감탄사가 터진다. 매화가 폭죽처럼 번지고 있다. 인생을 축제처럼 살라고 하였던가? 홍쌍리라는 한 여인의 집념이 강 건너 하동 땅까지 세상을 축제 한마당으로 만들어버렸다.

 팔각정에 올라야 제대로 보인다. 청매실을 발효 숙성중인 2000개의 옹기가 장관이다. 혹여 매화를 놓쳤다면 아쉬워 말자, 3만 평의 야생화 다음 자리를 기다리고 있고 멀지 않은 거리에 쌍계사 십리 벚꽃길이 대기중이다.

등산로.
등산로.

 섬진마을 강가에는 두꺼비 조형물이 많이 보인다. 은혜 갚은 두꺼비 전설이 전해온다.

 아주 옛날, 마음씨 착한 처녀가 살았다. 어느 날 부엌으로 뛰어든 두꺼비를 가엽게 여긴 처녀는 밥을 주고 살 곳을 마련해 주며 함께 지냈다. 어느 해 이 마을에 큰 홍수로 마을을 범람하고 착한 처녀도 떠내려가고 말았다. 그때 두꺼비가 나타나 처녀를 등에 업고 구해줬다. 힘에 부친 두꺼비는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처녀가 닿은 곳을 두꺼비 나루라 하고 두꺼비 섬(蟾)자를 써 섬진(蟾津)이라고 불렀다.

광양 쫓비산 개념도.
광양 쫓비산 개념도.

 ▲산행 길잡이

 관동마을-배딩이재-갈미봉-바람재-쫓비산-삼거리-청매실농원(9km 4시30분)

 소학정-다사갈림길-쫓비산-삼거리-청매실농원(7.3km 4시간)

 ▲먹을거리

 섬진강은 참게가 유명하지만 청매실농원 건너편에 있는 하동에서는 단연코 제첩이다. 이구동성으로 추천하는 맛집으로 하동 여여식당(055-884-0080)을 꼽는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시원하고 담백하다. 재첩국백반 1만 원, 재첩회덮밥 1만 5000원, 재첩회무침(小) 3만 원

 ▲볼거리

 청매실농원 건너 섬진강 주변에 두 곳의 명소가 있다. 강변을 따라 조성된 데크길에는 조선 선조 때 광양 출신 ‘정설’이 세운 수월정水月亭이 있고, 그 옆에 4마리의 두꺼비 석상이 있다.

 그리고, 하동송림공원에는 300년 세월을 지킨 750그루의 노거수가 압권이다. 갑옷 입은 장군처럼 늠름한 자태처럼 보인다. 천연기념물 제445호다.

 글·사진= 김희순 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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