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영화가, 그리고 기자님이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해줬으니까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이 말 한마디를 하는 데 꼬박 200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긴 기다림에 한 줄기 빛을 드리운 것은 77분짜리 영화 한 편이었다.

 광주극장에서 ‘다이빙벨’이 상영되던 지난 9일, 이 영화 감독인 이상호 기자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세월호 사건 현장을 담아낸 다큐영화 ‘다이빙벨’은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금지 외압 파문에도 불구하고 10월23일 개봉 이후 13일 기준 3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으며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된 이상호 기자의 취재는 세월호 사건의 면면을 고발한다. “영화의 ‘영’자도 모르던” 이 기자는 광주 관객과 만난 자리에서 “‘진실’이 매장되고 있는 현실에 분통이 터져 감독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진실이 침몰한 현장에서 가장 뭇매를 맞아야 할 대상은 언론이다.



세월호 사건 현장서 드러난 언론 민낯

 이미 ‘전원구조’ 오보로 큰 충격을 안겨준 바 있지만, 영화에서 드러난 언론의 민낯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민간구난업체 알파잠수기술공사의 이종인 대표가 자비를 들여 다이빙벨을 팽목항으로 싣고 왔을 때, 하루 빨리 다이빙벨을 투입해야 한다며 부두에 서서 부르짖을 때, 늦게나마 투입된 다이빙벨이 75분 잠수를 성공시켰을 때까지…. 이 대표 곁에는 이상호 기자뿐이었다.

 세월호 사건 현장 소식을 시시각각 전하는 언론사들이 팽목항을 가득 채우고 있었음에도 이 기자만이 ‘다이빙벨’의 진실을 전하고 있는 유일한 언론이었던 셈이다.

 다이빙벨이 투입도 되기 전인데 ‘구조 실패’라는 보도가 전파를 타고, 전문잠수사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려던 이종인 대표가 언론의 뭇매를 맞는 장면에서는 언론 또한 세월호 참사의 공범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 상영 후 이상호 기자가 물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요?”

 언론은 진실의 창이 돼야한다는 뻔한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20년 간 끈질기게 자기 자신에게 물어온 질문이고 언론인으로서 책무를 잊지 않으려는 지독한 몸부림으로 해석됐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자답은 해석을 더 확고하게 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약자가 누구인지부터 생각했습니다.” 이상호 기자는 세월호 사건현장에서 가장 약자인 희생자 가족들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찾아가 가장 필요한 진실이 무언지 고민했다. 그 결과로 영화가 탄생했다.



유가족들 얼어붙은 마음 잠시나마 녹여

 언론의 근간이 ‘객관적 진실’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이는 중립적 입장에서 나온 정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말할 것이다. ‘객관적 진실, 팩트’의 관점에서 보면 이상호 기자의 대답은 한쪽으로 치우친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정부와 기득권 편에 쏠려 있는 진실의 저울 위 그 반대편에 영화 ‘다이빙벨’은 추 하나를 올려놨을 뿐, 저울이 평형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추들이 필요할 것인지 생각해 본다.

 이 날 관객과의 대화에 함께 자리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 세 분은 영화 ‘다이빙벨’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연신 감사인사를 전했다. 얼마나 기다려 온 ‘진실’이던가. 77분의 영화 한 편이 유가족들의 얼어있는 마음을 잠시나마 녹여준 듯 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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