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수업 짬짬이 “에세이 써보자” 의기투합
각자 글 모아 ‘교실, 그 상상력의 공동체’ 펴내
이문호 교사·학생 29명 “코로나로 열린 기회”

▲ 상무고등학교 3-8반 교실.
지난 20일 고3 학생들의 등교수업이 이뤄졌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재택수업 80여 일만에 열린 교문. ‘학생들이 학교에 나가는’, 그 평범한 일상마저 감격스러워 진 게 요즘 세상이다.

고3에 이어 다른 학년, 초·중등생도 이같은 일상이 가능할지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래 코로나19 상황이 심상찮지만, 이미 열린 교실에 입성한 고3 학생들은 지난 한 주 재택수업과는 차원이 다른 ‘학교 생활’의 맛을 회복했다.

비록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해 갑갑하긴 하지만, 온기가 없는 모니터를 강사 삼았던 ‘사강’(사이버 강의) 세상과는 비할 바 아니었다.

상무고 3학년 8반도 예외는 아니었다. 등교수업 첫날인 지난 20일, 이 반은 어쩌면 좀 더 흥분돼 있었다.

책상마다 놓여있던 한 권의 책자가 이같은 감정의 원천. ‘교실, 그 상상력의 공동체’라는 제목에, 120페이지 분량으로 제본된 에세이집이었다. ‘2020학년도 3-8낭자 스물아홉 아르떼(arte)탁월함’라는 부제에 에세이집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등교 전 재택수업으로 답답한 일상을 보내던 3학년 8반 여학생 29명과 담임인 이문호 교사가 소통하며 써내려간 수필들을 모아서 엮은 잡지였다.

“우리가 맞닥뜨리며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는 않지만, 고3으로서 많은 일을 경험하고 조바심내고 때로는 세상의 변화에 냉정할 3-8반의 얘기들을 에세이처럼 엮어 나누자꾸나.” 재택수업 초기, 이렇게 시작된 학급 활동의 결과물이었다.

에세이집 ‘교실, 그 상상력의 공동체’ .

▲ 재택수업 초기 에세이 쓰기에 도전

이 교사는 SNS에 개설된 학생들과의 단체대화방, 사안에 따라선 개인 톡으로 무료한 일상 속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대들이 좋아하는 꽃과 꽃말은 무엇입니까?’

“초등학교 때 구석진 화단에 수국이 많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얼마나 예쁘던지 어린 마음에 한 송이 꺾어 가려니 줄기가 너무 굵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중략) 특히 파란색, 핑크색 중 오묘한 색의 은은한 파란색이 좋았습니다. 파란 수국의 꽃말은 ‘냉담, 무정, 교만….” (김서연 학생)

학생들이 좋아하는 목련, 수국, 장미, 안개꽃, 메리골드 등이 활자로 꽃 피워 톡방에 가득했다. 직접 찍은 사진과 꽃이 담고 있는 ‘꽃말’을 함께 공유하고 음미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에 관해 한번 써보려 합니다’고 나선 김서유 학생. “셀레나 고메즈의 ‘lose you to love me’라는 곡에 대해 아세요? 곡을 소개하기 앞서 이 음악을 이해하려면 알아두어야 하는 배경지식이 좀 있어 그것 먼저 설명할게요.”

박소희 학생이 ‘친구들에게 소개 시켜주고 싶은 것’은 트로트. 엄마랑 트로트 경쟁오디션 프로그램을 챙겨볼 정도로 매니아다. “왜 많은 장르 중에 트로트를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2박 3일은 걸릴 것이다. 그중 가장 큰 건 가사가 잘 들려서다. 리듬이나 중독성을 강조하는 음악들과는 다르게 가사 하나하나가 잘 전달돼 좋다.”

신지연 학생은 ‘하현우의 돌덩이’라는 노래를 같이 들려주고 싶다고 썼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내용인데,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떤 역경, 어려움,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고 헤쳐 나가 도전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고3인 지금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들은 진로에 대한 걱정도 많을 텐데, 코로나도 잘 이겨내고 같이 힘내자고 말하는 것 같은 노래”라고 추천했다.

문집에 실린 3-8반 학생들 전체 사진.

▲ “평상시 등교수업이었다면 불가능”

이 교사는 계기가 있는 날, 주제가 있는 글쓰기도 주문했다. ‘장애인,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주제에 대해 떠오르는 한마디?’ ‘지구를 위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같은 주문에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건 이 교사의 친근한 가이드가 도움이 됐다. 그는 매일 학생들과 격의 없는 문체로 대화했다. ‘비 그친 후 더욱 초록세상입니다. 오늘 아침 출첵 응대는 나의 상태를 날씨로 표현해 보십시다.’ ‘등교시엔 손수건 휴대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물론 대학 입시가 임박한 수험생들이라, 생기부용 스펙(?) 관리 목적도 배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교사는 그런 목적성보다 “코로나 사태로 갑작스럽게 촉발된 온라인 수업이 연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한다.

참여 학생들의 적극성, 다양한 주제의 글쓰기, 책을 낼 정도로 완성도 높은 글 등의 요건은 등교수업이 일상화된 평상시 학교 생활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우리가 고3으로서 3, 4월 그리고 또 5월을 그냥 헛되이 보내지 아니하였기에, 학교 교실에서는 아닐지라도 다른 세상밖 교실에서 여러분들의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과정이었기에….(중략) 독서 속에서, 다큐 속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我)의 지혜로운 응대를 한 번 모아보려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는 거리를 두더라도 마음속으로는 더욱 친해질 수 있는 우정을 담아 나의 진로와 더불어 고3으로서의 지혜로움을 더해보고자 합니다. ”

에세이집 ‘교실, 그 상상력의 공동체’에 실린 서문에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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