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세월호 사고를 100년간 기억하자고 하면 어떨까. 우선 덜컥 겁이 날 것 같다. 참담한 사고이기에 마음이 무거워져 차마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 지금은 처음의 충격과 슬픔을 지나 일상에 묻히면서, 한동안 방영되지 않던 예능방송도 보고, 가족과 친구들과 어울려 웃고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뉴스로 접하는 세월호 구조 소식과 거리에서 마주하는 서명운동 하는 유가족을 보면서 죄송스런 마음이 들곤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까? 충격과 슬픔을 지나 일상 속에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데 100년간 기억되는 사고가 있다고 한다. 세월호 이후, 여기저기서 거론된 뉴욕의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화재다. 트라이앵글 화재도 속수무책으로 많은 피해자를 낳았다는 점에서 세월호 사고와 유사하다. 1911년 의류공장에 불이 났으나, 노동자들은 탈출할 수 없었고 소방대는 구조할 수 없었다. 의류공장은 건물 8~10층에 있었는데 일부 출구는 경영주가 잠가두었다. 노동자들이 몰래 쉬거나 옷을 훔쳐가는 것을 방지한다는 명분이었다. 유일한 출구가 되어버린 비상계단은 붕괴되어 노동자들은 탈출할 수 없었다. 소방대는 사다리와 호스가 6층까지 밖에 닿지 않아 화재를 진화하지 못했다. 결국 뉴욕 시민들은 146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고를 지켜볼 수밖에 없던 것이다.

 트라이앵글 사고를 100년 넘게 기억할 수 있던 것은 가만있지 않은 뉴욕시민들의 행동에 있었다. 시민들은 대중집회를 개최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고, 사고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뉴욕공장조사위원회를 결성했다. 공장조사위원회는 뉴욕 주의회로부터 증인을 소환하고 공장을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주 전역의 공장을 대상으로 3년에 걸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60여 개의 산업안전 관련법안을 제정되었다. 단지 방화시설을 마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들의 실태를 낱낱이 파악해서, 아동노동 규제 및 최저임금 도입 등 노동조건을 개선하는데 이바지하기도 했다. 당시 제정된 법안들은 미국의 노동법과 산업안전법을 현대화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사고는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뉴욕시는 2003년 트라이앵글 공장을 유적지로 지정했고, 트라이앵글을 기억하라는 조직이 결성되어 2011년에 100주기 추념행사가 진행되었다.

 100년을 기억하는 비결은 바로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 피해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었다. 세월호 사고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밝히고 대책 마련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뉴욕공장조사 위원회가 진실을 낱낱이 파헤쳤던 것처럼, 세월호 사고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독립적인 위원회 설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국정조사가 되고 있는데 별도로 위원회까지 설치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국정조사에 응하는 정부와 국회의원들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최소한의 자료도 확보하지 않거나, 시간 때우기 식 태도로 임하거나, 자리를 이탈하는 국회의원들도 상당수였다. 또한 국정조사 기간은 진실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에 턱 없이 짧은 시간이다. 따라서 성역 없는 조사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이 있는 독립적인 위원회를 설치하고, 충분한 조사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야한다. 최근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합의했다고는 하나, 위원회의 권한을 어느 정도로 부여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허수아비 위원회를 만들어 놓고 할 일 다 했노라고 면피하려 들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지 아직 100일도 되지 않았지만, 100년을 기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출발점으로 세월호 특별법이 제대로 제정 되도록 힘을 모으자.

이유미<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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