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 <광주드림 자료사진>
-황풍년 편집장 "‘일베’ 추정 해커들 고발 방침"
-‘전라도’ · ‘세월호’에 왜곡된 편견 확대 재생산 우려

9월호 인쇄 작업이 막바지였다. 전라도 곳곳을 누벼 엮은 잡지가 또 한 번의 탄생을 앞두고 있던 찰나,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 독자를 자칭한 젊은 남성은 전라도닷컴 누리집 해킹 사실을 알려왔다.

“당혹스러웠지만, 일단 ‘고맙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지난 30일 오전 황 편집장이 확인한 전라도닷컴 누리집은 해킹으로 인해 초토화가 돼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기사 제목 일부에 치환된 ‘홍어’라는 단어. 순간 황 편집장에게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라는 사이트가 스쳤다. 일베의 일부 회원 등 누리꾼들이 전라도 사람이나 전라도를 비하하는 말로 ‘홍어’라는 말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일베 사이트 회원들이) 서로 무용담을 나누듯 해킹 사실을 전하고 있더라고요. ‘나는 관리자 아이디로 접속만 했다’, ‘글 하나 지우고 나왔다’는 글들이 게시돼 있었죠. 그날 전화를 걸었던 사람의 글도 있었어요. ‘전라도닷컴에 전화해서 확인했는데, 해킹 사실도 모르고 있더라’는.”

이전에도 전라도닷컴 기사에 ‘홍어’라는 표현이 댓글로 달리는 등 당황스런 행위들이 벌어지곤 했다. 그 때마다 황 편집장은 착잡한 심경이었지만, 전라도닷컴에 실질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기에 일을 키우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해킹은 이 천 명 정도의 누리꾼들이 조직적으로 누리집에 접속해 세월호 관련 기사와 독자들이 남긴 콘텐츠를 모두 삭제함에 따라 그 피해를 산정하기가 어렵게 됐다.

“한동안 해킹당한 누리집을 쳐다보고 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전라도닷컴을 질근질근 밟아서 진창을 만들어 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죠. 특히 완전히 사라진 세월호 관련 기사와 전라도 문화 콘텐츠는 지역의 소중한 재산인데, 이를 집중적으로 헤집어 놓은 게 마음 아픕니다. 독자들이 올린 자료들은 복구여부가 불투명해서 걱정이 되고요.”

해킹당한 누리집을 복구 중이지만 황 편집장은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작정이다.

현재 전라도닷컴 측은 이번 해킹과 관련해 광주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 죄질에 따라 경찰 고발 조취를 취할 예정이다.

“해킹을 당했다는 사실보다 화가 나고 답답한 것은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 전라도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극에 달했다는 거예요. 이들은 대부분 전라도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행위에 무감각하거든요. 전라도는 ‘정치적으로 조직된 행동을 하는 집단’이라는 편견과 왜곡된 지역상이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어요.”

이번 해킹으로 전부 삭제된 세월호 기사는 5·6월 합본호에 실린 특집기사와 인터넷 상에 게재된 기사로 총 50여 건에 달한다. 또한 독자마당 코너에 실린 전라도 풍경, 인물, 이벤트를 담은 사진과 동영상 등의 콘텐츠도 모두 사라졌다.

“이번 해킹을 단순히 철없는 장난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의 행위가 ‘집단 폭력’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전라도닷컴에 올라온 자료들은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가 많아요. 사진을 보고 글이라도 몇 자 읽어본다면 절대 그런 장난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이를 방관했어요.”

황 편집장은 이번 해킹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의 기능을 되돌아보게 됐다.

“인터넷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 쓰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갈등과 반목이 해소되기는커녕 인터넷을 통해 대립이 증폭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이미 잘못 입력된 생각이 끊임없이 확대재생산 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이런 풍토를 바로잡을 때가 된 것 같아요.”

‘전라도’라는 말만 등장해도 ‘세월호’라는 단어만 보여도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고,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행위는 분명 ‘폭력’이다. 이것이 ‘폭력’인 줄 모르는 사회에서 더 큰 ‘폭력’이 양산되곤 한다.

다음은 전라도닷컴을 구독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말이다.

‘우리의 문화적 원형질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전파하는 소중한 지역잡지가 바로 전라도닷컴이다. 전라도닷컴은 단지 전라도의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경상도의 것이기도 하고 충청도의 것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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