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물수능’, ‘변별력을 상실한 수능’, ‘대학 입시 로또 복권될 듯’, ‘물수능으로 인해 대학 입시전문상담 학원 문전성시’라는 선정적 제목의 기사들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을 정도다. 정부는 수능 대책 특위를 출범시켰고, 대책 특위 토론회 자리에서 한 국회의원은 “우리 아이도 수능을 봤다. 수학 문제 하나 틀려서 잘했다고 했더니 1등급이 아니더라”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한민국 국민이 수능 시험의 변별력 상실에 대해 분노하며 정부를 질타하고 있다.

 그런데 물 수능에 대한 분노와 비판에서 가장 우선시돼야 할 것은 무엇일까? 변별력 문제에만 집중하면서 입시 문제의 근본적 측면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조지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 하지 마’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할 경우 사람들은 문장의 명령대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코끼리를 더욱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바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코끼리’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려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의 프레임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되면 그 프레임을 부정하는 발언을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그 프레임은 대중들에게 더욱 깊이 각인되고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러한 프레임 전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해당 프레임을 부정하는 대신 새로운 프레임으로 대체해야 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애인과의 대화에서 유리한 입장을 취하는 법을 이야기 하는 걸 들었다. 보통 여자 친구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 다음 남자친구에게 달라진 것 없냐고 물어보는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눈썰미가 없어 알아채지 못하고 모른다고 대답하여 쩔쩔 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일 때 이 연예인은 여자 친구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왜 말하지 않고 혼자 미용실에 갔느냐’고 추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면 대화의 주제가 ‘머리한 것을 남자가 알아보는가?’에서 ‘미용실에 말하지 않고 혼자 간 것’으로 바뀌게 되고,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선다는 것이다. ‘머리 한 사실을 아는가’하는 프레임을 ‘미용실을 함께 가지 않은 이유’라는 프레임으로 교체해 버림으로써 연애관계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한 것이다.

 다시 2015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관한 문제로 돌아와 보자. 2015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쉽게 출제돼 상위권 학생들을 변별할 수 있는 기능이 약화되었고, 이로 인해 실수로 한 문제를 틀린 학생들이 소위 ‘멘붕’상태에 빠졌다. 자신이 지원 가능한 대학을 예상할 수 없어 입시상담 전문가들에게 고액의 상담비를 내며 한 숨 쉬고 있다는 말들이 각종 언론 매체와 인터넷을 채우고 있다. ‘수능시험 변별력을 통한 효율적인 서열화’ 프레임이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과연 서열화된 대학제도와 그에 따라 지균층·수시충·지잡대 등 서열화된 취급을 받게 되는 학생들의 아픔은 외면된다. 사람들은 서열화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바꿀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그런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부는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서열화를 위한 대책만을 개발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그 속에서 서열화 경쟁에 밀린 학생들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광주지역의 재수생이 자신보다 고교시절 성적이 낮았던 친구가 자신보다 입시 전형 수능 등급 컷이 높은 대학교에 진학한 것을 보고 비관해 목매달아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학생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한다면 서열화를 얼마나 잘 할 것인가가 아니라 서열화를 꼭 해야만 하는 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동혁<전교조 광주지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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