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하루가 멀다않고 연속해서 일어나는 여성 대상 잔혹 범죄로 인해 쇼크 상태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여성 대상 범죄가 이번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초구 노래방 공용화장실에서 남성이 면식도 없는 젊은 여성을 살해한 사건은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들이 여자를 살해’한 페미사이드 사건으로 명명되면서 강남역 10번 출구가 추모공간이 되었고,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례적이었던 강남역 10번 출구의 추모 열기는 그동안 ‘묻지마 살인’에 묻혀 희석되어 왔던 페미사이드를 여성혐오 범죄로 분명하게 가시화 하겠다는 젊은 여성들의 의지와 연대가 있어서 가능했다.

 이전 유영철 사건도 그랬듯이 “평소에 여성들이 나를 무시했다”는 것이 가해자의 범행 동기였다. 이 말에는 여성을 귀책사유로 치환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죽일 수도 있는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웃자고 한 유머들조차 -예를 들면 ‘김여사 주차 사건’이나 여성과 관련된 무슨 사건만 생기면 어김없이 ‘○○녀 사건’으로 불리어지는 등- 여성을 조롱하고 혐오를 소재로 삼고 있을 정도로 여성 혐오는 우리 사회에 일반화 되어왔다.



관음증 수준 보도…가해자 재생산

 이렇듯 차별과 혐오에서 출발한 잔혹 범죄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신안의 한 섬에서 벌어진 교사 대상 주민들의 집단 성폭력 사건은 분노를 넘어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여성으로 사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는 자괴감마저 들게 했다.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을 접했을 때 우리 사회는 진심으로 ‘성폭력’을 근절해야 할 중대한 범죄라고 생각하고 있기는 하는 걸까? 강한 의심에서부터 들었다. 언론들은 앞다퉈 그야말로 성폭력 사건이 아닌 ‘여자 따먹기’ 놀이를 상상하게 하는 수준의 관음증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3명의 성폭력 가해자가 저지른 사건은 순식간에 셀 수 없을 정도의 가해자를 재생산해 내면서 우리사회의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인권 의식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한 사회의 성적불평등 지수가 높을수록 여성 대상 범죄는 증가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다. 2013년 유엔마약범죄사무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202개국 가운데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살해되는 7개국 나라에 포함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사건을 두고 인터넷과 종편 등에서는 ‘여자들이 그 시간에 술이나 먹고 다니는 게 문제’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정부가 내놓은 사후 대책도 일관성 있게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그 댓글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먼저 공중화장실의 남녀 칸을 분리하는 것과 길가에 돌아다니는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게 하겠다는 안이다. 또, 섬에는 젊은 여자 선생을 보내지 않겠고 모든 관사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여자를 다 없애는 것이 낫겠다는 비아냥섞인 말이 나올 정도로 정부의 대처 방안은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언론·인터넷 가해자들 언설 멈춰야

 그런데 만성화된 청년실업과 좌초된 남성의 욕망의 귀책사유가 여성에게 있다고 여기는 여성혐오가 심각한 남초 현상에서 비롯된다는 자료가 있다. 통계청의 보고에 의하면 결혼 적령기의 남녀의 비율이 1.2:1로 극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또한 1980년대 태아 성감별의 결과라는 것이다. 태아에서부터 성인이 돼서까지도 여성에게만 혐오는 되풀이되고 악순환이 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서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CCTV와 같은 대책이 아니다. (언론과 댓글을 포함한)가해자들의 언설을 당장 멈추게 하는 것이다. 공공연히 여성혐오와 여성폭력이 묵인돼지고 오히려 일부에서는 동의를 얻을 수 있다는 그런 인식들 말이다. 그런 인식들이 멈춰지지 않은 한, 사건만 터지면 만능 대책처럼 등장하는 CCTV 너머에는 더 잔혹한 혐오와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백희정<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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