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8일이 생일인 친구가 있다. 이래 저래 해서 어느새 서먹해지고 연락한 지도 한참 된다. 그런데도 매년 5월18일만 되면 불현듯 잘 살고 있나 궁금해지곤 하는데, 올해 5·18민주항쟁 37주년 기념식에서 ‘슬픈 생일’ 사연을 듣고 안아주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그 친구가 더 생각났다. 인생사 사연 없는 사람은 없고 그 친구도 나름 우여곡절 끝에 잘 살고 있는 편인데도 떠오르는 걸 보니, 특별해지는 어느 날짜, 어떤 공간이 있기 마련이구나 싶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 곳 광주로 이사 왔던 지난 2009년 겨울에는 광주를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과 나도 이제 광주와 무관하지 않구나 하는 설레임에, 예술의 거리로 금남로와 충장로로 광주극장으로, 그 이름난 거리들을 다녔었다. 그러는 동안, 조금씩 지명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겨울 거리엔 사람이 없었고, 광주극장에서 본 영화는 흡족했으나 무척 추웠다. 여행객처럼 다니는 곳의 풍경은 거리 정보 그 이상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광주는 이제 우리 동네, 제2의 고향이 되어간다. 아직은 내가 만나고 경험한 것에 한정되고 그래서 ‘이게 뭔가’ 싶어 잘 모르겠는 부분들도 있지만 점점 나도 ‘광주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금남로, 공동체’ 자장 속의 광주

 

 “돌이켜보면 3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것들이 잊히거나 무뎌졌지만, 광주는 끝내 금남로가 뿜어내는 저 ‘절대 공동체’의 자장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광주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소 집요하고 배타적이고 고립적인 정치 감각, 머리보다 가슴에 휘둘리는 삶의 태도, 자주 분노하고 쉽게 울어버리는 성향들은 다 금남로에서 시작되었다고 K는 믿고 있다. 설사 어느 순간 그 경험을 의식하지 못하게 되거나 광주를 떠나 살게 되거나, 심지어는 1980년 5월에 광주에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는데, 그날들 이후 ‘금남로’라는 거리의 명칭은 실제 거리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일종의 ‘실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김형중의 책 ‘평론가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 중 53-54쪽)

 ‘동네책방 숨’ 서점을 열면서는 광주와 전라지역 이야기를 소개하는 코너를 꼭 만들어야지 싶었다.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했지만 하나씩 관련도서를 발견하고 보유목록이 늘어날 때마다 나름 뿌듯했다(아쉽게도 판매되는 수량과는 무관하지만…). 영산강에 대해 대충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간 구간 설명이 세세한 ‘영산강 350리, 그 길을 걷다’(전라도닷컴:2012)을 보면서는 자주 자전거로 담양에서부터 승천보까지 달린다는 지인부부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지난해 출판된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황풍년. 행성B잎새:2016) 같은 책은 지나온 세월과 무관하지 않은 현재 광주전라를 볼 수 있게 해 줬다.

 그러다 또 만난 책이 ‘평론가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김형중. 난다 : 2016)였다. 알만한 이들은 다 아는 저자를 이제 광주살이 몇 년밖에 안된 나는 당연히 몰랐지만, 이 책의 제목을 본 순간 금방 반해 버렸다. 서울에서만 살다가 광주로 이사 온 나에게 ‘광주에서만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는 늘 그렇듯 어떤 기준이 되기도 한다. 지나온 삶의 시선으로 거리를 골목을 마을을 이야기 해 주니, 이름난 그 거리들이 다르게 다가왔다. 광주를 소개하는 다른 몇몇 책들도 그랬듯이, 그런 이야기들로 이미 일반화된 이름이 오히려 나에게는 특별한 고유명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지역의 거리나 골목이 나의 일상과 연관된 어떤 것이 될 때야 비로소 정보 이상의 특별함을 갖게 되고 역사가 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퇴계 이황과 성리학 논쟁을 주고 받았던 기대승 선생에 대해서도 광산구의 월봉서원에 다녀오고 그 뒷산을 거닐며 이야기를 들은 후엔 마치 우리동네에 이웃해 사는 공부 잘하는 오빠 같은 느낌이 드니 말이다.

 

 개인의 이야기도 특별한 존중을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우리 동네’에는 저마다 특별함이 있다. 나만의 특별한 공간이 하나씩은 숨겨져 있고, 특별한 사건이 있다. 그것이 늘 낭만적이거나 아름답지 않고 심지어는 너무 아파 다시 들여다보기 힘들어도 말이다. ‘광주’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5월을 보내면서, 혹자는 광주가 너무 ‘5·18’밖에 없다고 한다지만, 그것은 그동안 감춰져 있는 아픔과 특별함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더 이상 한풀이만을 위해 소모되는 광주가 아닌 서로 이해하고 보듬고 살아내는 곳으로 다시 자리매김해 나가야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개인의 이야기도 특별히 존중받아야겠구나 싶다. 그래서 불현듯 5월을 마감하면서 광주의 거리, 우리 동네의 골목을 각자의 이야기로 써 내려가 보면 좋겠다. 남들에게 전해주던 일반적인 정보가 아닌 나의 역사가 곳곳에 숨어있는 동네 이야기 말이다.

 ** 내가 사는 광주를 좀 더 특별하게 알고 싶다면

 ‘광주 : 평론가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걸어본다09’ (김형중. 난다 : 2016)

 ‘영산강 350리, 그 길을 걷다 : 영산강 지류를 따라 흐르는 이야기’ (전라도닷컴:2012)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황풍년. 행성B잎새:2016)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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