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유족회와 부상자회에 의해 버스노동자 고 진기승 씨의 하관식을 진행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22일 오후 망월동 구묘역에서 집회를 갖고 있다.
-노동자·유가족들 “진기승 노동열사는 왜 안되나?”
-오월 단체들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경우는 없다”
-노동탄압 항거·자결 고 진기승씨 장례식도 아픔

 상처들이다. 상처들의 기원은 모두 달랐다. 현재의 상처와 과거로부터 잉태돼 다른 모습으로 변한 상처. 30년 전의 국가폭력과 그 이후로도 면면히 이어져 온 국가와 자본이 만들어낸 생채기가 망월 묘지에 그늘을 드리웠다.

 노동탄압에 항거해 자결한 고 진기승 씨의 하관식을 둘러싸고 22일 망월동 민주묘지에서 벌어진 충돌<본보 23일자 보도>로 노동계와 유족들은 참담함과 자괴감에 빠졌고, 5월 유족들은 병상에 드러누웠다.

 22일 고 진기승 씨의 장례가 숨을 거둔지 51일 만에 ‘전국민주노동자장’으로 전북 전주에서 치러진 후 노동자들과 운구차량은 하관식을 하기 위해 망월 묘역에 도착했다. 진 씨의 유족들과 동료 노동자들이 고인이 망월 묘역에 안장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지난달 23일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가족들은 지쳤지만 우리는 아빠를 그냥 보내드릴 수가 없어요. 사장이 잘못을 빌고 아빠의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 비록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셨지만, 아빠의 동료분들이 그 뜻을 이루신다면 아빠도 하늘에서 분명히 기뻐하실 겁니다”라고 고인의 아들은 울먹였었다. 살아생전에 몹시 힘들어했던 진기승 씨. 유가족들은 고인의 명예를 되찾아 주고 싶어했고, 그래서 망월 묘역에 고인이 안장되길 원했다.

 ‘광주광역시 장사 등에 관한 조례’에 의하면 연고지가 광주가 아닌 경우 광주시장이 인정하는 경우에 안장될 수 있다. 하지만 망월 민주묘지의 경우 5·18 사적지라는 특수성 때문에 오월 단체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광주시의 입장이었다.

 진기승 씨의 장례위원회는 앞서 광주시와 5·18유족회에 이러한 뜻을 전했다. 하지만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장례일정이 촉박했던 21일, 장례위원회는 전북지사, 전주시장, 장례위원인 문규현 신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5·18유족회에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안 된다”는 입장이 바뀌진 않았다. 장례위는 하관 일인 22일 “5·18유족회를 직접 찾아 뵙고 설득하면 유족회 측에서도 받아들일 것”이라는 희망으로 망월 묘역에 도착했다.

 장례위와 진기승 씨의 유족, 노동자들은 망월 묘역에서 5·18유족회와 5·18부상자회 대표 등을 만나 계속 설득했지만 유족회 등은 “우리들도 죽으면 이곳에 들어오지 못한다” “30년 동안 우리는 이곳을 지키기 위해 정말 많이 싸웠다. 밀어붙이기 위해 이렇게 온 것이냐” “여기는 아무나 묻히는 곳이 아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논의 끝에 안 된다는 뜻을 전했는데, 이렇게 온 것이 무슨 의도냐”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도착한 노동자들과 장례행렬은 망월 묘역에 대기하며 결론이 나기를 기다렸다.

 유족회는 안된다며 천막을 쳤고. 감정은 격앙됐다.

 노동자들은 전주로 돌아가자며 정리집회를 시작했고, “진기승 열사는 전주지역의 버스사업주의 기득권, 토호세력의 기득권에 맞서 자신을 희생했다. 그리고 열사는 간절히 이곳에 안장되기를 원했다. 우리는 그 유언을 받들고 싶었다”며 사회자는 울면서 “전주로 돌아가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동료의 죽음을 지척에서 지켜봤고, 그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지금까지 싸워온 동료 노동자들의 감정의 온도는 달랐다.

 “진기승 열사의 시신이 이렇게 망월 묘역까지 왔는데 5월 단체들이 이럴 수는 없다” “그냥 돌아갈 수 없다”며 망월 묘역에 안장을 시작했다.

 오월 유족들이 반발하자, 인간 스크럼을 짜고 막았다. 이 과정에서 다치는 유족들도 생겼다.

 경찰 병력 약 100여 명이 망월 묘역에 들어오기도 했다.

 22일 오후 9시께 아수라장 같았던 망월 묘역에 진기승 씨가 안장됐다. 그리고 현재 5·18유족회 등 10명이 그날 상해를 이유로 보훈 병원에 입원해 있다. 공공운수노조 간부들과 장례위원들은 5·18유족들을 만나기 위해 몇 차례 병원을 찾았지만 유족들은 얼굴 보기를 거부하고 있다.

 5·18부상자회 김후식 회장은 “오월 단체들의 의견도 아직 조율이 안된 상태였고, 논의를 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시신을 싣고 내려와 우리도 당황했다. 망월 구묘역이 오월 단체들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월 단체 모두가 같은 입장도 아닐 것이고 진기승 열사의 안장에 반대하는 입장도 조율된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충분한 협의도 이뤄지지 않았고 결정된 것도 없는데 그렇게 밀고 내려온 것은 유감이다”고 말했다.

 또 “전두환 정권 때에도 당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면서 22일 망월동에서의 충돌에 대해 오월 유족들이 받은 충격과 분노가 크다고 전했다. 고 진기승 씨의 삼우제가 있었던 24일, 삼우제를 지낸 노동자들이 5·18유족들이 입원해 있는 보훈병원을 찾아갔지만 유족들은 만나기를 거부했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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