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3일, 한국노총과 정부는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시장구조개혁안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며칠 후 한국노총 회의실에선 한 간부가 이번 합의는 무효라며 분신 시도를 하고, 한국노총 내부에서 집행부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자아분열’이라는 표현까지 쓰기도 했다. 오는 9월23일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선포하기도 했다. 겨우 ‘극적으로’이뤄낸 ‘대타협’엔 모두가 기뻐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어떤 이들은 몸에 불을 지르려 하고, 자신의 일터를 멈추려고 하는 걸까?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가 일어났다. 사상 최악의 외환위기에 한국은 세계은행의 구제금융을 받았고, 그들의 요구안, 즉 ‘노동시장구조조정’을 세계은행이 요구한 수준 이상으로 받아들였다. 외환 위기의 여파로 수많은 기업이 망하고, 노동시장 구조조정의 결과로 멀쩡한 기업에서도 대규모의 정리해고를 실시했다. 기업이 망해서, 정리해고를 당해서 쫓겨난 사람들은 자영업으로, 노점상으로, 하청기업으로, 즉 빈곤의 나락으로 밀려났고, 지금도 회복은커녕 대를 이어 그곳을 맴돌고 있다.



다시 더 많은 사람을 빈곤의 나락으로

 당시 많은 사람들을 더 쉽게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던 강력한 수단이 바로 ‘정리해고’ ‘파견근로제’를 핵심으로 한 ‘노동시장 구조개혁법’이다. 기업은 기존에 일하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불안정 하게 만들고, 신규채용을 줄이고, 비정규직 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고용 형태를 남발했다. 덕분에 기업은 위기를 극복했지만,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나? 빈곤의 나락 주변부에서 가난의 대를 잇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흙수저’라고 부른다.

 한국 경제는 분명 위기다. 성장·성장을 외치던 조·중·동·매경·한경도 ‘저성장 국면’이라고 공공연히 밝힐 만큼,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그러나 위기의 책임과 짐을 떠맡아야 하는 사람은 어째서 항상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이어야 하나? ‘일반해고, 취업규칙 변경, 임금피크제’를 중심으로 한 2015년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은 그나마 안정적이었던 정규직의 조건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합법화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국 비정규직 비율은 OECD 평균의 2배 수준이고, 쉽게 짤리는 탓에 근속년수는 가장 짧다. 전국 8개 산업단지의 근로기준법 위반율이 90%를 웃돌고, 노동조합 조직률은 10%를 밑돌고 있다. 이게 한국 노동의 현실이다. 경직성이 아니라 과도한 유연성이 한국 노동의 문제다.



1% 안팎 노동자 공격하는 정부

 정부의 공격대상인 ‘현대차·기아차’로 대표되는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1% 안팎이다. 노동조합이 강한 덕에 고용안정성을 지켜왔던 ‘노조 있는 대기업’이 아닌 곳에선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등 많은 사람들이 이미 정부가 밀어붙이려고 하는 노동시장구조개혁안보다 더 불안한 노동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있는 법을 잘 지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기업이 지켜야할 법의 기준선을 낮추려고 한다. 1% 안팎의 노동자를 정부가 먼저 공격하는 방식으로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분노의 대상을 정규직 노동자로 만들고 있다.

 다시 더 많은 사람들을 빈곤의 나락으로 내치는 정책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정규직과 기성세대의 삶을 불안정하게 하는 방식은 비정규직·청년세대의 일자리정책 대안이 될 수 없다. 97년 ‘노동시장 구조개혁법’통과 이후, 많은 사람들의 고용안정성 악화되었지만 신규채용, 늘지 않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 수출 대기업들은 최고의 수익을 올렸지만 신규채용, 역시 늘지 않았다. 정부는 ‘청년’을 위한다며 노동시장구조개혁안을 ‘어떻게든’ 밀어붙인다고 한다. 1% 밖에 되지 않는 ‘노조 있는 대기업 정규직’의 이기심 때문에, 청년일자리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임금피크제로 생긴 지출의 공백을 청년세대의 고용창출에 쓸 수 있다고 한다. 글쎄, 적어도 역사적 선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설사 기성세대의 임금을 깎아서 생긴 일자리에 ‘4년짜리’ 무한 계약직으로, 어느 시점 부턴 임금이 대폭 깎이는 일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청년인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서단비 <전남대학교 용봉편집위원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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