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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한 일본기업이라도 소송, 오죽했으면…”
일제 강제동원 2차 집단소송 피해자·유족 15명
훗카이도탄광기선 사실상 도산 불구 강한 소송 의지
“돈 못 받더라도 일본 만행 기록 남겨, 사죄 받겠다”
강경남 kkn@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20-01-15 06:00:00
▲ 일제강점기 당시 훗카이도탄광기선 유바리광업소로 끌려가 사망한 고 박기추 씨의 아들 박영석 씨가 14일 2차 집단소송 기자회견에 참석, 아버지의 사망 관련 내용이 담긴 ‘조위장’을 들고 있다.

일제 강제동원 2차 집단소송에서 ‘최대’ 피고 기업은 훗카이도탄광기선이다.

총 33명의 원고 중 무려 15명의 원고가 훗카이도탄광기선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4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에 따르면, 훗카이도탄광기선은 일제강점기 당시 훗카이도 탄전 일대를 장악했던 기업이다.

국민일보가 2010년 4월 기획 보도한 내용을 보면 훗카이도탄광기선은 유바리 탄광을 비롯해 헤이와, 호로나이, 소라치, 데시오 등 5곳에 대표적인 대형 광업소를 가지고 있었고, 3만3000여 명의 조선인 노무자를 동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훗카이도 전체 조선인 노무동원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굉장히 많은 광업소가 운영된만큼 작업장 환경도 매우 열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2차 집단소송 원고만을 기준으로 훗카이도탄광기선에 끌려가 현지에서 사망한 피해자만 5명에 달한다.

다행히 목숨을 건져 귀환한 이후에도 탄광에서 일한 후유증으로 일찍 사망한 사례도 적지 않다.

관련한 국민일보 보도(2010년 4월27일 ‘군대식 막사 자물쇠 채워 감금·노역 한번 갇히면 못나오는 ‘문어 방’ 같아’)를 보면 나무로 엉성하게 지은 군대식 막사 안에 식당과 변소를 몰아 넣고 밖에 큰 자물쇠를 채워 감금한 채 강제 노역을 시키는 등 훗카이도탄광기선은 한 마디로 ‘공포의 노예노동’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번 원고 중 대다수는 이러한 만행에 가족들을 잃은 유족들이 대다수다.

훗카이도탄광기선 유바리광업소에 끌려가 현지에서 사망한 고 박기추 씨의 아들 박영석 씨는 세 살 때 아버지가 끌려가 지금껏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살아왔다.

석탄 산업 침체로 훗카이도탄광기선은 1995년 회사갱생법 적용을 신청하며 사실상 도산했다.

이때문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더라도 제대로 배상을 받기 힘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와 유족들은 기꺼이 소송을 제기하는 결심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 소송 대리인을 맡고 있는 이소아 변호사는 14일 오전 광주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2차 집단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파산한 기업을 상대로도 법적으로 손배소는 가능하지만 집행이 가능한가라는 법리적·현실적 문제가 남아있었다”며 “이전 설명회를 통해 이러한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원고들은 함께하시겠다는 큰 결심을 해주셨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원고들은 배상을 떠나 이 소송이 갖는 역사적 의미, 공식적인 기록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운동성을 가지고 소송에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도 “적극 돕겠다”며 훗카이도탄광기선의 등기부 등본을 구해 소송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훗카이도탄광기선 강제동원 피해자인 고 박기추 씨 사망과 관련한 ‘조위장’. “유바리(석장)광업소 산업보국회, 고 선촌기추(박기추)전. 우측 사람은 산업전사로서 황민 근로의 진의를 마음에 새기고 직장에서 감투중 쇼와18년(1943년) 4월 26일 갱내 작업을 위해 순직함은 산업보국의 본분을 전부 다 한 것에 대해 타의 귀감이 되어 이에 본회 30만의 회원을 대표해 삼가 조의를 표한다. 쇼와18년(1943년) 4월 27일. 홋카이도 산업보국회 회장. 홋카이도청 장관 종4위 훈3등 판천추”라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큰 결심’을 한 원고 중 한 명인 박영석 씨는 아버지가 일본 현지에서 사망했다는 내용이 담긴 ‘조위장’을 직접 들고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유바리(석장)광업소 산업보국회 고 선촌기추(박기추) 전’으로 시작하는 이 ‘조위장’에는 “우측 사람은 산업전사로서 황민 근로의 진의를 마음에 새기고 직장에서 감투중 쇼와18년(1943년) 4월 26일 갱내 작업을 위해 순직함은 산업보국의 본분을 전부 다 한 것에 대해 타의 귀감이 되어 이에 본회 30만의 회원을 대표해 삼가 조의를 표한다”라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박영석 씨는 이 ‘조위장’을 들고 끓어오르는 울분을 겨우 억누르며 “저희한테 이런 상처를 준 사람이 누구인가. 일본은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시민모임 이국언 대표는 “오죽했으면 피해 원고들이 사실상 도산이나 다름 없는 기업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겠나”면서 “여기에 담긴 피해자와 유족들의 한과 울분, 외로움을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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