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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꼬집기]왜 3·1운동이라 부르는가
김재옥
기사 게재일 : 2019-02-25 06:05:01
 지난 2월20일, 광주의 3·1운동을 기억하고 재평가하려는 ‘3·1혁명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 토론자로 나선 송인동 호신대 교수는 ‘3·1절,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세미나 제목은 ‘3·1혁명 100주년’이면서 내용들은 다 3·1운동으로 되어있으니 질문이 나올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역사 토론에서는 유독 역사 용어에 대한 논쟁이 많으니 특별한 일도 아니다.

 역사는 왜 용어에 집착할까?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대한민국 수립’이 다르고, ‘광주사태’와 ‘광주민중항쟁’이 다르다. 사실에 대한 여러 해석이 존재하고 그 해석을 정리하여 역사용어로 개념화한다. 역사에서 용어란 그 사건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주장하는 이들은 정부수립기념일이라 부르지만 대한민국 수립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이날을 ‘건국절’이라 부르자고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조금은 애매한 교과서적 용어도 사태와 민중항쟁, 민중혁명 등의 오랜 논쟁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운동’이라는 말은 무언가를 이루려는 활동을 뜻한다. 그래서 5·18에는 민주화라는 목적을 표현해 두었다. 그런데 3·1운동은 그나마도 없이 발발한 날짜로만 이름지었다. 역사적 의미를 담기에 부족하다. 1949년 3·1절을 국경일로 지정할때도 명칭을 오직 숫자로만 지었다. 3·1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한글날의 국경일과 49개에 달하는 국가기념일 중 숫자로만 이름 붙여진 날은 3·1절이 유일하다.

역사 용어, 그 사건의 모든 것

 언뜻 역사용어는 과거 사건을 분석-종합하여 도출해낸 결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 역사용어는 과거 사건을 통제하고 제약한다. 역사적 사건은 과거라는 시간의 틀 속에 갇혀 있지만 해석의 결과로 만들어진 역사용어가 살아숨쉬며 오히려 과거를 지배한다. 바른 역사용어는 바른 이해와 바른 인식을 낳고, 그 반대의 명제도 성립한다. 그래서 역사용어는 역사적 기억을 관리하는 장치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시도 또한 교과서에 사용되는 역사용어를 장악해 학생들의 역사적 기억을 지배하려는 시도였다.

 3·1운동을 혁명이라 규정하는 이유는 바로 이를 일구어낸 이들이 민중이기 때문이다. 국내외 220만 명이 참가하고 7000여 명이 사망하면서도 1919년 3월부터 늦게는 이듬해까지 항쟁을 이어가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는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 황제국가인 대한‘제’국에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날 독립을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면서 근대 국민주권국가를 건설하는 민족-민주혁명을 일궈내 대한민국이 수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제하 독립운동가들은 3·1혁명이라 불렀다. 임시정부의 민주공화제는 이 3·1혁명으로 맺은 결실이었다. 김구는 물론 이승만도 ‘3·1 혁명’이라 불렀고, 1941년 발표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1941)과 대한민국임시헌장(1944)에도 3·1혁명이라 명시했다.

 해방 후 헌법 초안에도 ‘3·1혁명’으로 명명되었다가 김구 등이 함께하지 않았던 제헌의회에서 심의하는 과정에 뚜렷한 논거도 없이 3·1혁명을 기미3·1운동으로 바꾸어버렸고 지금까지 3·1운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는 3·1운동을 폭동, 소요라 불렀다. 그 이전 의병들을 남한폭도라 부르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물론 일본의 그 용어는 지금도 그들의 역사의식을 결정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위안부 문제와 독도영유권을 대하는 그들의 시각은 그들이 사용하는 역사용어를 넘지 못함을 보여준다.

100년의 과제, 이름 회복하기

 지금 학생들은 초등학교 사회와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통해 해당 내용을 ‘3·1운동’이라는 용어로 배운다. 3·1운동에서 배워야할 것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의 독립 의지와 함께 제왕의 명령에 따라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신민으로서의 삶을 박차고 주인된 민중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의미로서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역사용어는 그 역사를 배우는 이들의 기억을 구속한다. 오랜시간 사용해왔던 용어의 익숙함을 두려워해야 한다. 익숙함이란 기억을 위한 도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또한 3·1운동에 대한 재평가를 위해 보다 과거 이해 노력이 필요하다. 100주년이라는 시간적 의미를 통해 분발의 계기로 삼기 적당하다. 마지막으로 3·1운동 100주년은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행사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100년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후대 세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매년 3·1절이 지나고서 개학하는 광주의 학교에서는 실제 광주지역 만세시위가 시작된 3월10일까지를 3·1운동 기념주간으로 지정해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3·1운동의 적당한 이름을 찾아주려는 노력이 지금 절실하다.
김재옥<전교조 광주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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