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여성 아닌, 다른 선택들
세계 최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도 2013년에 회원성별 표시 시스템을 ‘여성’과 ‘남성’ 외에도 다른 선택이 가능하도록 변경했다. 기존 ‘여성’(Female)과 ‘남성’(Male) 등 2개 선택만 존재하던 것에서 다른 설명을 기입해 넣을 수 있는 ‘맞춤’(Custom) 선택지를 추가함으로써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 성전환자(트랜스젠더) 등 ‘성 소수자’들이 스스로 성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서비스는 한국어 사용자에게는 아직 적용되지 않는다. 당시 이 시스템 변경 작업을 했다던 페이스북 엔지니어 브리엘 해리슨이 인터뷰 기사에서 “이번 조치에 대해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이 많겠지만, 의미가 있는 소수에게는 온 세상과 같은 것”이라 했던 말은 우리에게 던지는 바가 크다. 그도 성소수자였다고 한다.
지구의 다른 세상은 이렇게 ‘두 개에서 여러 개로’ 변해가고 있는데 우리 주변의 세상은 아직도 늘 ‘두 개’인 것들이 많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오랫동안 남과 북으로 나눠져 적대시하던 환경에 놓여있어서 그럴까? 두 개로만 나뉜 사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앗아간 것일까? 성평등 어젠다를 외치고 있지만 어찌된 게 오히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특별히 더 나아진다기보다는 그저 제자리걸음만 하는 듯하고, 서로 소모적인 논쟁만 지속될 뿐더러 어느 순간부터는 ‘양성평등’과 관련된 얘기를 하면 할수록 늪에 빠진 것처럼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소수의 온 세상’ 무시한 폭력
지난 9월에 열렸던 세계인권도시포럼에 초청된 프랑스 그르노블 부시장은 행사 일환이었던 지역 여성단체 활동가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성소수자였던 자신에게 부시장직을 제안한 사람은 현재의 그르노블 시장이었다고 했다. 성소수자가 무려 선출직 기관장이라니? 두 개의 틀이 정상이고 전부인 양 박혀 살고 있는 우리들은 신선한 충격이자 부러움이자 먼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두 개로 나뉜 세상은 누군가는 상대보다 위에 존재하고(하려하고) 또 누군가는 그보다는 아래에 있게 되는 위치성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위치에 놓여 지면 당연 위치에너지가 작동되는데 그 힘의 흐름은 위에서 아래로 큰 곳에서 작은 곳으로 이동한다. 이 힘은 ‘소수의 온 세상’을 무시하고 혐오하고 폭력을 유발하게 된다. 여러 개의 세상을 ‘단 두 개’로만 보게 만든 것은 우리 사회 문화가 구성해 놓은 것이었으며 이제 원래대로 존재했던 여러 개의 세상을 보려고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백희정<광주여성민우회 정책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