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가 상업영화 `카트’ 안에 있다. 금기시됐던 `노동’이 상업영화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노동’이 만화, 드라마, 영화의 소재가 되고 있다.
마트 노동자들의 투쟁 담은 영화 ‘카트’
최규석의 웹툰 ‘송곳’, 드라마 ‘미생’ 등
비정규직·노동 현실 고스란히 담아

 프랑스계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이수인 과장’이 의아한 듯 묻는다.

 “프랑스 사회는 노조에 우호적인 것 같은데…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노동상담소 구고신 소장이 대답한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굳이 안 지켜도 될 법을 지켜가며 손해를 보겠소? 사람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는 거요. 노동운동 10년 해도 사장 되면 노조 깰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게 인간이란 말이요.”

 최규석 작가가 현재 네이버 웹툰에 연재하고 있는 ‘송곳’의 한 장면이다.

 

노동 권리 박탈당한 현재적 삶의 결과

 

 “저 생활비 벌러 나와요. 반찬값 아니고.” “계약직이 암만 파리 목숨이라도 이건 아니지.” “우리가 왜 하루 아침에 용역으로 가노.” “회사가 언제 뭐 말로 해서 들어준 적 있어요?”

 오는 1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카트’에 나오는 대사들이다.

 ‘노동’이 만화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얼굴을 내민다. 예전, 천막 치고 몰래 모여서 봤던 ‘파업전야’와는 상황이 다르다. 인터넷에서, 케이블 티브이에서, 상업영화 상영관에서 만나는 ‘노동’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 노동자의 권리, 88만 원 세대, 직업병 문제 등 멀게만 느껴졌던, 하지만 막상 들여다 보면 당면한 ‘나의 문제’인 노동이 대중문화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노동’이 대중문화 속에서 살아있는 ‘인물’들을 만나 구체적이고 익숙한 ‘상황’을 헤쳐가는 것을 보면서 공감의 폭도 크다.

 주로 독립영화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노동문제가 상업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영화 ‘카트’가 처음이다. 지난 2007년 이랜드, 홈에버 노동자들의 투쟁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실제 주인공들이 있는 것이다.

 현재 한 케이블 방송에서 드라마로 방영돼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미생’(원작은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도 사회 초년생 계약직 청년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우리가 처해 있는 불안한 노동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때문에 “저건 내 이야기다”라며 `미생 폐인’들도 생겨난다.

 대중문화에 노동 문제들이 다뤄지고 있는 것은 왜 일까?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오랫동안 해왔던 한 인사는 “1980년대 노동과 사회를 고민하고 경험했던 세대들이 현재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시스템의 중심에 들어오고 있고, 여러 문제 의식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문화 생산자들의 실력이 성장한 것이 한 편에 있고, 문화를 수용하는 `우리’의 삶 역시 노동의 권리가 박탈당한 채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상황과 맞아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고 해석했다.

 

“일반 대중 `자각’으로 해석 일러”



 광주비정규직센터 정찬호 팀장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나 `카트’ 처럼 노동자들 입장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다루는 대중문화들이 많아 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노동자들이 그와 같은 대중 문화 콘텐츠를 선택해 볼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고, 이를 일반 대중들의 노동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해석하기는 좀 이른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대중문화 속 `노동’은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다.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는, 그래도 되는 `여기’의 모습을 담기 때문이다.

 문화 생산자들의 고민과 의식에 기반해 `우리’가 서 있는 `여기’ 현실의 민낯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져도 아무 것도 변할 것 같지 않다고 느끼고 있을 때 `송곳’의 `구고신’ 소장은 등짝을 후려치며 말한다.

 “1800년대 유럽에서 노동자 두 명이 술집에 모이는 것도 불법이던 시절. 7살짜리를 하루 14시간 씩 일을 시켜도 그게 계약의 자유이던 시절. 그런 시절부터 피흘려가며 만든 법이야. 노동법이. 누가? 당신같은 사람들. 시키면 시키는대로 못하고 주면 주는대로 못받는 인간들.”

 “싸움은 경계를 확인하는 거요. 어떤 놈은 한 대 치면 열 대로 갚지만 어떤 놈은 놀라서 뒤로 빼. 찔러봐야 상대가 어떤 놈인지 알 거 아뇨. 회사도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몰랐잖아. 내가 뭘하면 쟤들이 쪼는지. 내가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싸우면서 확인하는 거요. 싸우지 않으면 경계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걸 넘을 수도 없어요.”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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