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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흐르던 자리] <7>송정극장
“군청-극장-경찰서, 말 그대로 `명동거리’였지”
일제 때부터 운영…1960년대 재건축 `최신식 건물’
이광재 jajuy@gjdream.com
: 2008-08-22 07:00:00
광산구청과 70미터 거리에 있는 옛 송정극장 건물. 극장 문을 닫은 지 오래인데다 3년 전 지붕까지 내려앉아 내부 모습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다. 극장 근처 건물에서 내려다본 모습.

광산구 청사 뒤편으로 겨우 70미터 떨어진 곳에 송정극장은 있었다.

지금은 간판도 없고 유리창 대부분은 깨진 채, 곧 쓰러질 듯한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라 그 곳에서 옛 극장의 모습을 찾아내긴 쉽지 않다. 하지만 엄연히 광주의 극장역사에서 해방 전부터 시작된 무등극장과 광주극장에 이어 세번째로 ‘극장’이라 불렸던 곳이다.

주민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극장 건물 내 유일한 세입자인 옷수선점 김덕순(45) 씨는 “40~50대의 경우 지나가면서 이 곳이 옛날 극장이었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고 했다. 극장 맞은편 식당 주인 강영복(70) 씨도 “오일장으로 가는 통로여서 극장이 잘 될 때는 일대가 엄청 북적였다”며 “더욱이 좌우로 군청(현 구청자리)과 경찰서를 끼고 있어 이 곳은 말 그대로 ‘명동거리’였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극장 앞을 흐르는 도로명이 실제 ‘명동로’다.

송정극장의 산 증인은 인근 주차장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마인배(89) 옹이다.

극장 소유권은 이미 20년 전에 친인척에게 넘겼지만, 지금껏 주위로부터 ‘마 사장님’으로 불린다. 그는 “하도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다”면서도 역사를 털어놨다.

그에 따르면 송정극장은 해방 전 일본인의 2층 목조건물에서 시작됐다. 지금도 건물 등기부를 떼어보면 ‘1943년 6월1일’자로 접수된 등본이 하나 더 나오는데, 소유자는 ‘청산태순’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돼있다. 광산구청 관계자는 “건물 공부상엔 없는데, 아마 송정극장의 첫 주인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후 송정극장은 광주극장에 넘어갔다가, 1948년 마 사장이 당시 돈 180만원을 주고 사들인다. 일본에서 상고를 나왔던 마 사장은 귀국 후 한국전력의 전신인 조선전업과 전남도청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 이같은 경력 덕에 미군정하 전력부족 상황에서도 군청·경찰서와 함께 안전한 전기공급이 가능했단다.

주요 관객들은 광산군민들이었지만, 극장은 활황이었다. 1964년엔 기존 건물을 허물고 770㎡ 부지에 3층 520석 규모의 극장을 새로 지었는데, 그게 지금의 건물이다. 마 사장은 “당시 극장 주변은 단층짜리 ‘하꼬방’들 뿐이었으니, 그때 송정극장은 일대 최신식이자 최고건물이었다”고 회고했다.

70년대엔 다른 극장들처럼 가극이나 창극 공연도 했단다. 


 ▲ 영사기도 없이 폐허처럼 방치된 극장 영사실엔 95년 동시상영했던 만화영화 할인권이 아직 남아있다.

송정극장에서 영화상영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띄엄띄엄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 영사실 자리에 뒹구는 할인권에 이미 95년 3월 상영했던 작품이 ‘간첩 잡는 똘이장군’과 ‘공룡 백만년 똘이’ 동시상영이었던 걸 보면, 저간의 사정이 짐작된다.

과거 송정리에는 송정극장과 쌍벽을 이뤘던 동양극장도 있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광산구의회 건물에서 남쪽으로 한블럭 더가면 첫번째 사거리 모퉁이 일대였다.

마 사장은 “광주의 갑부 김종수 씨가 송정극장의 성공을 보고 군청 근처에 250석 규모의 동양극장을 지은 게 1961년이었다”며 “그러자 내가 다시 3년 뒤에 송정극장을 더 크게 신축했다”고 했다.

이렇게 두 극장은 경쟁했지만, TV라는 ‘공동의 적’이 등장하자 손을 잡기도 했다. 영화 선정부터 함께 하고, 각각 상영한 뒤 수익금을 똑같이 나누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동맹’은 2년을 넘기지 못했다. 이 방식으로 극복될 위기가 아니었던 탓이다.

결국 마 사장은 3년 쯤 전, 영사기 두 대를 골동품 수집상에게 팔았다. 극장 신축 당시 일본서 들여온 최신형 ‘로얄영사기’였는데, 당시 송정리 본정통 집값(100만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을 들였다. 하지만 40년 지난 골동품 값은 20만원이었다.

우연인지, 그 뒤 폭설로 극장 지붕이 주저앉았다. 지금도 극장 옆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폭격을 맞은 듯 극장 내부 관람석 계단이 훤히 드러난다.

마 사장은 “극장은 내 생애 하이라이트였는데, 이젠 철거할래도 철거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씁쓸해했다.

이광재 기자 jajuy@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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