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영국에서 일어난 이야기. 선원 4명이 구명보트에 올라 남대서양을 표류했다. 19일째. 먹을 게 바닥났다. 선장을 포함한 세 남자가 남자 아이를 희생시켜 연명했다. 그리고 24일째 되는 날, 3명이 구조됐다. 영국에 도착한 뒤 생존자들은 살인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이들은 항변했다. “한 사람을 죽여 세 사람을 살렸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네 사람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고.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에 소개된 사례 중 하나다.

 “한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 책에서 펼친 저자의 `정의론’이다. 정의는 결국 분배의 문제와 직결돼 있음을 제기한다.

 근대 이후, 분배에 대한 주요 기준 중 하나로 작동한 게 `공리주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익히 알려진 바,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 극대화로 이해되는 논리다.

공리주의에서 행동의 기준은 고통과 쾌락이다.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게 도덕적·정치적 삶의 기준이라는 게다. 이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에도 적용되는데, 행복의 총합이 고통의 총합을 넘어서면 `공리(공공의 이익)’로 이해된다. 이 경우, `정의는 다수결’이라는 논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수능)이 1주일 연기됐다가 23일 치러졌다. 학벌이 공고한 우리 사회에서 수능은 청소년들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사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초·중·고등학교 12년의 모든 학습과정이 오로지 이 시험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사상초유, 이같이 국민적 중대사를 연기시킨 배경은 포항 지진, 그리고 이에 수반한 그 지역 수험생들에 대한 배려였다.

 필자도 올해 수능을 치르는 자녀를 둔 학부모다. 수능 연기와 이에 따른 고통이 연장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지난주 정부 결정이 나왔을 땐, 애먼 피해자처럼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어쩌면 공리주의식 분배 기준이 격동시켰는지 모르겠다. `590,000명(전국 수능생) 대 6,000명(포항지역 수능생)’이라는 구도가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이어진 물음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1884년 남대서양을 표류하던 배에서 벌어진 선상 살인도 공리적인가? 정의로운가?

 마이클 샌델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칸트 철학의 연장선에서다.

 “포항 때문에 대한민국 전체가 혼란에 빠지면 어떡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6000명의 학생을 버리고 갈 수는 없잖아요. 어찌보면 그들이 개인이 당한,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일종의 천재지변이라는 것은 그들이 당한 불행인데 그걸 우리가 외면하고…. 나머지 59만 명의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은 조금 불편함을 견디시면 되지만, 그 학생들은 만약에 자신들이 버려졌다고 생각한다면 그분들에게 그것은 평생 한이 되지 않겠어요?” 김부겸 행안부장관이 한 방송에 출연해 한 말이다.

 수능 연기 사유가 명확하다. “59만 명이 불편해도 6000명을 버릴수 없었다.”

 다시 묻게 된다. 정의란 무엇일까?

 다수결이 정의일 순 없다. “한 사람을 죽여 세 사람을 살렸다”는 선장에게 살인죄를 물을 수 있어야 정의라고 믿는다. 어느 순간 우리가 4명 중 1명에, 59만 명 중 6000명에 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해서 정의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꽂힌다.

 법의 존재 이유는 정의 실현이다. 법은 사회 또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규범이니, 해서 정의 실현은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논리다.

 포항 지진 여파 속 연기된 수능이 여진없이 차분하게 치러졌다. 1주일 전 연기 결정은 정의로웠고, 결과는 공평했다는 데 안도했다.

 공동체적 결정에 순응하고 고통을 감내한 수험생 가족으로서의 1주일, 우리 사회 정의지수 상승에 일조(?)했다는 `공리주의적’ 자존감으로 마무리한다.
채정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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