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주우체국 고 이길연 집배노동자 진상조사 결과
유가족,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신청서 제출

▲ 지난 9월19일 서광주우체국 앞에서 열린 우정사업본부·고용노동부 규탄 기자회견 모습.
 “저희 아버지는 정당한 시스템과 간부들의 정당한 배려 속에 1주 만 더 요양하실 수 있었더라면 세상을 떠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지난 9월5일 “두렵다. 이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라네. 사람 취급 안 하네. 가족들 미안해”라는 짧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광주우체국 집배원 고 이길연(55) 씨의 아들 이동하 씨의 말이다. 고인은 8월 업무 중 교통사고 치료를 받던 중 사측의 출근 종용으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1주일의 요양 기간도 얻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이유는 결국 고질적인 인력부족에 닿아 있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서광주우체국 집배노동자 자살 사건 법률지원단(이하 법률지원단)은 세 달 동안 고 이길연 집배원의 노동조건 등을 조사, 최근 ‘고 이길연 집배노동자 자살사건 관련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법률지원단은 고인의 죽음의 원인으로 만성적인 인력부족으로 인한 ‘겸배’를 주요하게 꼽았다. 겸배란 팀원이 연가, 병가를 사용하면 그 업무는 팀원들이 분배하여 수행하는 것으로 동료끼리 서로 압박을 주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인력부족으로 인한 초장시간 노동과 휴식 부족에 시달리는 구조에서 겸배는 집배원들의 업무를 더욱 가중시킨다.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사망사고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게다가 공상 발생 시 보고누락 관행 등이 확인됐다.
 
▶하루 12시간…장시간 노동

 집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고 이길연 노동자 및 서광주 우체국 팀원들의 일반적인 업무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법률지원단의 조사에 따르면 고인과 서광주우체국 집배원들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회사에서 정한 출근시간은 평균 8시이나 실제로는 달랐다. 고인이 함께 일하던 팀원들은 오전 6시~7시경 출근해 분류작업, 배달 등을 마친 후 오후 5시경 우체국으로 복귀하고, 복귀 후 다음날 우편물 분류 작업 등 업무를 마친 후 오후 7시30분경 퇴근을 하게 된다고 답했고 설과 추석 등 우편물이 집중된 시기에는 6시 이전에 출근해 오후 11시에 퇴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길연 집배노동자의 ‘출퇴근 및 근로시간’에 따르면 2017년 설 배송기간인 1원25일경 오전 5시50분에 출근해 오후 11시50분에 퇴근하기도 했다. 사측에서 지원단으로 보내온 고인의 출퇴근 시간표에 따르면 대부분 6시 이전에 출근,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하는 것이며 그 중 절반 이상은 계속 걷거나 오토바이를 타거나 하는 등 이동을 해야 하는 시간이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질적으로도 중노동임을 짐작할 수 있다.

 2017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집배원 과로사 근절대책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 2017. 7. 24.)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869시간으로 나타났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연평균 근로시간인 1766시간 보다 무려 1103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
 
▶담당세대 2467…고강도 노동

 서광주 우체국 팀원들의 하루 평균 이동거리는 20km미만(6명), 20~40km(5명)으로 조사됐으며 담당하고 있는 세대수는 평균 2467세대였다. 이길연 집배노동자의 경우 사측이 제출한 자료에 기초하면 2017년 1월1일부터 8월10일 기준으로 일평균 17.8km를 운행하며 등기 116개, 택배, 9개, 일반통상 1046개를 담당했는데, 담당 세대수 및 건물의 경우 2월3일경에는 2250세대와 46개 건물을 담당하다가 8월3일경에는 2915세대와 156개의 건물을 담당하는 등 세대수와 건물의 수가 증가했다.

 집배사업장의 경우 집배업무를 46개 단위 업무로 나누고, 배달물량과 이동거리 등 집배 업무를 단위업무별 표준시간으로 각각 계산 후 합산하여 ‘부하량’을 산출했을 때 1이 넘으면 노동자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조정이 필요한 수치인데 서광주우체국의 부하량은 1.024, 소속팀의 부하량은 1.036, 이길연 집배원의 부하량은 1.019로 산출됐다. 이 수치가 사측에 의해서 계산되는 것임을 감안하면 집배노동자 입장에서는 훨씬 크게 업무부하가 되는 상황으로 모두 업무 조정이 필요한 부하량이다.
 
▶고질적 겸배…평균 한 달 7~10일

 서광주우체국 집배노동자들의 경우도 팀원이 연가·병가를 사용하면 그 업무는 팀원들이 분배하여 수행하는 겸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팀별로 담당 구역을 배정하며, 팀원은 10명 정도로 구성되는데, 집배원이 공무상 재해를 당하여 공무상 병가 또는 일반 병가를 사용한 경우 그 기간 동안 신규 인원을 충원해 대체하지 않고 동료 집배원들에게 업무를 분배하여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법률지원단이 실제 서광주우체국 집배노동자 11명에 대해 조사한 결과 한 달에 겸배 기간은 5~7일 5명, 7~10일 3명, 10일~15일 3명으로 최소한 한 달에 5일 이상, 평균적으로 7~10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팀원들이 병가나 연차를 사용하는 경우 남은 팀원들에게 업무 부담이 늘어나고 이는 병가나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고 이길연 노동자의 병가기간 중 해당 팀 소속 11명(통상구 10명, 소포구 1명) 중 통상 담당 팀원 9명이 분담해 업무를 처리했다. 이길연 노동자가 병가를 사용하기 전까지의 팀 평균 업무량은 등기 108개, 택배 11개, 일반통상 1004개, 운행거리 19.7km이었지만, 병가를 사용하기 시작한 8원11일부터 9월17일까지 팀평균 업무량이 모두 증가했다. 그리고 당시 2017년 추석 특별 배송 기간을 앞두고 있었으며, 이길연 노동자가 추석 특별 배송 기간에 치료를 위해 병가 또는 연차를 사용했다면 평상시에도 업무량이 과중한 팀원들이 업무를 더욱 분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고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병가 또는 연차를 사용하여 계속 치료를 할 경우 팀원들의 업무 부담이 과중해 질 것을 알았고, 이로 인한 팀원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병가나 연차도 사용할 수 없고 정상적인 근로도 할 수 없어 근로에 대한 부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에 이른 측면이 있다는 게 법률지원단의 결론이다.
 
▶추가 치료 불구, 출근 종용

 고인이 자살하기 직전에 찍힌 CCTV를 보면, 고인이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것이 확인되는 등 추가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특히 고인은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우편물을 배달하는데, 우편물이 실어진 무거운 오토바이에 오르고 내릴 때 왼쪽 발로 딛어야 한다. 걸어서 우편물을 배달해야 하므로 왼쪽 발을 많이 써야 하는 업무의 특성을 고려하면 고인이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근로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광주 우체국은 고인이 치료를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인에게 수차례 연락을 하며, 고인의 병가 장기화와 추석 배송 기간 도래로 팀원들의 업무가 과중 될 상황을 우려하여 출근하라고 종용했다.
 
▶산재 미보고 및 천일 무사고 운동

 공상 발생 시 보고누락 관행이 존재했다. 각 사업장에서는 집배원의 공무상 재해가 발생해도 절차에 따라 보고를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서광주 우체국 역시 2016년 안전사고 6건 중 1건만 상급기관인 전남지방우정청에 보고를 하고 5건은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업장이 공무상 재해시 공무상 병가 처리를 하지 않더라도 관리 감독 기관인 상급 기관이나 행정 기관에 의한 점검이 되지 않아 다친 집배원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관행이 형성·유지됐다. 고인 역시 업무 상 재해를 당했지만 공무상 병가 처리를 하지 않고, 일반 병가 처리했다.

 당시 서광주 우체국은 무사고를 사업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집배원이나 상급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공무상 재해를 당해 공무상 병가를 사용할 경우 무사고 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기게 되고 근무평정에 반영될 수도 있어 공무상 병가 사용을 억제, 재해를 당한 집배원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관행이 형성 유지 되는 현실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결국 장시간 노동과 중노동, 무제한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와 과로자살을 막기 위해선 적절한 인력충원이 가장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한편 고인의 유족은 지난 6일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신청서를 제출했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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