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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흐르던 자리] <8>광주시민회관
똘이장군·우뢰매 보러 줄서던 곳
광주시가 운영…공무원이 직접 영사기 돌려
이광재 jajuy@gjdream.com
: 2008-08-29 07:00:00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영화를 상영했던 시민회관.

“거기서도 영화를 했었나?”

질문이 나올 법하다. 워낙 오래된 일이기 때문이다. 광주공원 시민회관.

간간이 공연이나 직능단체의 행사장으로 쓰일 뿐, 이 곳에서 ‘극장’의 흔적을 찾아보긴 힘든 탓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그곳에서도 한 때 영화가 흘렀다.

지금의 30대만 해도 한번쯤 방학 때 시민회관 입구에서 줄을 서서 ‘로보트 태권브이’나 ‘똘이장군’ 등의 만화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을 터.

공간은 여전하지만 영사기가 멈춘 지는 10년도 넘었다. 영화관으로서 한 때의 ‘흥행’, 그러나 지금은 건물만 남아 있다는 공식은 광주시내 다른 극장 전용건물들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다른 극장들이 개인 자본으로 세워진 데 비해 시민회관의 경우 광주시가 지었다는 점 정도다.

광주공원에 시민회관이 들어선 것은 1970년. 광주시내 주요 극장들이 50년과 60년대에 들어서면서 극장 신축이 뜸하던 때였다. 



 ▲ 공연장 뒤편 영사실에 남아 있는 두 대의 영사기.

연면적 3800평방미터에 4층 규모인데, 664석의 공연장 외에 예식장과 사무실 등의 공간이 배치돼 있다.

공연장 입구엔 지금도 과거 영화표를 팔던 매표소 공간이 남아 있지만, 흰 페인트로 덧칠해져 있어 유심히 들여다봐야 ‘매표소’라는 글씨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다.

공연장에서 영화 상영이 끊긴 지는 오래됐고 요즘엔 광복절을 비롯한 국가기념일 행사, 단체교육, 어린이들 발표회 행사 등이 대부분이다.

국가기념행사가 많은 것은 인근 4·19기념탑이나 현충탑이 있기 때문이란다. 시내 옛 극장들처럼 이곳에도 예식장 두 개 홀이 있었고, 한 때 결혼식을 1년에 300건씩 치르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 옛날얘기다.

이곳에서 영화가 상영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니, 언제까지 였을까.

안타깝게도 공원관리사무소에는 관련 기록이 없다. 행사 관련 서류는 보존 기한이 짧은데다, 워낙 오래전 얘기라 남은 기록이 없다는 것.

하지만 사람이 있으면 기억도 남아 있는 법. 1987년부터 97년 즈음까지 광주공원관리사무소에서 근무했던 김형균(49·공무원) 씨가 그 기억을 갖고 있었다.

“주로 여름이나 겨울방학 때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영화 같은 것을 상영했어요. 어른영화 상영하는 곳은 다른 극장들이 많았으니까요. 아마 93~94년 즈음까지 상영했던 것 같은데 마지막 상영작이 심형래 감독의 ‘영구와 땡칠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기억은 몸의 기억이었다.

김 씨에 따르면, 당시 공연장 영사실에는 두 대의 영사기가 있었는데 별도의 영사기사가 있는 게 아니라 공무원들이 직접 기계를 돌렸다고 한다. 김 씨 역시 영사기 조작법을 선임자에게, 또는 당시 광주시내 영사기사협회를 통해 배웠다고 한다.

지금도 공연장 뒤편 영사실엔 두 대의 영사기가 남아 있다. 기계 뒷면에 새겨진 글자를 보면,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제작된 ‘STRONG ELECTRIC’사의 ’SUPER 80’이다. ‘92년 재물조사’표가 붙어 있는 것으로 미뤄, 적어도 그때부터 이 기계가 있었던 셈이다.

김 씨의 기억에도 이 기계는 90년대 초반 교체된 건데, 당시 시민회관에 발생한 화재가 계기였다고 한다. 이전까지 용접봉을 태워 빛을 내는 기계였는데, 화재 진압으로 기계가 물에 젖은 데다 화재위험을 줄인다며 크세논램프를 쓰는 신형기계로 바꿨다는 것.

상영작들로는 주로 어린이 만화 ‘똘이장군 시리즈’ ‘로보트 태권브이’ ‘우뢰매’ 등이었는데, 방학 때 외에 설이나 추석 명절 연휴 때도 상영했다.

어른을 위한 작품도 없지 않았다.

김 씨는 “아시아영화제를 한다고 이집트 등에서 온 작품을 일주일간 하루에 두 편씩 상영한 적 있다”고 했다. 



 ▲ 영화표를 팔았던 매표소.

영사기가 두 대인 것은 필름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 작품은 보통 필름 5~6개로 구성돼 있었는데, 하나를 걸어 상영하는 동안 다음 필름을 걸어 대기시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가정마다 TV가 등장하고 이어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는 비디오가 보급되면서 굳이 이곳에서 영화를 볼 이유도, 상영할 이유도 줄어들었다. 시설 좋은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등장은 그 이후다.

여기에 각 자치구마다 구립문예회관 등의 영사시설을 갖춘 공간들이 생겨나면서 시민회관은 역할 자체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결국 하루에 5번 영사기를 돌려도 100명이나 들까말까 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정확히 언제라는 기록도 없이 영사기는 멈췄다.

시민회관 내 공원관리사무소로 가는 1층 입구 초석엔 ‘50만 시민의 문화의 전당, 1970년 8월 5일’이라고 새겨져 있다.

회관이 들어선 지 38년이 지난 지금 ‘142만 시민의 문화전당’은 금남로 옛 도청자리에 세워지고 있다.

이광재 기자 jajuy@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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