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코리안 네트워크’ 구축하자
유라시아 평화협력 세계한인네트워크로부터

160년 전 러시아 연해주에 집단 이주한 한인들.

 “함경도 무산 출신 최운보와 경흥 출신 양응범이 이끄는 14가구 65명이 올해 1월 이주해 프리모리예(연해주) 포시예트의 지신허(地新墟·치진헤) 마을을 개척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1864년 9월 21일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포시예트 경비대장 레자노프가 상부에 제츨한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한민족이 러시아에 집단 이주한 최초의 기록이다. 미국 하와이 농업이민보다 39년 앞선 해외 개척사의 효시이자 근현대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시작인 것이다.

 당시 연해주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 수탈과 착취를 견디다 못해 두만강을 넘는 조선인은 갈수록 불어났다. 1869년에는 함경도에 홍수 때문에 ‘기사흉년’이 발생해 농민 6500여 명이 대거 이주하기도 했다. 1905년 을사늑약 전후에는 국권을 되찾으려는 우국지사가 몰려들어 연해주는 항일독립운동의 요람이 됐다. 이범윤·이상설·이동휘·이동녕·신채호·박은식·최재형·홍범도·안중근 등이 독립군을 조직하고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

 독립운동 진영의 내분과 일제의 집요한 탄압으로 항일 열기는 식어갔지만 연해주로 이주하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1930년대에는 고려인이 20만을 넘었다고 한다. 곳곳에 고려인 학교가 세워지고 한글 신문·잡지가 발간되는가 하면 우리말 극단도 창립되었다.

 이후 구 소련의 스탈린 정권은 1937년 9~12월 고려인 약 17만 명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6500㎞를 이동하는 도중 추위와 굶주림으로 1만여 명이 숨졌다고 한다. 한민족의 해외 이주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K-Culture with 유라시아’ 캐치프레이즈 

 그러나 삶의 기반이 뿌리째 뽑혀 황무지에 내던져졌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해 살아남았고,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러시아 내 소수민족의 모범으로 꼽혔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시련은 계속됐다. 1991년 연방 해체 후 독립한 구 소련의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민족어를 공용어로 선포하자 러시아어만 써오던 고려인들은 전문직과 공직에서 밀려나 하층민으로 전락하기 시작했고 이에 피땀 흘려 이룬 터전을 버리고 다시 고향인 연해주 등지로 재이주하는 행렬이 생겨났다.

고려인 이주 160주년을 맞아 지난 2월 22일 ‘고려인·한인 이주 16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발족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올해는 고려인의 러시아 이주 1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전세계 700만 재외한인사회의 역사적 모태가 되었던 연해주 한인 이민사는 우리 민족은 물론 유라시아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평화·번영에 있어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고려인·한인의 역사야말로, 우리 겨레의 자부심이자 긍지이기도 하다. 고려인 동포들은 조국 독립을 위해 머나먼 땅 연해주에서 목숨을 걸고 일제에 항거했고,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내몰렸을 때도 꿋꿋이 우리 민족의 문화와 선조들의 얼을 지켜왔다. 모진 고초에도 강인함을 잃지 않은 이주 한인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같은 뿌리를 가진 동포이자 후손인 우리들의 몫이다.

 고려인 이주 160주년을 맞아 지난 2월 22일 ‘고려인·한인 이주 16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발족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시민사회단체와 학계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기념사업위원회는 160주년 기념사업을 국민과 세계 한인이 함께 추진하고자 러시아 연해주뿐만 아니라 세계 한인사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기념행사를 통해 글로벌 민족네트워크와 동반성장, 문화교류와 세계시민, 유라시아 평화와 협력 등 전 지구적 가치와 아젠더를 공유하고 확산시킬 계획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념사업의 핵심은 세계 고려인·한인 글로벌 네트워크의 활성화를 통한 유라시아의 평화와 협력이다. 이에 기념사업의 캐치프레이즈로 ‘K-Culture with 유라시아’로 정하고 대회 명칭 또한 ‘고려인 이주’에서 ‘고려인·한인 이주’로 변경했다. 이는 1863년 조선인 농가 14가구의 연해주 이주와 정착을 한인 해외 이주의 첫 시작, 즉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첫 시발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 고려인 이주 160주년은 곧 세계 한인 이주 역사 160주년이기도 하다. 한인 해외 이주의 첫 장소 연해주에서 세계 한민족 동포들이 함께 모여 축하하며 화합하는 축제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700만 재외동포 소중한 자산 

 고려인을 포함한 재외동포는 과거 살기 어려워서 먹고 살기 위해서 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위해 해외로 이주해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야 했다면, 지금은 모국 사회와 연계해 경제·문화 교류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역할자로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 코리안 네트워크를 이루어 나간다면 대한민국은 더 큰 경제·문화 공간을 갖게 되어 글로벌 중추국가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700만 재외동포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며, 동시에 세계 평화공동체를 이루는 일원이다. 우리의 공동 문화 자산인 K-컬쳐, 한류가 자랑스럽게도 세계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지속가능한 재외한인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차세대 한인들의 관심과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에 이번 기념행사는 특히 차세대들이 한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긍심과 역할을 일깨울 수 있도록 다양하고 참신한 콘텐츠도 선보일 것으로 기대가 된다.

 2024년을 맞아 개최될 ‘고려인·한인 이주 160주년 기념사업’이 우리의 문화로 한반도와 유라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이 꽃피울 수 있는 씨앗을 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뿌리 깊은 나무는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듯이 고려인·한인 선조들의 뿌리 위에서 세계 한민족 동포의 연대는 물론 한반도 평화 미래를 여는 디딤돌이 되길 기원해본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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