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성 앞세운 ‘주상복합’ 거대 욕망에
공공성 역사문화자산 얼마나 지켜낼지

북구 전남·일방 부지. 1935년에 세워져 지금까지 이어온 근대산업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그 중 하나인 석탄화력 발전소.  광주드림 자료사진
북구 전남·일방 부지. 1935년에 세워져 지금까지 이어온 근대산업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그 중 하나인 석탄화력 발전소. 광주드림 자료사진

 광주 북구 임동에 자리한 전남방직·일신방직은 광주 도심에 남아 있는 거의 마지막 근대산업유산이라 할만하다.

 전남방직·일신방직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 건축된 구조물로, 현재 당시 세워진 철골구조 화력발전소와 물 저장시설 등이 원형대로 남아 있다.

 전방 부지는 16만1983㎡, 일방 부지는 14만2148㎡로 두 곳을 합하면 30만 ㎡ 대단지다.

 이 부지가 지난해 7월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매각됐다.

 전방부지는 3660억1400만 원, 바로 옆 일신방직 부지는 3189억8600만 원으로 거래 대금은 총 6850억 원에 이르렀다. 당시 계약금을 치르고 잔금 기한으로 설정한 게 올해 6월이다. 소유권 이전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앞서 2019년 11월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은 공장 부지를 공업용지에서 상업·주거용지로 용도변경해 주상복합시설, 호텔, 쇼핑시설, 업무시설 등을 조성하겠다는 사업계획안을 시에 제출한 바 있다.

 광주시는 당시 두 회사의 사업계획안을 반려하고 TF팀을 구성, 역사문화자산 보존·시민 공감 가능한 개발 계획 등 ‘공공성 강화’ 사업안을 마련 중이다. 이 안이 완성돼 사업자가 수용해야 본협상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광주시 계획이다. 이같은 과정 중에 협상의 파트너가 바뀌게 되는 셈이다.

 이 부지 개발 계획과 관련 광주시는 ‘도시계획 변경 사전협상 방식’으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호남대 쌍촌캠퍼스 부지 개발 계획 협상과 같은 방식이다.

 때문에 광주시는 파트너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 누구든 공장용지를 상업용지로 변경하려면 광주시와 사전 협상, 그리고 도시계획 심의 통과 없인 불가능한 현실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방·일방 부지가 어떤 작품이 될지는 광주시와 사업자간 협상 결과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소유자, 공공성을 앞세운 광주시 간 샅바싸움에서 밑그림이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은 지난한 여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호남대 쌍촌 캠퍼스 부지 개발안은 2017년 시작됐지만 2021년 현재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일신방직 화력발전소 외부. 광주드림 자료사진
일신방직 화력발전소 외부. 광주드림 자료사진

마지막 남은 광주 근대문화 유산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은 방직산업을 기간산업으로 육성했다. 품질 좋은 전남지역의 목화 대부분은 목포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됐다. 한국이 일본 방직산업의 원료공급지가 된 셈이다. <본보 2008년 9월2일자 ‘전방·일방 성쇠기’(4)>

 일제는 더 나아가 원료 공급 원활과 값싼 노동력 활용을 위해 한국에 진출했다.

 선봉기업 중 하나가 종연방직(종방·일본식 표기 ‘가네보’)였다. 가네보는 1930년 학동(현 세라믹아파트 부지)에 목화에서 실을 뽑는 제사공장을 지었다. 가네보는 화순탄광도 인수했다. 공장을 가동할 동력으로써 석탄 공급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1935년, 가네보는 임동 일대에 종연방직 전남공장을 건립했다. 전남방직·일신방직의 전신이다.

 당시 이 터엔 임업시험장이 있었다. 인근 신안리의 논밭들도 공장 부지로 수용됐다. 모두 10여 만 평 규모였다.

 당시 10만 평 중 공장용지는 5만 평, 나머지 5만 평은 시민공원 등 위락시설 공간으로 계획했다. 식물원·동물원·공설운동장 등이 계획됐고, 첫 조치로 수영장이 건설됐다. ‘광주 100년’ 저자 고 박선홍 선생은 “공장을 위해 문전옥답을 내준 시민들에 대해 보답하기 위한 시설이었다”고 기록했다.

 중일전쟁·태평양전쟁 등으로 이어지는 전시 체제에서 가네보는 군수공장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다 1945년 일제 패망후 기술자 등 핵심 요원들이 일제히 빠졌다. 가동 자체가 불가능하자 노동자들이 자주관리위원회를 꾸려 전남방직주식회사로 간판을 바꾸고, 운영에 나섰다. 하지만 일제 대신 등장한 미 군정은 가네보의 관리책임자로 미 군정 통역관이었던 김형남(전 숭실대 총장) 씨를 임명했다.

 이어 1952년 적산 불하가 진행됐다. 전남방직은 기득권을 갖고 있던 관리자 김형남 주도의 컨소시엄이 인수했다. 컨소시엄엔 김형남, 포항의 삼일상회 설립자로 대한해운공사 사장을 역임한 김용주 씨, 대한제분 창업자인 이한원 씨 등 3인이 참여했다.

방직공장 제사과정. 광주드림 자료사진
방직공장 제사과정. 광주드림 자료사진

 이렇게 탄생한 전남방직공사는 6·25 전쟁 중인 1953년 2월23일에야 이전 등기를 완료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1961년, 전남방직공사는 두 회사로 분리됐다. 지금의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이다.

 현재의 전방은 김용주-김용성 씨 가계의 소유가 됐다. 김용주 씨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이다. 일신방직은 실질적인 창업주인 김형남 씨의 몫으로 정리됐다.

 같은 회사가 분리되면서 방직공장의 모든 것이 둘로 나뉘었다.

 종업원이 반씩 갈리고, 공장 등 건물도 양분돼 자로 잰 듯한 경계 담장이 쳐졌다.

 회사 이름을 누가 가져가느냐가 가장 큰 문제였다. 누구든 ‘브랜드 파워’가 상당했던 ‘전남방직’이라는 간판을 포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양 사는 명분과 실리로 이 문제를 정리했다. 전남방직이란 사명을 포기한 일신방직은 회사의 정문을 차지했다. 회사명은 ‘전방’, 정문은 ‘일방’의 몫이 된 것이다.

 섬유산업 쇠락과 맞물려 두 회사 역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도심에 위치한 대규모 공장으로 인한 소음 분진 등 주민 민원도 이어졌다. 두 업체는 광산구 평동산단에 운영 중인 공장을 확장하고 설비 현대화 등을 통해 임동 공장을 옮기기로 했다. 전방은 2017년 말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일신방직은 현재 이전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개발계획 내민 사업자 "상업용지 용도 변경"

 2019년 11월 전방과 일방이 광주시에 제출한 사업 계획안은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공장용지인 이곳을 상업용지로 용도 변경해 주상복합시설, 호텔, 쇼핑시설, 업무시설 등 조성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계획안에 따르면 도시관리계획상 일반공업지역으로 지정된 29만1801㎡(약 9만 평) 부지를 상업과 주거용지로 변경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공장 부지는 연구개발시설·지원시설·주상복합시설 용지로 쓰고, 보존가치가 있는 시설 일부를 포함한 역사공원과 도로 등 기반시설을 만들겠다는 제안이었다.

 보존할 시설이나 건물의 내용과 규모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용도 변경으로 인한 지가 상승 등 막대한 개발이익이 현실화할텐데, 개발계획안엔 땅값 상승액 40%를 기부한다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구 임동 일대 전남방직 부지. 광주드림 자료사진
북구 임동 일대 전남방직 부지. 광주드림 자료사진

광주시 조건 ‘역제안’ "수용안하면 협상없다"

 사유지인데, 공공성을 강조하는 개발, 전방·일방부지에서 이같은 일이 가능할까?

 광주시는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용도지역 변경 권한이 광주시에 있다는 게 믿는 구석이다. 광주시는 부시장을 단장으로 한 테스크포스(TF)를 꾸려 용도변경과 구체적 개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광주시 도시재생국 도시계획과(지구단위계획팀) 관계자에 따르면, 전방·일방 부지 사업은 ‘도시계획 변경 사전협상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호남대 쌍촌 캠퍼스 개발 계획 협상과 같은 방식인데, 이 경우 3단계 절차로 진행된다.

 △1단계는 협상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검토 단계 △ 2단계는 협상 대상으로 선정된 후 본협상 단계 △3단계는 협상이 완료된 후 그 결과를 반영해 도시관리계획을 입안하는 단계다.

 전방·일방 부지의 경우, 현재 1단계를 밟고 있다.

 사업자가 제출한 제안서와 별도로 광주시가 개발 계획안을 마련해 ‘역제안’하고, 사업자가 이를 수용해야 협상이 진행되고 반대의 경우 협상이 결렬된다는 것이다.

 TF팀이 사업자에게 제안할 개발계획안을 마련 중인데, 광주시의 안에는 이용섭 시장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한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은 이곳 부지와 관련 “역사문화자산 보존하고 시민이 공감하는 개발계획 마련”을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광주시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건 해당 부지 개발 계획안이 용도 변경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곳은 일반 공업지역으로, 이 용도에 맞는 개발 계획이라면 광주시의 간섭이 쉽지 않을수 있다. 하지만 지금 사업자가 원하는 건 상업지역으로의 용도지역이 변경돼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 권한은 광주시장에게 있다. 조건이 맞아야만 수용 가능하다.” 광주시 도시계획과 관계자의 말이다.

1961년 분리 당시 정문을 차지한 일신방직. 대로변에 접한 출입구를 갖게 됐다. 광주드림 자료사진
1961년 분리 당시 정문을 차지한 일신방직. 대로변에 접한 출입구를 갖게 됐다. 광주드림 자료사진

 광주시는 여러가지 과정을 감안하면 협상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광주시 관계자는 “호남대 쌍촌캠퍼스 부지 개발의 경우, 2017년~19년까지에 걸쳐 사전 협상과 본협상을 끝냈고, 현재는 3단계로 도시관리계획 변경 절차에 들어가 있는데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면서 “임동 부지의 경우 광주시가 제시한 전제 조건을 수용해야만 협상이 진행된다. 협상 과정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협상 장기화가 불가피해지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공장 가동으로 인한 주거 환경 불안·지붕 석면 미 제거 등 환경 오염을 우려하는 주민 민원이 이어지고 있는 것.

 임동 부지는 90년대 중반에도 한번 개발계획이 세워졌다가 무산돼 현재 상태가 지속되면서 상실감이 크다.

 공장 가동에 따른 불안요인은 조만간 공장이 이전돼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에도 개발 계획 자체가 무산되는 걸 제일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광주시 관계자는 “민원의 중점은 공장 가동으로 인한 것, 먼지가 날리고 석면 지붕으로 인한 건강·환경 오염 등에 대한 우려가 크다”면서 “협상의 전제는 공장 이전이며, 현재는 가동이 중단돼 있다”면서 “주민들이 우려하는 환경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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