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안의 진짜 학교, 선운중 `삶을 위한 학교’가 첫 선을 보인 지난 24일 학생들과 이호동 작가가 예술작업장 `꼬물’에서 버려진 물건들로 의자를 만드는 과정을 손님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모습.
-인문학공간 `2037’·예술가 상주 목공소 `꼬물’ 개소
-“지역사회 함께 삶 배우고, 채워가”

 지난 24일 광주 광산구 선운중학교(선암동) 안에 ‘학교’가 문을 열었다. “학교 안에 학교라니?” 부풀어오르는 호기심을 안고 학교 운동장, 현관, 복도를 지나 학교 안으로 쭉 들어가니 ‘진짜’ 새로운 학교가 있다.

 “학교가 살아있네 살아있어.” 비슷한 호기심으로 학교를 찾은 이들이 잇따라 감탄사를 쏟아낸다.

 “선운중의 야심작, ‘삶을 위한 학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삶을 위한 학교’는 학교 안의 새로운 학교, 아니 ‘진짜’ 학교다. 국영수, 따분한 교과서엔 없는 진짜 ‘삶’을 청소년들이 직접 익히고 경험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출발은 “지금의 학교가 청소년들이 자기 꿈과 자기 미래를 찾고 만들어 가는 공간”인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교육을 혁신한다, 바꾼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용적’ 혁신뿐 아니라 환경, 즉 공간에 대한 혁신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선운중 김태은 교사가 말한 ‘삶을 위한 학교’의 추진 배경이다.

 

‘진짜 삶을 배우는 학교’를 만들다 

 김 교사가 학생·동료 교사들과 함께 ‘삶을 위한 학교’를 만들기까지 가장 많은 영감을 준 것은 스웨덴의 ‘실험 종합학교’ 푸투름(Futurum·미래를 뜻함)이다.

 푸투름의 발전적 계획 중에는 현대적 환경, 학습 선택권 부여, 무선랜·랩탑 등을 갖추는 ‘새로운 학습환경’을 만드는 방안이 포함돼 있던 것.

 “2010년 푸투름을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이 교실이 무엇을 공부하는지 말하게 한다였어요. 학교라는 건축물 자체가 ‘학교’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 푸투름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인대요. ‘나는 여기가 참 좋아요.’ 이런 경우는 드물거든요. 대부분 교사나 학생들이 ‘학교가 참 좋다’고 생각하진 않잖아요.”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일은 “내가 원하는 학교”의 모습을 디자인하고, `학교로 가지고 오고 싶은 공간’을 찾는 것부터 시작됐다. 만화방·영화관·토론방·침대가 있는 독서실 등 학생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 이를 학교 안에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그림도 그리고, 레고 블록을 쌓아 모형을 만들고, PT 발표도 했다.

 “이 과정에서 느낀 건 아이들이 즐겁게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었어요. `학교’라는 공간이 즐거워야 아이들도, 교사도, 학부모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것도요.”

 하여 `삶을 위한 학교’는 칠판·교탁·책상·의자만 떡하니 놓여있는 보통 교실의 모습을 완전히 뜯어 고쳐 만들어졌다.

 학생들의 인문학적 사유를 위한 공간인 `2037’, 예술작업장 `꼬물’이 그 결과물이다. 선운중의 주소인 선운로 20번길37번지에서 이름을 딴 `2037’은 학생들이 “나를 성찰하고 주변과의 관계를 살피고, 사회를 바로 보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공간”이다.

 갤러리를 연상케하는 아늑한 조명 아래 목조 형식으로 꾸며진 벽면을 따라 예술 작품이 걸려 있고, 한 가운덴 차 한 잔 생각나게 하는 의자와 테이블이 마련돼 있다. 한 켠에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오디오, 찻 잔과 부엌가구 등이 놓여 있다.

 개소식이 열린 날 `2037’ 입구에는 “이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을 묻는 코너가 마련돼 있었다. 생일파티, 음악회, 시낭송회 벌써부터 다양한 의견이 적혀 있었다.

 “친구들과 동아리를 만들어서 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어요.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주말에도 계속 학교에 와서 있고 싶어요.” 학생들은 벌써 학교를 `참 좋은 곳’으로 여기고 있었다. 목공소를 그대로 교실에 옮겨 놓은 `꼬물’은 망치·못·드릴·톱 등 뭔가를 만들 수 있는 도구와 재료가 가득하다. 이곳에선 학생들이 직접 버려진 가구나 목재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삶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것은 물론 사물을 새롭게 보고, 작품 활동을 통해 개성을 마음 껏 표현할 수 있는 곳이 `꼬물’이다.

 `꼬물’과 `2037’ 현판 글씨체의 주인공 선운중 3학년 강소정 양은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특히, 주목되는 건 실제 예술가가 상주하면서 여러 활동을 학생들과 함께 한다는 점이다. 지역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호동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2037’과 `꼬물’ 곳곳에는 이 작가의 세심한 손길이 묻어나 있기도 하다. 한 달 전부터 학생들과 어울리며 `삶을 위한 학교’를 만드는 작업을 해 온 이 작가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들과 예술활동을 같이 할 수 있게 돼 즐겁고, 앞으로도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혁신적일 수 있지만, `삶을 위한 학교’가 정말 기대되는 점은 지역사회와 호흡하며 꾸준히 변화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다.

 선운중은 `삶을 위한 학교’의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기 위해 `학교안팎 추진단’을 운영하면서, 이 공간을 지역사회에 개방해 나갈 예정이다. 학교 인근 공방 주인을 강사로 바느질을 배울 수도 있고, 예술가들을 불러 공연을 진행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지역사회를 학교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선운중은 학생마을 동아리, 학교 안 마을잔치 등도 계획하고 있다.

 6개월의 준비 끝에 개소식을 가졌지만, 김 교사는 “`삶을 위한 학교’가 완공된 건 아니다”고 했다. “2037, 꼬물은 계속 아이들과 지역사회에 의해 채워지고, 발전해 가는 공간이에요. 그래서 언제 완공되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학교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는 때라구요. `삶을 위한 학교’를 통해 우리 학교 아이들이 `공무원’ 외에도 재미난 미래를 꿈꿨으면 좋겠습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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