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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문화의 물길 열다
[양림동 문화를 찾아서]<1> 양림동 역사
땅값 싸 1900년대 초 선교사들 정착한 `서양촌’
강련경 vovo@gjdream.com
: 2007-11-13 07:00:00
호남신학대에서 바라본 양림동 일대. 1904년 미국 선교사들이 정착해, 광주 근대화를 선도한 곳이다.

 양림동이 개화기 역사문화마을이 된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종합계획에 반영된 내용이다.  2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며 2013년에 완공된다. 양림동은 광주 근대문화의 물길을 열었던 곳이고, 그렇게 시작된 문화의 숨결은 이제 광주의 역사가 됐다. 1904년 미국 선교사들이 복음을 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개화기 문화를 꽃 피웠던 곳, 양림동의 숨결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낡고 오래된 가옥들, 지나온 시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존재가 희미해져가는 양림동.

하지만 이곳은 100여 년 전 광주 최초로 근대문물을 받아들인 유입구이자, 생명존중사상을 싹틔웠던 광주정신의 발현지였다. 한마디로 광주의 근대화를 선도한 곳이다.

양림동은 사직산과 양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양림이라는 이름은 산 능선이 밖으로 뻗어나간다는 ‘버드름’(뻗다+으름)이라는 지형을 빗댄 말이다. 버드름과 발음이 비슷한 한자말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양림(楊林)’이 된 것이다.

양림동은 광주 선교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며 근대문물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1904년 미국 남장로교회는 기독교 복음을 목적으로 양림동 일대에 ‘광주 선교부’를 설립했다.

현재 호남신학대 일대인 선교사 거주지역에 유진벨(Eugene Bell, 배유진), 오웬(Owen, 오원) 등 선교사들이 상주하기 시작하며 시민들의 생활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호신대 일대는 해발 108m로 광주읍성 바깥쪽인데다 어린아이가 죽으면 묻는 풍장터가 있어 땅값이 저렴해 선교사들이 땅을 구입하는 데 용이했다. 이 곳에 터를 잡은 선교사들에 의해 도로, 집 등이 건축되며 양림동은 개발되기 시작했다. 목사들은 교회, 교사들을 학교를, 의사들은 병원을 설립하며 근대 위생교육과 성교육 가정교육이 이루어졌다. 지금도 양림교회, 호남신학대학교, 수피아여중고, 기독병원 등이 그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선교사들이 들어와 살면서 ‘광주의 예루살렘’ ‘서양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양림동은 기독교촌으로서의 특색을 현재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교회 주변에 몰려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수피아나 숭일 같은 학교들을 만들었고 이는 수피아여중고, 기독간호대학, 호남신학대학교로 발전됐다.

특히 선교사가 설립한 기관에 취직한 이들은 새로운 문화를 조성했다. 김필례씨가 세운 YMCA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선교사 거주지역은 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당시 양림동 5거리는 새로운 문화를 조성하며 50~60년까지 광주의 중요 행사를 치러냈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 당시 양림동과 방림동 일대는 서양인들이, 금동과 남동에는 광주 토박이들이, 일본이 조성한 신층주택지인 장동과 동명동에는 일본인들이, 계림동에는 중국인들이 밀집해 살기 시작했다.

선교사들에 의해 유입된 근대문물은 현재 양림동 곳곳의 문화유물들로 남아있다. 때문에 100여 년 전 기독교의 광주 유입 통로였던 역사에서 보듯 이 곳에는 선교 관련 유물들이 많다.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로 알려진 ‘우일선 선교사 사택’과 전남 최초의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하다 순교한 오웬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양옥 건물 ‘오웬 기념관’, 광주선교부가 첫 예배를 드린 배 선교사의 임시사택 자리를 기념해 세운 ‘선교기념비’ 등이다.

수년간 양림동을 연구하며 마을만들기 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송인동 호남신학대 교수는 “양림동은 한마디로 광주의 근대화를 선도한 곳이었고 이는 다양한 문화의 형태로 발전 돼오고 있다”며 “양림동이 광주 사회 전체에 끼친 가치를 알리며 그 당시의 공동체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강련경 기자 vovo@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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