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 사죄·배상 거부에

한국정부 대책 없이 방관만

▲ 지난해 12월5일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대건문화관에서 열린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대법원 승소 시민 보고대회’에 참석한 소송 원고, 광주시민들이 미쓰비시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적반하장’ 일본 정부와 무책임한 한국 정부 모두를 문제 해결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판을 키우는 것이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이국언 상임대표는 일제 강제동원 집단소송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광주에선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투쟁이 진행돼 왔지만 이번 집단소송은 광주·전남으로 소송인단 참여 범위를 넓히는 한편, 그동안 확인된 일본 전범기업 341개 전체로 소 제기 범위를 열어놨다.

 소송 대상이 되는 일본 전범기업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총 4차에 걸쳐 발표한 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다.

 소송인단 모집 결과에 따라 특정기업을 상대로 대규모 소송이 제기될 수도 있고, 여러 기업을 상대로 한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실제 지역에서 소송인단에 얼마나 참여할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9일 시민모임에 따르면, 행정안전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지난해 2월말 기준 일제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는 총 5245명으로, 이중 광주·전남에 주소지를 둔 생존자는 각각 121명, 544명이었다.
 
 ▲“집단소송 포괄적 해결 수단이자 피해자 구제 마지막 기회”
 
 시민모임은 최근 현황을 다시 파악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를 한 상태로, 이국언 대표는 “생존자 숫자는 극히 미미하지만 이번 집단소송은 유족을 포함해 적어도 1000명 단위를 넘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29일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 유족과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각각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한 것과 관련, 소송 원고와 변호인단, 지원단체가 서울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에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지난해 10월30일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이어 11월29일 미쓰비시 강제징용과 근로정신대 사건 역시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상황.

 하지만 일본 정부는 크게 반발하며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를 거부하고 있고, 대법원 판결에 따른 배상도 못하도록 각 기업들에 압력을 넣고 있다.

 여기다 우리 정부도 “검토하고 있다”고만 할뿐 외교적 노력 등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답답함만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시민모임과 미쓰비시 사건 관련 소송인단은 지난 1월 미쓰비시 측에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요구했지만, 미쓰비시 측이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아 협상을 통한 해결 역시 어려워졌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해 온 이상갑 변호사는 “우리의 기본적 입장은 판결이 아닌 서로간의 협의, 화해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하자는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미쓰비시가 협상에 대한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아 큰 흐름에서 보면 화해를 통한 문제 해결은 매우 어려워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다 소멸시효 문제, 고령이 된 피해자들 상황 등 ‘시간’의 문제까지 엮이면서 저희가 여러 강제적인 방식을 취하는 쪽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최근 미쓰비시 국내 재산을 압류하는 절차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고 밝혔다.

 김정희 변호사도 “저희는 포괄적이고 평화적인 문제 해결을 바라고 있지만 미쓰비시가 협상 제안에 답을 주지 않았다”며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 구제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의 구제를 더 미룰 수 없어 적극적인 권리 실현을 위해 집단 소송을 제안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집단소송은 한편으로는 일본 전범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하는 또 하나의 요청이자 압박수단이다”고 강조했다.
 
 ▲광주전남 주도 속 서울도 소송단 모집 “타지역 확산 기대”
 
 김정호 민주사회를 위한 광주전남지부 지부장도 “가해자가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피해자가 사죄하라고 기회를 제공해도 어떤 성의있는 협상 태도가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일본 정부와 기업들에 사죄를 촉구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추가 소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19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를 당한 광주·전남 피해자 및 유족을 모집해 집단 소송에 나선다고 밝혔다.

 집단 소송이 현실화될 경우 대법원 판결에도 꿈쩍 않는 일본 정부와 기업들을 강제로 해결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국언 대표는 이번 집단소송이 ‘일본 정부를 겨냥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부분을 감안해 판을 키운 것이다”면서 “무엇보다 우리 정부 역시 다급해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소송의 규모나 범위가 커지면서 우리 정부 역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며 “미봉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양국 정부가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끌고 가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상갑 변호사는 독일 벤츠가 전쟁 범죄 피해자들에 사죄와 배상을 거부했다가 세계적인 비판에 휩사이며 태도를 바꾼 사례를 바탕으로 “일제 강제동원 문제를 한일 관계내부에서만 둘게 아니라 국제사회로 끌고 가는 방향도 필요하다”며 “미쓰비시 등 일본의 전범기업들이 계속 책임 이행을 거부하면 국내외적인 조치에 나설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에서도 일제 강제동원과 관련해 추가 소송을 위한 소송인단 모집을 진행 중이다. 이국언 대표는 “공익소송 형태로 전면적으로 피해 대상을 열어 놓고 소송하는 것은 광주·전남이 처음이다”며 “광주·전남의 사례가 좋은 모델이 돼 다른 지역으로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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