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삶]

백곰.
백곰.

 현재 지구 온난화의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동물이 아마 북극곰(백곰)일 것이다. 북극의 여름이 점점 길어지고 해빙(바닷물로 만들어진 얼음)이 녹으면 백곰은 밤이 계속되는 극야(1~3월까지 계속) 동안 제대로 먹이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들의 사냥방식은 어두운 겨울 홀로 얼음장 위에 서서 물범이 뚫어놓은 숨구멍을 바라보면서 오로라를 배경으로 멍때리고 있다가, 운 나쁘게 물범이 숨을 쉬러 올라올 때 앞발로 기절시키는 것이다. 아니면 가끔 얼음 위로 잠깐 휴식하러 올라오는 물범을 몰래 기다렸다 사냥한다. 그러니 주요한 두 사냥 방법 모두 넓고 안정된 얼음판이 필요하다. 물범 역시 얼음 아래 사는 풍부한 크릴새우를 노리는 물고기들을 잡아먹고 얼음 위에 새끼를 낳아 한 달 동안 정성스레 키운다. 열대에 정글이 필수라면 그들에게 새하얀 얼음 왕국이 필수이다.

 이러한 물범과 백곰의 전쟁을 애니 ‘겨울 왕국’의 주인공들로 바꾸어 놓으면 딱 맞는 그림이 된다.

 북극곰은 긴 북극의 여름에는 거의 사체나 식물로 연명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지고 산다. 황량한 육지에는 먹을 것이 거의 없고 바다를 헤엄치기에는 너무 넓어 지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깡마른 상태로 먹이를 찾아 헤매는 백곰들을 보고 보통 ‘하면(夏眠)’ 한다고도 표현한다. 주변에 아무 관심 없이 축 처진 눈과 어깨를 하고 느릿느릿 한 곳을 빙빙 떠돌기 때문이다.

 불곰 같은 다른 곰은 추운 겨울이 오면 땅 밑이나 나무 밑으로 바람처럼 스며들지만, 북극곰은 영하 40℃가 넘는 냉동실보다 더 추운 북극의 겨울을 커다란 몸뚱이 하나와 발바닥까지 내려오는 하얀 긴 털로 견뎌내며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물속까지 드나들며 먹이 활동을 한다. 그야말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추위에도 까닥도 하지 않는 특급 슈퍼곰이다.

 가끔 ‘북극곰은 겨울잠을 안 자지요?’하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내가 아는 지식으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이야기해 준다. 북극곰은 일반 곰처럼 먹이가 부족해서 자지는 않는다. 그리고 일반 곰들은 암수 모두가 겨울잠을 잔다. 그런데 북극곰은 아기를 밴 암곰만 일반 곰들처럼 눈 속을 파고 들어가 겨울잠을 잔다. 이걸 보고 아마도 북극의 이누이트들이 이글루를 만들었을 걸로 짐작이 간다.

 원시시대에는 동물들이 바로 우리들의 ‘찐’ 스승이었다. 늑대의 무리생활을 보고 사회생활을 흉내 냈으며, 입는 것, 사는 것, 먹는 것 등등 동물 모방을 잘하는 이가 지혜로운 이로 추앙되어 부족의 스승 겸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니 후손들에게 무엇을 대물림해 주었겠는가?

 백곰은 보통 12월~1월 눈 굴에서 1~2마리 새끼를 낳고 어미가 열심히 키운다. 하얀 새끼 곰은 정말 우리 영혼의 캐릭터라 할 만큼 우리에게 친숙하다.

 현재 인간의 활동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지구온난화와 해양오염은 이들에게 치명적이다. 얼음이 없어지면 이들은 먹이를 사냥하려고 더 많이 헤엄쳐야 하고 더 많이 좀비처럼 헤매고 다녀야 한다. 힘이 다하면 물에 빠져 익사할 수도 있다.

 여기저기 빈 공간이 많아져 숨구멍이 필요 없는 물범들은 다시는 얼음 위로 안 떠 오를 수도 있다. 얼음 위는 난파선이 되고 굶주린 곰은 얼음 위에서 그 옛날의 매머드들처럼 미이라가 될 수 있다.

 먹지 않으면 제아무리 슈퍼곰이라도 휘몰아치는 추위를 견딜 수가 없다.

 북극의 해빙이 녹아내리면 북극곰의 영역도 무너지고 인간 역시 수많은 땅이 잠기게 된다. 북극의 기후가 변하면 지구 전체 기후도 걷잡을 수 없이 변하고 해류의 흐름도 바뀐다.

 우린 이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정말 조만간에 북극곰을 남극에, 펭귄을 북극에 피난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왜 그 조용하고 평화로운 극지방과 그곳의 소수의 동물이,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동물들이 저질러 놓은 만행으로 인해 가장 먼저 벌을 받아야 하는가?

 최종욱 <수의사>

여름 백곰.
여름 백곰.

 ▲백곰(북극곰, 흰곰, polar bear)

 - 학명 : Ursus maritimus

 - 분류 : 척추동물 > 포유강 > 식육목 > 곰과(8종) > 큰곰속 > 북극곰

 - 크기 : 몸길이 2~3m, 꼬리길이 7.6~13cm, 어깨높이 약 160cm, 약 150kg(암컷) ~ 650kg(수컷)

 - 식성 : 육식성(물범, 바다사자를 위주로 한 잡식)

 - 수명 : 약 25년~30년

 - 분포 지역 : 북극해 주변, 그린란드(덴마크)와 스발바르(노르웨이), 시베리아 북부(러시아), 베링해(러시아, 미국), 알래스카(미국), 뉴펀들랜드(캐나다) 등이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러시아, 미국, 캐나다 5개국은 1973년 ‘북극곰 보존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북극곰의 보존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 임신기간 : 240~270일, 12월~1월에 1~2마리 출산, 4월경 10kg이상 되었을 때 눈 굴 탈출, 10개월에서 2년까지 어미와 성장, 5년 정도에 성성숙

 - 멸종위기등급 : 취약(VU)- IUCN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